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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낳은 아이, 그 빛과 그늘 미혼모의 눈물과 현실

관리자 | 2010.05.14 09:03 | 조회 4720

가슴으로 낳은 아이, 그 빛과 그늘 <하> 미혼모의 눈물과 현실

 

출산 전 포기각서 요구 … 미혼모 두 번 울리는 ‘입양대국’

# 2008년 11월. 미혼모 K씨(36·서울 영등포구)는 입양기관에 전화를 하면서도 4개월 된 딸 진희(가명)를 입양 보낼 마음은 전혀 없었다. 석사 출신의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던 그는 한순간의 실수로 미혼모가 되면서 모든 걸 잃은 상태였다. 가족과도 연락이 끊겼다. 당시 부산에서 살던 K씨는 마침 서울에 있는 괜찮은 기업의 구인 공고를 발견했지만 입사시험 기간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보육지원시설을 알아봤지만 자격요건이 안 돼 거절당했다. 하는 수 없이 잠깐만 진희를 입양기관에 맡기기로 했다.

 

전화를 하자 이내 상담사가 찾아와 K씨와 아기 생부에 관해 묻고는 친권포기서 등을 작성해 갔다. 한 시간 남짓 걸렸다. K씨는 “혹시라도 아이를 입양 보낼 상황이 되면 꼭 먼저 연락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열흘 뒤 2차 시험을 준비하던 K씨에게 ‘진희가 어제 입양됐다’는 휴대전화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후 K씨가 진희를 되찾기까지 꼬박 3개월이 걸렸다. 입양기관에 항의도 하고 호소도 했다. 다행히 K씨의 사정을 이해해준 입양 부모 덕에 진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K씨는 올 초 의료기기 업체에 취직해 수출입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진희도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고 있다.

 

# “아이를 입양기관에 보내고 나서 뻥 뚫린 가슴을 견디다 못해 사흘 만에 아이를 찾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입양기관에서 대뜸 ‘아이를 사생아로 만들 거냐’고 엄포를 놓더군요.”

 

L씨(27·경기도 일산)는 2005년 8월 임신 8개월의 몸으로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한 미혼모 보호시설에 입소했다. 그는 갈등 끝에 입양기관에 상담을 요청했다. 사회복지사는 첫 방문 때 이미 입양동의서와 친권포기각서를 들고 왔다. 두 달 후 L씨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튿날 입양기관에 연락하자 사회복지사가 즉시 달려와 서류를 완성하고는 아이를 데려갔다. 뒤늦게 절절한 모성애를 느낀 L씨는 아이를 되찾기로 했다. 결국 사흘간의 위탁비용 6만원을 지불하고는 아이를 다시 안을 수 있었다. 현재 L씨는 아이의 생부와 다시 결합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입양된 아동 1314명 중 미혼모의 자녀는 1116명으로 84.9%에 달한다. 해외입양의 경우도 1125명 중 미혼모 자녀가 1005명이나 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미혼모 지원시설들이 입양을 권장하고, 심지어는 입양 대상 아동 확보 경쟁까지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관계자는 “상당수의 미혼모 지원 시설은 입양기관에서 직간접적으로 운영하는 곳”이라며 “일부 지원시설은 심지어 입양을 약속해야만 입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런 미혼모시설에서는 미혼모에게 입양의 장점 등만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고 있다”며 “아이를 직접 기르려는 미혼모의 의지를 일부러 꺾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주요 인터넷 사이트에서 ‘미혼모 시설’을 검색하면 대부분이 주요 입양기관이 운영하는 곳으로 표시된다.

 

해외입양인 보호단체인 ‘뿌리의 집’ 김도연 목사는 “정부가 국내입양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입양수수료 등을 지원해 주면서 입양기관들 간에 입양아동 확보 경쟁만 생겼다”고 지적했다. 미혼모들에 대한 턱없이 부족한 사회적 지원과 이해도 입양을 부추기고 있다. 2005년 여성부가 미혼모 2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육아를 위해 필요한 도움으로 경제적 지원(43.8%)을 가장 많이 꼽았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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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모가 아이 기르게 미혼모 지원 확대하고 입양 결정도 출산 후에”

전문가들의 정책 제언

 

입양이 설령 아동에게 좋은 기회가 될지라도 미혼모의 자녀가 입양아동의 90% 가까이를 차지하는 국내 현실은 기형적이다. 출산 전후의 미혼모가 서둘러 입양을 선택하게 하는 입양 절차의 허점, 그리고 열악한 미혼모 지원 현실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입양에 관한 국제협약인 헤이그협약의 기본 정신이 ‘입양은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인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협약은 우선은 아동이 낳아준 부모에게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다음은 출신국, 즉 국내입양이 바람직하고, 해외입양은 마지막 단계에서 고려하도록 협약은 권고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헤이그협약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한림대 허남순(사회복지학) 교수는 “일부 입양기관이 ‘입도선매’식으로 출산 전의 산모에게도 입양 결정을 요구하게 만드는 현행 입양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허 교수는 “혼란상태의 친생부모가 성급한 결정을 내리지 않게 출산 후 72시간 내에는 입양동의서를 작성할 수 없도록 하는 입양특례법 개정안을 정부에 건의했다”며 “입양기관도 아동을 30일 이내에는 입양 보내지 못하게 해 친부모가 결정을 취소할 기회를 갖게 하자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혼 숙려제처럼 입양 숙려제를 도입하자는 얘기다.

 

미혼모에 대한 빈약한 지원제도를 손보는 것도 시급하다. 입양보다는 직접 아이를 기르기 위한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앙입양정보원의 이현주 팀장은 “프랑스·독일 등 유럽 선진국들은 미혼모 지원시스템이 워낙 잘돼 있어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경우가 드물다”며 “미혼모 지원을 늘려 해외입양은 물론 국내입양을 보낼 아이들도 아예 줄어들도록 만드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미혼모지원시설인 애란원의 한상순 원장은 “주거문제 등을 해결해준다면 아이를 직접 키우는 미혼모가 더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중앙일보   201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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