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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아프면 마음부터 살피세요]자살, 예방할 수 있다"

관리자 | 2008.12.15 21:52 | 조회 4527

"[몸 아프면 마음부터 살피세요]자살, 예방할 수 있다"
[동아일보] 2007. 3. 12

《‘44분마다 1명, 매일 33명, 1년에 1만2047명.’

‘자살 공화국’ 한국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의 숫자다. 1996∼2005년 10년간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8만3000명으로 웬만한 중소도시의 주민 수에 맞먹는다.

한국은 1996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12.9명으로 낮은 국가였지만 2004년 24.9명으로 크게 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 자살 증가율 1위인 국가가 됐다.

이는 사회 발달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이 아니다. 정신건강에 대한 무지와 사회 시스템의 부재가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

자살자의 80%는 자살을 실행하기 전에 우울증이나 적응장애를 겪는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나 주변 사람들이 위기 상황을 제대로 감지해 차단한다면 자살은 줄일 수 있는 사회현상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 자살자의 80%는 정신질환 증세

40대 주부 이모 씨는 지난해 5월 수도권의 한 정신보건센터에 ‘쓸모없는 ×이 살아서 뭐 하느냐’는 환청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이 씨의 증상은 10여 년 전에 시작됐다. 아이를 낳은 뒤 의욕이 떨어지고 집에 있는 줄만 보면 목을 매고 싶은 충동을 느낀 이 씨의 병명은 산후우울증. 그는 약을 먹다가 증상이 호전되자 치료를 하지 않다가 2002년 자살을 시도했다. 이후 우울증 약을 처방받고도 먹다 말다 하던 이 씨는 지난해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신보건센터 측은 “이 씨에게 약을 끊지 말라고 권고했지만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자들은 조금만 증상이 호전되면 약을 먹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 정신과 약은 중독성이 있다고 생각해 되도록 약을 먹지 말라고 하는 가족도 있을 정도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홍준표 교수는 “우울증 환자들은 증상이 조금 나아진다 싶을 때 자살률이 높아진다”며 “절대로 혼자 판단해 약을 끊어선 안 되며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증세가 호전됐을 때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자살예방협회가 2005년 전국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평생 적어도 한 번의 자살을 생각해 본 사람은 33.4%나 됐다. 3명 중 1명꼴로 자살 유혹을 느낀다는 뜻이다. 특히 청소년의 자살 충동은 조사에 따라 49∼64%에 이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는 암이었고 자살은 4위였다. 20, 30대 젊은 층에서는 자살이 1위였고 10대는 자살이 2위였다.

김포한별병원 서동우 원장은 “젊은 층이 주로 자살로 숨진다는 것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 사회의 손실”이라며 “육체적 질환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에도 보건정책의 우선순위를 두는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자살 충동 단계부터 적극 개입해야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자살을 줄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우울증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기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사람이나 자살 시도자를 적극 관리하기 △농약을 잘 관리하기 등을 들고 있다.

특히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끝내 목숨을 끊을 확률은 27.5%나 된다. 조울증(15.5%), 우울증(14.6%) 환자의 자살 확률보다 훨씬 높다. 이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있다면 가족이나 친구들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울증 등 자살로 이어지는 정신질환의 초기 증상을 미리 알아야 효과적인 대처가 가능하다. 가족이나 친구가 갑자기 식사량이 줄고 말이 없어지거나 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 아예 자지 않는다면 우울증인지를 의심해 봐야 한다.

정신건강을 위한 사회 시스템 보강도 시급한 과제다. 자살 예방 교육을 잘하는 나라인 호주에서는 정신질환자를 돕는 방법을 알려 주는 ‘정신건강 긴급구조’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다. 호주는 2002년 우울증을 극복하자는 ‘비욘드 블루(Beyond Blue)’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실시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불안장애 등으로 정신질환 캠페인 대상을 늘리고 있다. 호주의 자살률은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한 해인 2002년 10만 명당 16.1명에서 2004년 14.5명으로 크게 줄었다.

뉴질랜드는 청소년에게 영향력이 큰 유명 축구선수나 디자이너 등이 가족과 함께 공익광고에 나와 자신이 직접 겪은 우울증 등을 고백하고 정신질환도 치료를 받으면 완치된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 있다.

한국은 전국 시군구 234곳의 절반 이상인 135곳에 정신보건센터(대표전화 1577-0199)가 설치돼 있지만 상주 인원이 한두 명인 곳이 많아 효과적인 상담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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