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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인간의 ’씨앗’은 안 된다

관리자 | 2008.12.15 21:53 | 조회 4576

[세상읽기] 인간의 ’씨앗’은 안 된다 / 심범섭
세상읽기 -한겨레 2007. 4.2

» 심범섭 인서점 대표


인간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될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주’요, 또 하나는 ‘생명’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대상과 그리고 주체로서의 생명, 그 본질에 대한 탐구심은 당연하다. 그러나 엿보거나 건드려서는 안 될 금기의 영역도 있다. 왜 그런가. 지금 우리가 인류의 마지막 재앙으로 인식하고 있는 저 ‘핵 문제’의 의미를 생각해 보라. 그 둘은 우주의 씨앗이다. 전쟁의 도구였던 철없는 과학이 새 길을 찾아 금기의 영역을 엿보고 있다. ‘생명과학’ 내지는 ‘유전자공학’의 이름을 빌려 생명의 뿌리에, 특히 인간의 씨앗에 강한 유혹을 느끼고 있으니, 걱정이 태산 같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달을 정복했고 태양계의 여러 행성을 수색하였으며, 칼을 들고 극히 비밀스러운 생명의 발원지까지 쳐들어가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저 유전물질을 갈가리 찢고 그 비밀의 지도를 훔쳐내어 손금처럼 들여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뿐인가. 뻔한 명목으로 인간의 번성이라든지 행복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태양계 너머의 별을 관측하고 수천 미터에 이르는 땅속은 물론 깊은 바다에까지 손을 내밀어 정교한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하며 그 움직임과 생성의 본질을 밝히려 하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지구가 평평한 것이 아니라 둥글다는 것에서부터, 해가 도는 것이 아니라 땅이 도는 것이며, 달은 지구의 위성이며, 생명은 세포의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렇게도 명명백백하게 밝혀냈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신 앞에 나아가 눈물을 흘리며 경전을 암송하고 기도하고 절을 한다. 우리는 과학이 밝히는 무엇을 믿는가.

허황한 꿈으로 결말이 나긴 했지만, 세계의 선두주자를 자처하며 인간의 비밀을 엿보고 그것으로 한바탕 큰 장사를 해 보겠다던 ‘줄기세포 연구’가 뜻밖의 암초인 황우석 사태로 난파된 것은, 사실 그것에 목을 매야 하는 간절한 이들에겐 너무나 미안한 말이지만 천만다행이었다. 그래서 뜸하던 ‘생명공학’이, 아니 ‘생명 복제’가, 아니 ‘인간 복제’가 새로운 동력을 얻고 있다. 그동안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일부만이라도 허용해야 한다”는 과학계와 “동물실험에 국한해서 허용하자”는 윤리학계의 요구가 팽팽하게 맞서오던 중에, 지난달 23일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과학계의 손을 들어주면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생식세포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의결된 것이다. 국민은 물론 이 나라 정부가 여전히 인간의 씨앗을 시장논리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사그라지던 우리의 허황한 꿈을 정부가 나서서 군불을 때고 있는 것이다.

잠시 생명공학을 기다리고 있는 시장으로 가 보자. 이미, 정자·난자·혈액·골수 등의 인체은행이 난립한 상황이지만, 이런 소박한 재래시장의 수준을 벗어나면 사정은 사뭇 달라질 것이다. 만약, 나의 복제품이 나의 모든 건강 문제를 위해 애완동물처럼 내 집에서 사육되거나 또는 어떤 곳에서 준비되는 그런 날이 온다면 말이다. 오! 이 얼마나 경탄해 마지않을 일인가. 그렇다면 ‘얼짱’ ‘몸짱’이 되는 것쯤은 식은 팥죽 먹기가 될 것이니 구태여 번거로운 성형수술 시장은 사라질 테지만, 마치 유전자로 옥수수나 콩 씨를 생산하는 것만큼이나 자식들의 머리를 아인슈타인의 두뇌로 바꿔주는 것도 쉬워질 터이다. 그러면 ‘자식 품종 개량’ 사업은 크게 성공하지 않겠는가. 이미 우리는 이 재앙의 시장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인간의 씨앗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심범섭 인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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