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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 가톨릭교회의 입장은?(서울교구 주보 10.14일자)

관리자 | 2008.12.15 21:55 | 조회 5571

사회교리로 보는 세상이야기

양심적 병역거부, 가톨릭교회의 입장은?

지난 9월18일, 정부는 이르면 2009년부터 종교적인 사유 등으로 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허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의 2배인 36개월 정도로 하고 병역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난이도가 높은 전남 소록도의 한센병원 등 9개 국립 특수병원과 전국 200여 개 노인전문요양 시설 등에서 치매노인이나 중증 환자를 돌보는 것이 대체복무의 대상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해마다 700∼800명 정도이며 그 동안 양심의 자유와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었다. 그러나 2002년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반전과 평화에 대한 신념’을 내세우며 병역거부에 동참한 젊은이들이 나타났고, 2001년 불교신자 오태양 씨, 2005년 10월에는 천주교 신자인 고동주(비오) 씨가 종교적인 신념을 이유로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집총 대신 감옥을 택함으로써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이제 한 종단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전체의 문제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5년 12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면서 “헌법 19조의 양심의 자유와 39조 국방의 의무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대체복무안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그 동안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는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했다. 병역의무의 형평성의 문제, 분단국가의 현실, 국민적 정서 등을 감안할 때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또 양심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고, 병역기피 목적으로 악용할 소지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가 실시해 온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체복무 도입 찬성이 2005년 23.3%에서 지난 해 39.3%, 그리고 얼마 전 전·의경 및 산업기능요원 제도를 대신 할 사회복무제도 도입(2008년부터 시행, 22개월 복무) 발표 이후에는 50.2%로 늘었다. 또한 양심의 자유, 인권 문제뿐 아니라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병력특례로 산업체에서 병역을 대신하는 현실에서 과연 해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킨 700∼800명의 젊은이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제도인가라는 의문이 계속 제기되어 왔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1965년에 발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목헌장>에는 “양심의 동기에서 무기 사용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위한 법률을 인간답게 마련하여, 인간 공동체에 대한 다른 형태의 봉사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79항)라고 밝히고 있다. 1997년에 개정된 <가톨릭교회교리서>는 “군인 생활로 조국에 대한 봉사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안전과 자유를 위한 역군”(2310항)이지만, “양심상의 이유로 무기 사용을 거부하며 다른 방법으로 인간 공동체에 봉사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국가가 공정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2311항)이라며 대체복무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2004년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에서 펴낸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는 “군복무가 의무인 경우에도 양심에 따라 모든 종류의 무력사용을 거부하거나 특정한 전쟁에 참가하는 것에 반대하여 원칙적으로 군 복무를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대안적 형태의 복무를” 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지난 8월8일, 한국 남자 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주최로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신학생 설문조사 보고회’가 열렸다. 이 조사에 의하면 대체복무에 대해 찬반이 비슷한 가운데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고 있는 신학생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모르는 신학생들보다 대체복무에 대해 더 긍정적인 응답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회는 군복무와 대체복무가 둘 다 평화를 위한 양심의 선택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한국 가톨릭교회가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를 인정하고 있는 사회교리의 내용을 우리 사회에 보다 적극적으로 알리고,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의 대안 마련을 위한 노력을 정부에 촉구하도록 제안했다.

가톨릭 신자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교회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하고 이번에 도입하는 대체복무제가 합리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 박정우 후고 신부·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서울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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