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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경시하는 모자보건법, 폐지 운동은 현재 진행형

관리자 | 2008.12.15 22:42 | 조회 4373

 

 


▲ 한국 가톨릭 생명운동의 도화선이 된 모자보건법 제14조 폐지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진은 1990년대 중반 경기도 고양시 원당본당 신자들의 낙태반대 가두 캠페인 장면.

"[격동의 현대사, 교회와 세상] 모자보건법 제정과 생명운동 "



생명경시하는 모자보건법, 폐지 운동은 현재 진행형


1973년 1월 30일.

 유신체제 하 비상국무회의는 가톨릭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모자(母子)보건법을 통과시켰다. 박정희 정권이 1972년 10월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한 터라 여론을 수렴할 수 있는 장치는 아무 것도 없었다.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즉각 "모자보건법은 생명경시 풍조ㆍ모체건강 파괴ㆍ노동력 부족 등 국가적, 민족적 불행을 초래하는 독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내용의 사목교서를 발표했다. 주교단은 2월 18일 주일미사 때 신자들 앞에서 사목교서를 낭독하도록 사목자들에게 지시했다. 또 일부조항 삭제와 개정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대통령과 보건사회부 장관에게 발송했다.


 
# 모자보건의 탈을 쓴 낙태 합법화 조항
 모자보건법은 '모성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건전한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도모함으로써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교회는 이처럼 좋은 취지의 법률 제정에 왜 반대하고 나선 것일까?

 더욱이 가톨릭교회와 유신정부 관계는 1967년 강화도 심도직물 사건 때문에 매우 껄끄러울 때였다. 교회로서는 모자보건법 제정에 반발하는 일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모자보건법에는 주교단 지적대로 치명적 독소조항이 들어 있다. 은밀하게 이뤄지던 낙태행위에 합법성의 출구를 열어준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상자기사 참조)가 대표적이다. 이 조항은 인공임신중절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낙태를 자유화한 악법이자, 우리 사회에 생명경시 풍조와 죽음의 문화를 확산시킨 주범이다.

 이 법은 △유전적 정신질환이나 신체장애가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을 앓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사이 임신 △임신의 지속이 모체 건강을 해치고 있는 경우에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사실상의 낙태 합법화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낙태행위는 형법 제269~270조(상자기사 참조) 때문에 드러내놓고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1년 이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였기때문에 부부 동의 하에 은밀하게 이뤄지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을 아예 폐지하고 싶어했다. 전후 '베이비 붐'으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자 산업경쟁력 약화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모든 정책을 경제부흥에 맞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던 터였다.

 정부는 궁리 끝에 모자보건법에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라는 예외조항을 만들어 낙태 합법화의 출구를 열어줬다. 낙태를 통해 인구를 조절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게 이 조항이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정권 시절이었으나 이에 대한 주교단 입장은 단호했다. 인간은 임신되는 순간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존엄하기에 낙태의 합법적 허용은 살인의 합법적 허용과 마찬가지라며 강한 어조로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 생명 가치 이하 위해 생명 살해 안돼  
 주교단은 모자보건법 통과 직후 발표한 사목교서에서 "생명 이하의 가치(불의의 임신을 하고서 낙태를 통해 자신들 명예를 살리는 행위 등)를 위해서 생명을 살해해서는 안 된다"며 "또한 낙태수술 자유화는 인구조절에 있어서도 20년만 지나면 후회하게 될 정도로 노동력 부족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톨릭병원협회도 "인간은 수태되는 순간부터 생명"이라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하고 가톨릭적 가족계획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주교단은 이후에도 △인공인심중절에 대한 우리의 태도(1976년) △인공유산과 불임수술에 관한 담화(88년) △태아의 생명을 죽이지 말라(92년) 등의 사목교서 및 담화를 통해 14조 폐지를 촉구했다. 특히 1992년에는 형법개정안 제135조(낙태 허용 범위 신설) 입법폐지 청원서와 함께 107만 명 서명부를 국회에 제출했다. 2000년 말에는 모자보건법 폐지 청원서와 124만 명 서명부를 국회에 또 제출했다.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된' 뱃속 생명을 보호하려는 주교단 목소리는 산아제한 문제가 거론된 1961년에 처음 나왔다. 이 목소리는 주교회의 생명31운동본부가 지난 8월 22일 '모자보건법과 산부인과 의료수가 개선방안'에 대한 세미나를 열어 낙태죄의 엄격한 적용을 촉구한 것까지 포함해 47년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계속 귀를 막고 있다. 모자보건법 폐지 청원에 대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002년 "여성 선택권과 어쩔 수 없는 낙태 필요성으로 청원을 받아들일 수 없어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기로 의결했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등 여러 기관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연간 150만 건, 하루 6000여 건, 20초에 1건씩 낙태가 자행되고 있다. 이처럼 무차별적으로 뱃속 생명이 죽어가는 참극을 불러온 주범이 모자보건법 14조다.

 특히 이 조항은 법과 현실의 극단적 이중성을 드러내며 가장 강력한 규범력을 갖는 형법마저 무력화시켰다.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는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연간 150만 건이라는 숫자에서 보듯 우리나라처럼 낙태가 일반화된 국가도 없다. 낙태죄는 사문화(死文化)됐다.

 모자보건법 14조 폐지운동은 한국 가톨릭 생명운동의 도화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교회는 1970~80년대 격동기에 시급한 현안들 때문에 응집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또 실천적 행동이 수반되지 않은 채 주교단의 선언적 사목교서에만 의존했다. 또한 산업화와 서구화에 따른 성개방 풍조가 너무 빨리 유입돼 이 조항을 폐지할 수 있는 결정적 시기를 놓쳤다는 의견도 있다.

 모자보건법 제14조 폐지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 관련법 조항 알아보기

<형법상 낙태의 죄>
제269조(낙태)
 ①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서 낙태하게 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③제2항의 죄를 범해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 낙태) ①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없이 낙태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④전3항의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

<모자보건법 제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 한계>
 ①의사는 다음 각호의 1에 해당되는 경우에 한하여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자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얻어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②제1항의 경우에 배우자의 사망ㆍ실종ㆍ행방불명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동의를 얻을 수 없는 경우에는 본인의 동의만으로 그 수술을 행할 수 있다.
 ③제1항의 경우에 본인 또는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때에는 그 친권자 또는 후견인의 동의로, 친권자 또는 후견인이 없는 경우에는 부양의무자의 동의로 각각 그 동의에 갈음할 수 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평화신문] 2008. 10. 05 [9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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