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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저출산과 낙태

관리자 | 2009.11.18 10:37 | 조회 4981

[만물상] 저출산과 낙태

 

'태아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매독으로 귀머거리가 될 위험이 크다. 또 다른 아기는 약한 뼈 때문에 평생 고통을 받게 된다. 부모가 이런 사실을 알면 낙태를 원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인류는 음악가 베토벤과 화가 로트렉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영국 평론가 조지 스타이너가 우생학을 반대하며 한 가정(假定)이다. 베토벤 얘기는 보다 극적으로 과장돼 낙태의 폐해를 상징하는 예화(例話)로 자주 인용된다. 미국 낙태방지협회 광고에도 등장한다.

▶레빗과 더브너의 '괴짜 경제학'은 낙태 찬성 진영이 반길 얘기를 한다.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1966년 "아이를 낳지 않는 자는 국가의 배신자"라며 낙태를 금했다. 1년 만에 출산율은 배로 뛰었지만 낙태 금지 후 태어난 아이들은 공부도 일도 못하고 범죄율도 높았다. 1973년 미국 대법원이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 후 20년이 지나자 범죄율이 뚝 떨어졌다. '괴짜 경제학'은 불우한 환경에서 범죄자로 자랄 확률이 높은 아기들이 낙태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1960년대까지 한 해 5만건이던 미국의 낙태는 '로 대 웨이드' 판결 첫해 75만건으로 급증했다. 1980년엔 아기 2.25명이 태어날 때 한 명이 낙태되는 160만건에 이른 뒤 계속 유지되고 있다. 우리는 2005년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한 해 35만건의 낙태가 이뤄지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 신생아 45만명에 버금가는 숫자다. 의료계는 실제 낙태가 훨씬 더 많다고 본다. 150만건이라는 추정까지 있다.

▶우리는 1960~70년대 산업화시대에 강력한 출산 억제책을 폈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도 셋째 아이 출산 때 의료보험 혜택을 주지 않았다. 여기에 남아선호 현상이 더해 정부와 사회가 낙태를 암묵적으로 용인했다. 이제 저출산 극복이 국가적 과제가 되면서 낙태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학계와 종교계에선 낙태를 줄여 신생아를 70만명까지 끌어올리면 저출산이 해결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낙태문제가 정권 향방에 영향을 미칠 만큼 치열하게 논쟁해온 미국과 달리 우리는 낙태를 공적(公的) 논의에서 제외해왔다. 누구나 알면서도 그냥 덮어둔 불편한 진실이었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다음주 내놓을 저출산 대책에 낙태 단속이 포함된다는 보도가 나오자 위원회가 "구체적으로 검토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낙태는 법과 현실과 도덕, 사회 인식이 교차하는 미묘한 문제다. 그래도 이젠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

 

[조선일보]  2009.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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