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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뉴스] 6만 입양아의 주치의 조.병.국.박사

관리자 | 2010.01.01 14:02 | 조회 4642
6만 입양아의 주치의 조.병.국.박사
당신의 눈물,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

소아과 전문의 조병국 박사는 서울시립아동병원과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에서 50년간 입양아들과 함께 했다.
지난해 75세의 나이로 부속의원장에서 물러났지만, 정년퇴임 날짜는 진작 지나갔다.
무려 15년이나 넘기면서까지 일을 놓지 못한 이유는 후임자가 없어서다.
의사치곤 박봉이고 ‘봉사’와 ‘희생’이 필요한 자리라 선뜻 나서는 이가 없던 것.
그런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할머니 의사 선생님가슴 따뜻한 이야기.

조병국(76) 박사는 지금까지 내가 취재한 사람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아 살짝 긴장이 되었다. ‘입양아의 대모’라는 별명을 알았기에 ‘입양’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도 어설픈 생각이었다. 그래서 최근에 낸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부터 읽었다. 절절히 가슴에 와 닿는 사연들을 보고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래, 특별한 질문을 하기보다 눈시울 붉히는 이야기들을 직접 들어보자.’
소아과 의사니까 당연히 ‘아이를 사랑’ 해야죠
조 박사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을 할 때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것이 입양아들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 1962년 동부시립아동병원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버려진 아이들과 전쟁고아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며 홀트의 사회복지사업과 인연을 맺었다. 홀트 부속병원으로 직장을 옮긴 뒤로 조 박사의 손길을 거친 아이들은 어림잡아 5만 명이다.
당시 조 박사에겐 괴로웠던 기억뿐이다. 버려진 아이들이 병원에 실려 왔지만 영양 상태나 의료 환경이 너무 나빠 사망률이 25퍼센트나 되었다. 한 해에 2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실려 와 입원했고, 그중 500명 정도가 죽어 나간 것. 아무리 의료 환경이 열악했다지만 속수무책인 자신이 원망스러웠다고.
어렵던 시절, 열악한 국내 환경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노르웨이, 독일,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에 아이들의 수술과 치료에 필요한 의료 기부를 요청하고 다니며, ‘국제 거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 때문에 군사정권에서 나라의 위상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압력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발품과 정성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다시 생명을 얻고 따뜻한 가정의 품에 안겨 자라났다.
“아이들이 새 가정을 찾아 잘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죠. 집이 없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을 갖게 해주는 일입니다.”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내려놓다
은퇴 소식이 전해지자 일간지에서 취재 요청이 들어와 생각 없이 그러자고 했는데, 그 후 세간의 관심이 조금 부담스러워졌다. 안부 전화가 오고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밝고 따뜻한 미소, 말할 때마다 느껴지는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 게다가 당최 그 나이로 보이지 않는 할머니 의사는 ‘고아들의 대모’ ‘입양아의 대모’라는 말에 어지러울 뿐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난 사랑을 베푼 게 아니에요. 의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의무를 한 겁니다. 소아과 의사니까 당연히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진 것뿐이죠.”
그러던 와중에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다. “내가 뭐 그리 잘난 사람이라고 책까지 내나 싶어 망설였어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설득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조 박사의 뇌리에는 지난 50년간 만나고 인연을 맺었던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갔다. 가난하던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과 그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키운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도 희망은 기적처럼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로 결심했죠.”
그렇게 해서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가 세상에 나왔다. 탤런트 신애라는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로 인해 한숨 쉬기보다는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기적을 만들어낸 아름다운 삶이 있다”며 조 박사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작가 박완서는 “남의 글을 읽고 재미있어하기도 하고 그저 그래서 읽은 즉시 잊어버려도 그만인 무뎌진 감수성에 감동할 수 있는 축복을 안겨준 조 박사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이 예쁜 표정들, 어디에 숨겨두고 있었니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으나 자기 손을 거쳐간 아이들의 이름이나 특성, 사연을 조금씩이라도 기억하는 조 박사는 아이들과 그들을 입양한 양부모들, 자녀를 포기해야 했던 생부모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이렇게 가슴 아픈 사연을 다시 겪으라면 못 할 것 같다는 조 박사. 천만다행인 건 지난 50년간 슬픈 사연뿐 아니라 기쁘고 뿌듯한 추억도 많았다는 것.
버려진 뇌성마비 장애아는 의사 선생님이 되어 다시 한국을 찾는다. 입양되었던 아이는 훌륭한 부모가 되어 받은 사랑을 세상에 돌려준다. 입양아가 부모가 되어 다시 입양을 하는 것이다. 면역결핍이나 심장병을 앓는 아이를 입양해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대가 없는 봉사 활동도 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도 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장애아를 가족으로 맞은 부모는 조건 없이 사랑한다. 낳아준 엄마의 모정, 생면부지의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가르치는 입양 부모, 가혹한 운명을 보석처럼 빛나게 만든 입양아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는 조 박사.
“입양 부모가 보내온 사진에서 아이들은 늘 밝게 웃고 있어요. 아, 이 아이들도 이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구나 생각하고, 그동안 이 예쁜 표정을 어디에 숨겨두고 있었니 하며 말을 걸어봐요. 아이는 웃는데 나는 자꾸 눈물이 나요.”
때로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재우고 먹이기고 했다. 새벽에 일어나 기저귀를 빨고 우유를 먹이고 같이 놀아줬다. 그동안 부부가 참석해야 하는 모임이나 계 모임 등 빠지기 일쑤였고, 두 딸과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챙겨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쪽도 못 되는 아내고 어머니지만, 자신이 정말 행복한 사람이고 준 것보다 받은 게 훨씬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입양’은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단어가 아니다
조 박사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냈지만, 정작 필요한 책은 ‘입양’에 대한 교육이라고 말한다. 아동물도 좋고 성인 대상도 환영이다. 편견을 없애기 위해 누군가 그쪽에 관심을 가지고 서둘러주길 기대한다.
각박하고 힘든 세상이라지만 인생을 돌아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조 박사. 여기가 세상의 끝인가 싶을 때 누군가 내미는 따뜻한 손이 세상살이에 큰 힘이 된다는 걸 안다면, 내 손에 누군가를 데워줄 온기가 있다는 걸 안다면 세상살이도 조금은 녹록할 거라 한다.
인터뷰 내내 “잘나지도 않은 늙은이 취재해서 뭐 하냐”고 말하는 조 박사는 리포터를 부끄럽게 했다.
“얼마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기에 갓 태어난 제살붙이를 내버렸을까요. 아이 가진 걸 원망하고 후회했을 어미의 자궁에서 열 달을 지내다가 내쫓기듯 태어나 버려진 아이가 감당했을 충격과 아픔은 얼마나 컸을까요. 그래도 버려진 아이라고 하기엔 아직 일러요. 우리 주변에는 고아로 자랐어도 당당하게 삶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너무나 많아요. 그들 하나하나가 바로 낮은 곳에서 피어난 희망이고 기적이니까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뇌리에 남아 있는 메시지 하나. ‘입양이란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단어가 아니다. 한 아이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열고, 체념해 빛을 잃은 눈동자를 다시 빛나게 하고, 무표정한 얼굴에 미소를 찾아줄 마법 같은 힘. 당신에게도 그런 힘이 있지 않은가.’

취재 박선순 리포터 ss7262@hanmail.net 사진 임민철


[내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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