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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한해 출생아 45만명… 인공 임신중절은 35만건

관리자 | 2009.10.12 14:09 | 조회 6743

"한해 출생아 45만명… 인공 임신중절은 35만건"

낙태 근절운동 나선 산부인과 의사들 '난상토론'
낙태를 너무 쉽게 생각… 시술 안해준다고 하면
"진료 거부하나" 따지고 일부 병원선 인터넷 광고

낙태(落胎)는 누구나 알지만 드러내놓고 말을 꺼내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다. 대한민국은 한해 35만건의 인공 임신중절이 이뤄지는 '낙태 공화국'이다(2005년 보건복지부 조사). 한해 출생아(45만명)에 버금가는 수가 불법 시술을 통해 태어나기 전에 사라지는데도 이를 단속하거나 고발하지 않고 눈을 감는다.

그러다 보니 여성은 원치 않는 임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혹은 아기에게 기형이 있다는 사유로 쉽게 '낙태 산부인과'를 찾는다. 의사들은 임산부의 뜻에 따른다는 구실로 또는 수익을 위해 이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근절운동을 펴겠다고 나섰다. 30·40대를 중심으로 680여명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가입한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모임'('진오비'·GYNOB) 소속 의사들은 조만간 불법 낙태 중단 선언을 대외적으로 표방하기로 했다.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 낙태 근절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는 처음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벌써부터 산부인과의사회 홈페이지는 난리가 났다. '업무 방해다', '동참하겠다'는 등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진오비'는 기형적으로 흘러가는 산부인과 의료정책을 바로 잡기 위해 젊은 의사들이 모여 지난해 12월 결성한 단체다. 약 4000명의 전체 산부인과 개업의사 중 680여명이 참여하고 있으니 적지 않은 조직이다. 이들은 앞으로 낙태 근절 캠페인도 벌이고, 자정 노력과 함께 불법 낙태를 하고 있는 산부인과 고발운동도 벌일 계획이다.

이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3명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난상토론을 가졌다. 산부인과를 개업하고 있는 심상덕(49) 원장, 최안나(43) 원장 그리고 익명을 요구한 산부인과 전문의 A씨가 토론에 참여해 우리 사회의 '낙태 불감증'을 생생하게 고발했다.

낙태 불감증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는 공개적으로 낙태 시술 병원 광고가 나온다. 임신 여성들이 주로 야간에 '낙태 병원'을 검색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밤에만 광고를 한다.

=일부 산부인과 중엔 임신 중절 전문 병원을 표방하는 곳도 있다. 점점 낙태가 기업화돼 간다. 기업형 병원들이 낙태 환자를 빼앗아 간다고 시샘하는 의사들도 있다.

=약물로 낙태가 가능하다고 선전하면서 항암제를 임신부에게 투여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자궁외(外) 임신 등 특수 경우에만 쓰는 항암제 요법을 일반 임신 중절에도 쓰고 있는 것인데,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아 위험할 수 있다.

=정부가 출산 장려를 위해 산모들에게 병원 진찰 비용으로 쓰라고 지급하는 바우처카드(20만원 상당)를 낙태 타진을 위한 진찰비용에 쓰기도 한다. 국민 세금으로 낙태를 지원하는 꼴이다.

=사회 전체가 낙태를 너무 쉽게 여긴다. 태아 초음파에서 아기의 손가락이 6개인 '육손'이라고 하면 낙태를 해달라고 한다. 출산해서 손가락 성형수술해주면 되는데도 말이다. 한번만 수술받으면 멀쩡해지는 선천성 심장병 아기도 지워달라고 한다. 임신인 줄 모르고 감기약 먹었다고 낙태를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여성도 하고, 검사 부인도 한다. 낙태 못 해준다고 하면 "진료 거부 하느냐"며 따지는 여성도 있다.

=낙태를 '쉬쉬' 하면서 하기 때문에 산모에 대한 건강 위험도가 충분히 체크되지 못하고 시술이 이뤄지기 쉽다. 그러다 의료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다.

낙태는 쌍벌죄 적용되는 불법

=불법 낙태 단속을 안 하니 낙태를 하려는 산모도 '낙태 촉탁죄'로 처벌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대부분의 산부인과 의사들은 '걸면 걸리는' 예비 범법자들이다.

=한 번에 30만~40만원 하는 낙태 시술이 병원 수익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병원들도 많다. 병원 한쪽에서 임신을 위한 불임 시술하고, 다른 쪽에서는 임신 중절을 하는 것이 우리나라 산부인과의 현실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낮은 의료수가 때문에 분만실을 폐쇄해야 하는 등 잘못된 의료정책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낙태로 인한 '원죄(原罪) 의식' 때문에 제대로 정부에 항의를 못한다. 낙태는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독이 든 사탕'이다.

=솔직히 나도 예전에는 낙태 시술을 했다. 그것 때문에 직원들한테 심지어 환자들에게도 협박을 받은 적이 있다. 불법 시술 눈감아 줄 테니 대가를 달라는 것이다. 우리가 도덕적 결함을 가지고 있으니 그 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고(高)임신·저(低)출산 사회

=간혹 드물게 낙태 시술 단속을 해도 모자보건법에서 예외 규정으로 둔 5가지를 준용해 대부분은 기소 유예나 선고 유예로 흐지부지된다.

=일부 여성 단체는 낙태가 '여성의 행복추구권'이라고 하는데, 어떤 경우라도 임신과 출산으로 사회적 차별과 냉대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여성의 행복추구권이라고 본다.

=낙태를 하려는 미혼모에게 출산을 설득하여 아기를 낳게 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 10명 중 9명은 출산 후 후회하지 않는다.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린다. 생명의 탄생은 편의적인 잣대로 볼 것이 아니다. 반면 낙태를 하고 우울증에 빠져서 자살을 시도하는 여성도 봤다. 과연 어느 것이 여성의 행복을 위한 것인지 볼 필요가 있다.

=워낙 낙태가 쉽다 보니 마치 공식처럼 '미혼모·기형아는 낙태'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애플사(社)의 CEO 스티브 잡스는 미혼모의 아들이었다. 선진국에서 인생을 자신 있게 살아가는 '오체 불만족'(팔·다리 없는 기형)을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다.

=정부나 시민단체에서 일정 부분 낙태를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임신 중절 인증 병원이나 임신 중절 상담사제도 도입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불편한 진실에서 벗어나 떳떳해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지금의 고(高)임신·저(低)출산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 출산 자체가 득(得)이 되는 사회로 가야 한다.

=우선 낙태 시술을 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반성과 자정 노력 없이는 낙태는 절대 근절되지 않는다. 피임 교육을 활성화하자는 얘기나 피치 못할 경우 낙태를 합법화하자는 논의는 그다음 문제다.


☞ 낙태(落胎)

임신 24주 이전에 인공적으로 임신을 종료시켜 태아를 희생시키는 것. 모자(母子)보건법에 따르면 ▲임신부에게 유전학적 정신장애가 있거나 ▲전염성 질환이 있거나 ▲근친상간이나 ▲강간 등에 의한 임신 ▲임신이 지속되면 산모 건강이 위험해지는 경우 등 5가지 사유의 낙태만 허용된다. 터울 조절이나 미혼모, 태아 기형 등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불법 낙태는 의사는 물론 산모도 징역 2년 이하의 처벌을 받게 돼 있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doctor@chosun.com

 

[조선일보]  200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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