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료실

[세계일보} (상) 청소년이 스러진다

관리자 | 2009.11.03 10:20 | 조회 4772
[죽음의 문턱에 선 아이들] (상) 청소년이 스러진다
 
“너무 힘들어서…” 매년 수백명 꽃다운 나이에 삶 포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들이 줄지 않고 있다. 한해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가정 불화나 학업 스트레스, 왕따 등을 이유로 목숨을 버린다. 정부는 자살예방종합대책을 추진 중이지만 죽음의 문턱에 선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기엔 역부족이다. 인터넷에는 여전히 ‘자살 정보’가 둥둥 떠다닌다.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며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실태를 3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 #죽고 싶어요. 집에 들어가 봤자 소외감만 느껴요. 저란 존재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가족들은 동생을 더 좋아하고 전 언제나 관심 밖이거든요. 매일 밤 울다가 잠들어요. 오늘 아침엔 어지러워 화장실에서 쓰러졌는데 아무도 신경을 안 쓰더라고요.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충동적일지는 몰라도 너무 힘들어서 살기 싫을 때가 많아요. 무조건 공부여야 한다는 세상이 싫어요. 뭔가 다른 걸 하려고 하면 부모님이 반대를 해요. ‘너같이 공부해선 안 된다. 다른 사람은 새벽 2시까지 하는데 넌 뭐냐’며 다그치세요.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나. 왜 공부를 잘해야 하나’하는 생각도 너무 많이 들어요. 부모님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들어줬으면 해요.

    청소년들이 스러지고 있다. 청소년 문제 상담소 등에는 ‘자살하고 싶다’며 고민을 털어놓는 아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가족, 친구들과의 갈등에서부터 학교 성적 비관, 이성과의 이별 등 그들을 옥죄고 있는 고민도 다양하다. 청소년 자살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해 수백 명씩 스러져=지난 10월15일 경기도 이천에서 여고생 두명이 동반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두 여고생은 손과 발이 끈으로 서로 묶인 채였다. 같은달 12일에도 이천에서 한 중학생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중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앞서 9월28일에는 부산에서 여중생 두명이 동반투신했다.

    청소년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0∼19세 자살자 수는 317명에 달했다. 2004년 248명을 시작으로 ▲2005년 279명 ▲2006년 232명 ▲2007년 309명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자살 사망률도 10만명당 4.6명으로 ▲2004년 3.7명 ▲2005년 4.2명 ▲2006년 3.5명 ▲2007년 4.6명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행한 ‘2008년 아동·청소년 백서’에 나타난 2007년 청소년 자살 사고(思考)율(한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해 본 적 있는 비율)은 23.7%(남자 19.0%, 여자 28.9%)였다. 청소년 5명 중 1명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가장 사고율이 높은 학년은 남학생은 고1, 여학생은 중2로 각각 19.6%, 30.4%를 기록했다. 자살 시도율은 5.8%로 나타났는데 여학생(7.6%)이 남학생(4.2%)보다 높았고 고1 남학생(4.5%)과 중2 여학생(9.1%)이 가장 많았다.

    ◇충남지역 중학생들이 지난 7월20일부터 2박3일간 강원도 횡성에서 열린 ‘제4회 청소년 생명사랑 나눔의 숲 체험 캠프’ 에 참가,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며 마음을 위로해주는 체험을 하고 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제공
    장창민 한국자살예방협회 과장은 “청소년 자살은 개인적인 면뿐 아니라 사회적인 분위기도 많이 영향을 끼친다”며 “청소년 자살자가 그나마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를 잘 관리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상담 기관에는 청소년들의 고민 상담이 쇄도하고 있다. 위기 청소년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지역사회청소년통합지원체계(CYS-NET·COMMUNITY Youth Safety-Net)’에서는 2007년 한해만 총 41만2811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2005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한국자살예방협회 사이버 상담실(www.counselling.or.kr)에는 현재 공개상담 약 5800건, 비공개 상담 약 4600건이 올라와 있다. 중·고교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곳에서만 연평균 2000여건, 하루 6건꼴로 상담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청소년들이 상담원에게 털어놓은 고민은 우울감, 가정문제, 진로 등 다양하다.

    ◆위험한 ‘모방 자살’=‘베르테르 효과’라 불리는 모방 자살도 청소년 자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명인들의 자살 방법이 인터넷 등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여과 없이 전해지면서 자살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탤런트 안재환이 연탄을 이용해 자살한 지 한 달여가 흐른 지난해 9월에는 부산 모 호텔 객실에서 고교생 이모(18)군이 동일한 방법으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한국자살예방협회가 2007년 전국 초·중·고교생 4575명을 대상으로 연예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청소년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6.5%가 ‘그렇다’고 답했다. 2007년 2월 탤런트 정다빈의 자살 후 한 달 동안 전국정신보건센터에 접수된 자살 관련 상담은 750여건으로 2006년 한해 상담건수(360건)의 배를 웃돌았다.

    청소년들이 이처럼 유명인의 자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직 가치관이 확립돼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이성보다 감성이 발달해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안동현 한양대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청소년들은 힘든 일에 부딪혔을 때 합리적인 판단보다 감정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다”며 “자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청소년에게 심어주는 동시에 이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등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염호상(팀장)·안용성·엄형준·조민중 기자 tamsa@segye.com

[세계일보]  2009.11.01 (일)

 

→ 기사원문 바로가기

언론사 :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