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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관심이 목숨을 구한다

관리자 | 2008.12.15 21:52 | 조회 4462

작은 관심이 목숨을 구한다 (2007. 2.20 한겨레)

» 서홍관/국립암센터 의사·시인



최근 몇 해 사이에 연예인과 유명인의 자살 사건이 잇따라 보도되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의 자살도 점점 늘고 있어서 사망 원인 통계를 보면 1위의 암, 2위 뇌혈관질환, 3위 심장질환에 이어 4위에 올라와 있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3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으며, 이는 10년 전에 비해 갑절 이상 증가한 것이다. 더구나 20대와 30대에서는 자살이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살의 가장 흔한 원인은 우울증으로, 70%를 차지한다. 우울한 감정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취직이 안 되고, 성적이 오르지 않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가까운 사람과 불화를 겪고 있다면 우울해지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다. 여기서 우리는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한 심각한 경우를 구분해야 한다. 사는 재미가 없고, 자기 삶이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고, 정상적인 식사를 하기 어렵고, 잠을 지나치게 많이 자거나 반대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의사와 상담이 필요한 시점이다.

몸이 안 좋을 때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듯이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찾아온다면 정신과 의사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신과 진료에 대해서 가지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병원을 찾지 않고 미적거리는 것은 마치 신체의 병을 키운 뒤에 병원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울증 환자가 치료를 소홀히 하여 자살에 이른다면 본인의 귀중한 생명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의 자살은 아직 자신의 인생의 가능성을 충분히 탐색해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인생의 귀한 가능성과 미래를 송두리째 없앤다는 점에서 더 안타깝다.

그러나 자살하는 사람들도 되돌릴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많이 망설이게 되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막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구원 요청의 의미를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다.

주변에서 누군가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던 물건을 선물한다면 너무 좋아만 하지 말고 이게 무슨 의미인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더구나 그 사람이 자신의 서랍을 정리하고 편지나 사진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다면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또 불안 초조하고 분노를 표출하던 사람이 갑자기 평정을 찾거나, 먼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한다면 이제 만나서 깊은 대화를 해봐야 할 시점이다.

그 사람이 자살할 생각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너무 간단하다. 죽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된다. 놀랍게도 자살할 생각이 있는 사람은 이럴 때 솔직하게 대답한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어떻게 죽고 싶으냐고 재차 물어봐야 한다. 막연하게 그냥 편안하게 죽고 싶다든지, 조용히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대답한다면 아직은 시간 여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자살할 방법을 생각해 두었다거나, 자살할 장소를 답사했다거나, 목을 매는 끈을 생각해 두었다면, 매우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는 응급상황에 속한다. 즉시 가까운 가족에게 연락하여 도움을 청하고, 혼자 있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의사의 도움을 받고 필요하면 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

자살도 자신의 목숨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자살은 한순간의 위기에 구원의 손길을 잡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다. 위기의 순간에 주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은 아까운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서홍관/국립암센터 의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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