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료실

이 몸은 목판에 놓인 엿가락 ...가위로 자르든 엿치기 하시든 엿장인 주님 뜻대로 하

관리자 | 2012.01.11 11:55 | 조회 5027

이 몸은 목판에 놓인 엿가락 … 가위로 자르든 엿치기 하시든 엿장수인 주님 뜻대로 하소서

최인호 암 투병기, 가톨릭 ‘서울주보’에 연재

소설가 최인호씨가 가톨릭 서울대교구 주간 소식지 ‘서울주보’에 암 투병기를 연재 중이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과 정신적으로 괴로운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사진은 2010년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작품 구상을 하는 모습. 암 발병 후 사진을 찍지 않아 최근 사진이 드물다. [사진작가 백종하 제공]

5년째 암과 싸우고 있는 소설가 최인호(67)씨. 그가 인간적 고뇌,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을 드러낸 ‘암 투병기’를 연재 중이다. 선뜻 공개하기 어려운 나약한 내면을 밝힌 글이다. 그러면서도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한 신자답게 신앙의 힘, 성경의 말씀으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씨의 글은 가톨릭 서울대교구의 주간 소식지인 ‘서울주보’에 실렸다. 최씨는 1월 1일자, 평신도의 글을 소개하는 ‘말씀의 이삭’ 난에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는 글을 실었다.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구에서 따온 제목이다.

8일자에는 ‘나와 같이 깨어 있어라’를 올렸다. 또 아직 인쇄되지 않아 서울대교구 홍보국 홈페이지(cc.catholic.or.kr)에서만 볼 수 있는 15일자에는 ‘벼랑 끝으로 오라’가 실린다. 각각 1700∼2000자 분량이다. 최씨의 투병기는 한결같이 어려웠던 순간, 그 당시의 심경 등을 소개한 후 성경 말씀으로 힘을 얻는 구조다. 최씨의 고통을 엿본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충분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법하다. 철저히 베일에 싸였던 최씨의 병 상태도 언뜻언뜻 드러나 있다. 그간의 심적 고통이 짐작된다.

 1회 ‘지금 이 세상…’은 발병 초기를 다루고 있다. 처음 최씨는 “(지금) 불어닥친 이 태풍은 다름 아닌 죄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괴로워했다. 암 선고를 “미국 작가 N 호손이 쓴, 간통한 죄로 ‘A’란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고 사는 여주인공의 낙인과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당시 최씨는 병원 복도에서 머리 깎은 한 어린 환자와 마주친다. 그 천진한 눈빛에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절규한다. 저 아이의 고통은 과연 누구의 잘못 때문인지, 신앙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서다.

 그때 최씨를 찾아온 성경 말씀이 요한복음 9장 3절.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아이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이런 생각의 전환은 릴케의 시구로 이어진다. ‘세상 속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는 것’이라는 대목이다.

 2회 글에 따르면 최씨는 2009년 9월 암이 재발해 본격적인 항암치료를 받았다. 1차 치료가 끝나자 체중이 5㎏이나 빠졌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영적 스승으로 삼고 있는 곽성민 신부에게 하루는 “항암치료를 포기하겠다”고 하소연했다. 이때 마태복음 26장 38절 말씀이 떠올랐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나와 같이 깨어 있어라’. 고귀한 예수님마저 극한의 고통을 느꼈다는 대목에서 강렬한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는 것이다.

 본지는 최씨로부터 공개되지 않은 4회 글 ‘엿가락의 기도’를 받았다. 이 글에서 최씨는 마태복음, 당나라 선승 마조(馬祖)의 일화를 소개하며 ‘기적을 베풀어 달라’는 자신의 기도가 잘못이었음을 고백한다. 하느님을 믿고, 마음대로 하시라고 온전히 자신을 맡겨야 한다는 것. 글은 ‘엿가락의 기도’로 마친다.

 ‘주님, 이 몸은 목판 속에 놓인 엿가락입니다. 그러하오니 저를 가위로 자르시든 엿치기를 하시든 엿장수이신 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우리 주 엿장수의 이름으로 바라나이다. 아멘’.

 최씨는 당초 1월 한 달간 연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반응이 뜨거워 다음 달 말까지 쓰기로 했다. 또 한동안 쉬었다가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간 글을 더 쓸 예정이다. 서울주보는 매주 24만 부를 찍어 서울대교구 산하 226개 성당에 배포된다. 최씨는 전화통화에서 “육체적으로 아픈 사람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게 됐다.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위안받는다는 생각을 하니 글 쓰는 게 무척 즐거웠다”고 했다.

건강상태를 묻자 “내 흥행요소인데 그걸 왜 얘기하겠느냐”며 특유의 유머로 받았다. 최씨는 2008년 5월 침샘 부근에서 암이 발견돼 투병해 왔다.

지난해 5월 암과 싸우며 쓴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여백)를 발표했다.

※ 최인호씨의 암 투병기는 서울대교구 인터넷 홈페이지(aos.catholic.or.kr)와 스마트폰 앱으로 볼 수 있습니다.

→ 기사원문 바로가기
언론사 :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