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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다국적 GMO 기업 무차별 농약살포... 농민들 "살려달라"

관리자 | 2009.10.06 15:29 | 조회 5217

"아이들의 발목이 썩어가고 있어요"
 농약비 내리는 아르헨티나의 비극

 

[해외리포트] 다국적 GMO 기업 무차별 농약살포... 농민들 "살려달라"
         

 

  

농약 살포 반대 시위.

 

 

소처럼 묵묵히 일만 하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던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시위를 한다. 더는 가족들과 동네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학교 가는 아이들의 머리 위에다 비행기로 농약을 뿌려대는 것이 어디 말이 되는 일이냐고, 이제 그만하라고 소리쳤다. 그렁그렁한 눈빛들은 한탄과 분노로 가득 차올랐다.

 

아르헨티나의 한 작은 농촌마을에서 '농약 살포를 멈춰라'라는 시위가 있을 거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일종의 웰빙 운동일 거라고 생각했다. 농약 사용을 줄이고, 먹을거리 건강을 살리자는 운동일 테고, 그건 당연하지 않느냐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농약살포 반대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 당사자, 농부들이었다. 소규모의 땅을 경작하거나 소작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농부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왜?

 

[유혹] 특정 콩 뿌리고 특정 농약 사용하면 잡초만 사라진다

 

아르헨티나의 국토는 남한 땅의 30배 크기에 달한다. 드넓게 펼쳐진 비옥한 땅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세계적 농업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농부는 하는 일 없이) 씨만 슬슬 뿌려놓으면 땅이 알아서 농사 지어 준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런 축복받은 땅 덕분에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한때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농부가 밭 한쪽에서 다른 한쪽까지 걷는다고만 해도 몇 시간씩 걸리는 대규모 농장에서 농약 사용은 어떻게 보면 농업방식 변화의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비행기로 농약을 뿌리고, 거대한 트랙터로 곡물을 수확하는 사진들은 우리가 상상했던 미래의 농촌 모습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곳 아르헨티나의 농부들은 왜 길거리로 뛰어나와 농약 살포 반대를 외치는 걸까. 편리한 농사를 위해 자신들이 선택한 길이 아니었단 말인가.

 

         
  
콩밭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농약을 피하기 힘들다.

문제의 시작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 아르헨티나에는 유전자 변형 작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농산물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된 적이 있었으니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라는 이름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유전자 변형 농산물의 재배가 합법화됐고, 현재 유전자 변형 옥수수 수출이 세계 3위에 이르고 있다. 유전자 변형 콩의 경우, 중국, 유럽연합, 미국 등으로 대부분 수출된다.

 

이쯤에서 유전자 변형 작물(GMO)이 가진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특징이 유전자 변형 씨앗을 생산하는 회사들이 홍보하고 있는 유전자 변형 작물의 주요 장점이기 때문이다. 유전자 변형 작물의 특징 중 하나는 특정 농약에 저항성을 가지도록 유전자가 변형된다는 것이다. 즉, 특정 콩을 뿌리고 특정 농약을 사용하면 콩만 남기고 다른 잡초들과 식물들은 모두 제거할 수 있다. 때문에 몬산토 등 유전자 변형 씨앗을 생산하는 회사들은 농약은 적게 사용하면서도 안전하고 깨끗한 콩을 더 많이 수확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 참고-몬산토 농약 제품의 특징과 장점에 대한 부분. 경제적인 이익 외에는 다른 설명이 없다. http://www.elijoroundup.com.ar/full_caract.php)

 

이 얼마나 획기적인 상품인가. 기업들의 주장에 따르면 씨앗과 같이 판매되는 농약은 인체에 아무 해가 없고 땅에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분해가 된다고 하니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아르헨티나는 전면적으로 유전자 변형 콩, 옥수수 종자를 받아들여 재배하기 시작했고, 세계적인 콩 수출 국가가 되었다.

 

         
  
농약 살포 반대 시위.

[드러난 거짓말] 사람들이 죽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전체 농지의 절반이 유전자 변형 농산물 재배지역인 상황에서 다국적 GMO 기업들의 주장이 사실이었다면 아르헨티나 국토는 더욱 건강해졌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유전자 변형 콩이 농약에 저항성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해가 거듭되면서 잡초들 또한 저항성이 생기게 됐다. 이른바 슈퍼잡초들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농약 사용이 줄기는커녕 점점 강하게, 점점 세게 농약을 뿌려야 하는 상황이 됐고, 피해도 점점 커졌다. 아르헨티나 북쪽 지방에서부터 산림이 줄고 녹지가 사라지는 일들이 일어났고, 비행기로 농약을 뿌려댄 탓에 농민들이 병에 걸려 죽어가기 시작했다.

 

         
  
유전자 변형 콩 재배지역에서 농약 살포하는 일을 했던 파비안씨, 폐질환과 등, 팔, 다리 등이 군데군데 썩어 들어가는 피부병을 앓고 있으며 팔과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다.
 
 

암에 걸린 사람들, 폐가 말라가는 사람들, 피부가 썩어가는 아이들, 기형아 출산, 유산 빈발, 호르몬 장애 등 수많은 병들과 원인 모를 증상으로 죽는 사람들이 늘었다. 한 가정의 딸 세 명이 모두 열과 구토 등 비슷한 증세로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농약 살포 최소 이틀 전에 주민들에게 경고해야 한다는 법이 있지만 지켜지는 일은 드물었다. 비행기로 하늘에서 뿌려대는 농약을 머리에 직접 맞는 것을 피한다고 해도 개울을 타고 지하수로 스며든 농약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돼지들과 거위들도 개울물을 마시고 죽었다. 아이들은 등굣길에 농약이 뿌려진 콩밭을 맨발로 지나다녔고, 어린 피부는 발목부터 썩어 올라갔다.

 

그런데, 여전히 궁금하다. 어차피 농민들이 농약을 뿌리는 건데, 이렇게 문제가 커질 때까지 왜 그냥 뒀냐는 거다. 그런데 그들의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지금 농사를 짓는 일에 있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람이 농부(Campesino)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모든 결정을 하는 사람은 사장(Dueño)입니다. 그 사람들은 농장 근처에도 살지 않아요. 전화 한 통으로 모든 것을 지시하죠."

 

[부재지주들의 손쉬운 결정] 농약 마구 뿌려!

 

그들은 더 이상 땅의 주인이 아니었다. 다음해에 경작할 씨앗을 고르고, 땅의 상태를 만지고 휴작을 결정하는 모든 일은 농부의 눈과 손으로 해야 할 일이었지만 많은 농부들이 '그저 고용된 일꾼에 불과한' 처지가 됐다. 심으라면 심고, 농약을 뿌리라면 뿌려야 하는, 산업화의 한 톱니바퀴에서 돌며 죽어라고 일해야 하는 도시 노동자의 모습에 다름 아니었다.

 

다국적 GMO 기업들이 가져온 것은 유전자 변형 씨앗만이 아니었다. 씨앗과 짝 지워진 농약, 농약을 뿌리기 위한 거대한 기계들이 포함된 전체 시스템을 패키지로 팔았다. 마치 명절 선물세트의 가격을 흥정하듯. 그나마 이것을 결정하는 것은 땅도 한 번 밟지 않는 땅 주인들의 몫이다. 그들은 국제 콩 값이 오르는지는 관심이 있지만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농약 살포 반대 시위다. 농민들이 연합해서 도로를 점거하고 4시간 동안 행진하며 농촌의 참상을 알리고 있지만 주요 신문이나 텔레비전 기사들은 단 한 명도 취재하러 오지 않았다.

 

집 주변에서 농약 살포가 한 번 있고 나면 며칠 동안 눈이 따갑고, 호흡기가 메마르고, 입 안에서 농약 냄새가 맴돈다고 한다. 구역질과 두통을 호소하면서 병원을 찾아가도, 피 속에 농약 성분이 섞여 나오는 결과가 나와도 의사들은 섣불리 농약으로 인해 아픈 것이라는 진단을 내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유전자 변형 콩 재배지에서 태어난 기형아들.

[물러날 곳 없는 절규] 사람 좀 살려 달라

 

지난 2006년부터 농약 반대 시위를 주최하고 있는 농촌지역반영모임 GRR(Grupo de Reflexion Rural)에서 발행한 리포트의 내용을 살펴보면 농약 살포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인권 침해를 받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 (중략) 우리는 정부에서 나온 사람들이 하는 연구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자체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한 결과를 가지고 국가 인권위원회, 환경, 건강과 관련한 정부 기관 그리고 국회에 우리의 문제들을 알리고 싶었다. 국회에 가서 우리가 사는 곳에 농약 살포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 것을 요청했다. 그곳까지 가는 동안 두려움이 많았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에게서 위협을 받았고 압력과 감시를 느꼈기 때문이다. 조사를 하면서 아픈 사람들을 데리고 고속도로를 뛰어 넘어야 한 적도 있었다."

- 꼬르도바 어머니들의 모임(Grupo de Madres de Cordoba)에서 기록한 내용 

 

"....(중략) 나는 유전자 변형 콩 농작 지역에서 살았는데, 대부분의 엄마들이 암을 가지고 있었고, 기형아를 낳거나 아이들이 백혈병을 앓는 일이 많았다. 작은 비행기들이 계속해서 농약을 뿌렸고, 신생아의 약 30%가 턱뼈 없이, 횡격막 없이, 신장이 덜 형성된 채로 태어났다. 17, 18살의 아이들이 빈혈이나 희귀병으로 죽었고, 300여 명의 암 환자가 등록되었지만 정부는 이러한 문제들을 계속 부인했다.

 

새로운 그룹의 의사들이 우리 동네로 왔지만 자신들의 직업을 잃을까 걱정돼 제대로 검사 결과를 말해주지 않을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계속해서 환자들이 생겨나는 동안 30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혈액 검사를 했는데, 30명의 혈액에서 모두 농약 성분이 검출되었다. 내 딸은 기형아로 태어나서 죽었고, 또 다른 딸의 혈액에서는 다섯 가지 종류의 농약 성분이 나왔다.

 

....(중략) 2008년도에 한 기관에서는 우리 지역을 시찰했고 주민들을 방문해서 지역이 오염되었으니 이사를 가는 것이 좋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사를 했고 남은 사람들은 오천 명 정도 되었다. 우리 가족도 남아 있었다. 아무도 우리 집을 사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마리아 고도이씨의 증언, 꼬르도바주의 이투사인고 지역 거주

 

         
  
꼬르도바 어머니들의 모임에서 마을에서 최초로 발생한 환자들을 표시한 지도.
ⓒ 이주영

이렇게 해서 농촌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고, 떠난 사람들의 땅은 대지주들이 사들였다.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고 아직 농촌에 남아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사람(주로 소작농)들은 거대한 땅들 사이에 끼여 농약 살포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여러 기관들의 노력으로 2500미터 상공 이상에서 농약 살포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기도 했지만 결코 지켜진 적이 없다고 한다. 농약으로부터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법을 만드는 일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농민들은 시위를 계속하며 투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2009.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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