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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DB 구축 법안의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참여연대의 성명

관리자 | 2008.12.15 21:46 | 조회 5065

‘경찰국가’ 꿈꾸는 위험한 욕망

유전자DB 구축 법안의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참여연대의 성명

정부는 어제(7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살인, 강간 등 11개 범죄의 피의자 및 수형자를 대상으로 유전자를 채취, 수집하고 이를 데이터베이스(이하 DB)화 하여 관리,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유전자감식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범죄의 사전예방과 범인의 조기검거를 통한 치안확립을 이유로 내세워 이 법이 통과되면 강력범죄가 줄어들어 국민생활의 안전이 도모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유전자 DB의 구축이 국민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국가가 마음대로 통제하겠다는 반인권적 발상이며,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범죄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도 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의 철회를 요구한다.

유전자정보(DNA)는 개인은 물론, 유사한 유전적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가족과 친지까지도 식별할 수 있는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이다. 유전자정보는 이에 더해 단순한 신원식별뿐 아니라 질병정보, 특수한 유전적 소인 등 민감하게 보호해야 하는 개인정보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이를 국가가 DB화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이용하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써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또한 이 법률안은 비록 그 적용 대상을 특정 범죄의 피의자나 수형자로 제한하고 있지만 기본권에 대한 제한은 필수불가결한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헌법의 ‘과잉금지 원칙’에 반하는 위헌적 법률이다.

정부는 강력범죄에 대한 신원확인 용으로 엄격히 한정하여 유전자DB를 수집하여 이용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유전자 DB의 본질적 특성과 유사한 외국의 전례로 볼 때 신뢰할 수 없는 주장이다. 이른바 유전자은행이라 불리는 DB의 구축이 현실화되면, 은행이 예금을 모으듯 입력대상의 확장은 필연적이다. DB의 특성상 입력대상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만 그 효율성이 제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전자 DB 입력대상의 확대에서 그치지 않고 활용범위의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매우 크다. 앞서 밝히 바처럼 유전자정보는 개인과 그 가계의 유전적 특성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범죄수사에서 뿐만 아니라 질병연구 등의 폭넓은 분야에서 그 활용범위가 매우 높다.

이러한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외국의 사례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전자DB의 선구자격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에서는 법원이 경찰에서 유죄증거로 DNA를 제시한 살인혐의자에 대해 증거의 적법성 결여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바 있어 유전자DB의 효용성 자체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 바 있으며, 범죄와 상관없는 시민들에게까지 유전자감식정보를 수집하게 된 결과 현재 영국 내무부가 구축한 유전자 DB의 10%, 경찰이 확보한 유전자 감식정보의 3분의 1이 무용지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영국 경찰은 범죄수사를 위해 추출한 혈액을 이용 당사자의 인지나 동의 없이 HIV(AIDS를 일으키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검사 등 의료적 목적의 유전자 검사에 사용해 물의를 일으킨 경우도 있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뉴욕주는 유전자DB 구축 대상범죄가 시작단계에서는 21개였던 데 반해 1999년에는 비폭력범죄를 포함해 107개 범죄로 대폭확대 된 바가 있다. 또한 미국의 24개주는 분석 후 남은 유전자정보를 법집행 외에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앨라배마주가 ‘의료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유전자DB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유전자DB를 여론의 지지를 얻기 쉬운 성폭력 범죄 등 강력 범죄로 제한하겠다는 것은 유전자 활용에 대한 우려와 인권침해 논란을 축소하기 위한 매우 전략적인 명분일 뿐 유전자 수집 대상과 활용분야의 확대는 외국의 사례처럼 필연적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전 국민의 주민등록 번호와 지문날인 제도로 인해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할 때도 언제든 개인의 고유한 정보를 범죄수사의 자료로 활용할 기반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자DB 구축 없이는 강력범죄가 근절되지 않을 것처럼 치안불안감을 자극하여 법을 관철하려는 것은 ‘경찰국가’를 꿈꾸는 위험한 욕망에 다름 아니다. 정부와 수사기관은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겠다는 이 시대착오적 욕망을 즉시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참여연대는 범죄수사에 있어 유전자 감식정보의 효용성을 인정하고, 그 개별적 이용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해 화성 여대생 피살 사건 수사과정에서 명확한 법적 근거도 없이 1,000명에 육박하는 택시기사들의 유전자 정보를 무작위로 채취한 예에서 보듯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유전자 감식을 이용한 수사방식도 명확한 기준과 법적근거 없는 주먹구구식이다. 따라서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유전자 정보를 개별적으로 활용하는 수사기법의 법률적인 정당성을 마련하고 인권침해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아울러 성폭력 범죄 등 강력범죄의 예방을 위해 양형강화 등 엄격한 법집행 원칙을 확립하고 형사정책의 전면적 재검토를 통해 범죄자 수감이 단순한 격리가 아닌 사회복귀를 위한 교화의 과정이 되도록 하는 등 근본적 대책수립에 힘써야한다.

참여연대는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위헌성이 분명한 이 법안의 철회를 위해 시민사회와 함께 노력할 것이며, 국회 또한 이 법안이 국민에게 해가 된다는 점을 인식해 국회의결을 거부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지난 2년간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개인정보보호기본법 제정을 서둘러 개인정보가 활용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이라는 법률적 원칙을 시급히 확립할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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