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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생명운동의 대안 중 하나인 태교 / 김민수 신부

관리자 | 2018.03.27 14:02 | 조회 3299
2017년 10월 말 20만 건이 넘게 접수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인 미프진에 대한 합법화 및 도입’ 건이었다. 정부는 이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답변을 내놓았고, 주교회의는 ‘낙태죄 폐지 반대 운동’을 전국 차원으로 시작해 두 달여 만에 100만 명을 채웠다. 며칠 전에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여러 권고 사항 중의 하나인 낙태죄 폐지를 정부가 불수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교회는 오래전부터 낙태는 태아의 생명을 죽이는 살인 행위이기에 죄로 규정해왔다. 그러나 최근에 여성들이 자기결정권을 내세워 낙태죄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어서 자기결정권 대 생명권이라는 이분법적 대립구도로 극단을 치닫는 현실이 안타깝다. 심지어 신앙인들조차 낙태는 교회 가르침을 따르기보다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같은 ‘신앙인의 탈규제화’ 현상은 제도적 종교의 독점적 권위와 영향력이 쇠퇴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급변하는 시대는 낙태에 대한 교회의 본질주의적 접근을 무효화시킨다. 낙태가 죄고 살인이라는 구호는 오늘날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교회는 삶의 방식에 초점을 맞춘 문화주의적 접근 방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임산부와 태아가 각각 자기 생명의 주도권을 가지고 상호작용하는 사랑의 관계성과 과정을 중시하는 태도로 바뀌어야 한다.

출산 아니면 낙태라는 오래된 이분법적인 생명 논쟁은 자칫 생명의 결과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한 인간으로서 겪어야 할 삶의 전 과정을 간과할 우려가 있다. 이런 면에서 영화 ‘주노’(2007)는 생명의 결과에만 집착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보여준다.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주인공인 16살 소녀 주노는 어느 날 남친 블리커와 ‘계획된 섹스’를 한 후 ‘무계획된 임신’을 하게 된다. “아이를 낳을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과 갈등 속에 그녀는 여성 센터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뱃속 아이에게도 손톱이 있다”는 말에 출산하기로 마음먹는다. 어린 소녀는 그 말 한마디에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만큼 아주 순수하다. 이 영화는 출산이냐 낙태냐 하는 문제에도 귀추가 주목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그 문제를 어떻게 삶 안에서 받아들일 것인가 성찰하게 한다. 어린 주인공은 생명과 삶의 소중함을 느끼며 자신에게 주어진 난제를 주체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에서 성숙해지고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다.

주인공 주노가 사랑을 배우며 내적 성숙에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에 걸맞은 주위 환경이 다음과 같이 구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주노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부모에게 솔직히 고백한다. 어린 딸의 임신에 충격받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주노의 부모는 있는 그대로 이해하며 함께 고민한다. 더 나아가 딸이 스스로 결정한 입양의 법적 절차, 그녀의 영양 상태, 병원 방문 등을 함께 해준다.

둘째, 생물학적 아빠인 블리커가 주노 곁에서 따뜻한 남자로 남아준다.

셋째, 아이를 입양할 양부모가 있다.

넷째, “Woman Now”라는 여성 센터가 있어 언제든 상담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환경이 불가능할까?

최근에 교회가 생명문화를 다양하게 프로그램화하여 생명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삶의 방식으로 수용하고 실천하도록 노력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생명문화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유아부가 운영하는 ‘태교모임’이 있다. 이 모임의 목적은 태아에게 어떻게 교감을 나누며 신앙인으로서 부모의 자세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도움을 주는데 있다. 현재 몇 개 본당에서 실시하고 있는데, 더 많은 본당이 참여한다면 태교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신비함을 일깨우는 기회가 될 것이다.

예전에 TV 프로그램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를 보다가 판소리 명창도 놀라게 만든 7살 소녀의 기막힌 판소리 실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국악을 좋아하는 이 아이의 엄마가 태교로 판소리를 들려줬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태교가 태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태교는 태아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발달을 돕는 조기교육의 하나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임산부가 태아와 함께 상호작용하여 태아의 능력을 개발하고, 부모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부모와 태아 간 의미 공유를 해가며 애착을 형성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생명을 수호하고 생명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대안 중의 하나로 태교모임을 강화하고 널리 보급할 필요가 있다.

김민수 신부(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위 기사는 가톨릭신문에서 발췌함을 밝힙니다

언론사 : 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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