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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정진석] (60) 생명 운동의 기수가 되다

관리자 | 2017.08.09 10:55 | 조회 3995
▲ 정진석 대주교와 황우석 교수의 만남은 세간의 관심 속에 6월 15일 명동 주교관 정진석 대주교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주교관 앞 마당을 가득 메운 언론사 기자들. 가톨릭평화신문 DB

▲ 정진석 대주교와 황우석 교수의 비공개 만남이 끝나기를 기다린 기자들로 인해 뜻하지 않은 기자회견이 열릴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응답하는 정진석 대주교와 황우석 교수. 가톨릭평화신문 DB





2005년 전반기 대한민국의 봄은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 신드롬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당시 국내외에서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 교수의 인기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이는 2004년 2월 미국 ‘사이언스(Science)’지가 황우석 교수와 서울대 의대 문신용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사람 난자를 이용해 체세포를 복제하고 이로부터 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리면서부터 시작됐다. 인간 복제 등 윤리적 문제에 대한 우려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기도 했지만 난치병 치료의 길을 열게 됐다는 평가와 열화와 같은 호응에 묻혀 버렸다.

황 교수는 인간 배아 복제 논문을 ‘사이언스’에 게재했다. 곧이어 2004년 4월 19일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황 교수를 선정했다. 그는 정부를 비롯해 기업이나 대학으로부터 대대적인 지원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우리나라의 영웅이었다. 

2004년 12월 황우석 교수팀과 미국 섀튼 박사팀이 원숭이 체세포 복제 배아 생산에 성공했고, 이듬해 1월 대한민국 정부는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를 공식 승인했다. 같은 해 5월에는 복제 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의 이언 월머트 박사와 황우석 교수가 루게릭병 치료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데 합의하기도 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황 교수를 주목했다.

그런 황우석 교수가 활동하고 있는 무대는 바로 한국의 수도, 서울이었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는 황 교수 연구에 윤리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그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인간 파괴를 전제로 하는 행위”라는 내용의 자료를 작성해 교구 사제들이 주일 미사 강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공문으로 배포했다.

그런데 공문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이것이 마치 ‘대국민 성명’인 양 외부에 알려졌다. 2005년 6월 11일 자 조간신문에는 일제히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의 황우석 박사 연구 반대, 배아 줄기세포는 살인이다’라는 기사가 대서특필됐다.

이 사건은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포털 사이트와 교구 게시판에는 천주교와 정 대주교에 대해 읽기조차 불편한 독설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교구청 각 부서도 항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주 내용은 불치병 환자를 고치려는 좋은 의학 사업을 왜 천주교가 나서서 반대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당시 해외에 있던 황 교수가 나섰다. 정 대주교를 바로 만나겠다고 기자들에게 알린 것이다. 주일이던 6월 12일 언론에는 황 박사와 정 대주교의 만남을 예고하는 뉴스가 온종일 보도됐다. 언론으로서는 과학과 종교의 대치 국면만큼 흥미로운 기삿거리도 흔치 않았을 것이다. 

다음날 날이 밝자 정 대주교는 오전부터 교구청 회의에 참석해 대책을 논의했고, 결국 황 박사를 만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정 대주교는 홍보실장(필자)에게 회담 준비를 맡기고 자리를 떠났다. 마침 그날 오후 황 교수 측에서 홍보실에 먼저 연락을 해왔고, 양 진영은 그렇게 만남을 정식 논의하게 됐다. 

세간의 관심 속에 6월 15일 수요일 오후 3시 명동 주교관 정진석 대주교 집무실에서 정 대주교와 황우석 교수의 만남이 시작됐다. 명동 주교관을 언론사들이 그렇게 가득 메운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다. 회담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40여 분간 진행된 이 날 만남에서 정 대주교는 가능한 말을 아끼며 황 교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정 대주교가 전한 말은 단 몇 마디였다. 배아, 즉 수정란과 같은 생명을 복제해 치료에 활용하겠다는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이며, 그 배경을 생명 윤리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복제된 배아라 할지라도 배아는 분명한 ‘생명체’라는 것과 그 대안으로 윤리적인 문제가 없는 성체 줄기세포를 연구해 줄 것을 강조했다. 또 가톨릭도 난치병 환자의 치료에 절대로 무관심하지 않으며, 오히려 최우선적으로 가톨릭 의학계를 통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황 교수는 유려한 말솜씨로 가톨릭에서 연구하는 성체 줄기세포 연구에도 관심을 갖겠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큰 무리 없이 서로의 입장을 설명하는 상황에서 마무리됐다. 생명 윤리에 관한 문제를 논의했다는 자체에 큰 의미가 있었고, 앞으로 윤리와 의학과 과학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열린 마음으로 인간 존엄성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회담이 다 끝날 때까지 주교관 마당에는 언론사 기자들이 한 명도 자리를 뜨지 않은 채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교구 홍보실장과 황 교수 측의 교수 한 사람이 함께 기자회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 내용은 정 대주교와 황 교수는 생명 존중에 대해 일치된 의견을 보였고, 천주교 측은 배아 줄기세포 대신 성체 줄기세포 연구를 해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양 진영의 첨예한 논쟁을 기대했던 기자들은 허탈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사실 첫 만남부터 천주교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허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언론은 ‘만남 자체에는 의미가 있었지만 결과는 없었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이날 저녁 방송사 뉴스는 과학과 종교 지도자가 만나는 장면을 톱뉴스로 보도했고, 다음 날 조간신문도 두 사람의 만남을 사진과 함께 1면에 보도하며 중요하게 다뤘다.

두 사람의 만남은 외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날 만남 이후 이와 관련한 유럽 많은 매체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정 대주교로서는 황 교수와 만남 후 성체 줄기세포를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기회였지만, 국민들의 부정적인 반응은 더욱 악화됐다.

황 교수가 활동하고 있는 서울의 교구장인 그에게 이 모든 것은 숙명이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이 지나 어떤 결과가 주어지더라도 모든 것이 하느님의 역사이지….’ 정 대주교는 전교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그것 역시 하느님의 섭리라 여겼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새 모든 가톨릭을 대표하는 생명 운동의 기수가 돼 있었다. 이제 그가 할 일은 어려운 순간들을 함께해 주신 주님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감사의 기도를 올릴 일뿐이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관리자 : 위 기사는 가톨릭평화신문에서 발췌한것임을 밝힙니다.
언론사 :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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