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 생명문화의 학적 기반

관리자 | 2011.11.01 10:19 | 조회 832

[생명의 문화] 생명문화의 학적 기반

 

 

신승환 교수(가톨릭대 철학과)
 


생명을 살리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은 생명이 죽어가고 삶이 부서지는 현대 문화의 위기에 대한 자각에서 구체화됐다. 이러한 인식은 멀리는 철학적 맥락에서, 가까이는 현대 문화의 위기 현상에 대한 비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간략히 언급하자면 여기에는 18세기 이래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 기준이 된 서구 근대의 철학적 원리와 문화적 현상, 그 체계에 대한 비판이 자리하고 있다. 이른바 근대성 극복과 함께 새로운 철학적, 문화적 원리로서 생명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란 관심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거론하는 까닭은 생명이란 문화적 토대를 떠나서는 올바르게 자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이해와 생명을 존중하려는 문화적 토대 마련, 인간 생명과 삶이 올바르게 이뤄질 수 있는 삶의 터전 위에서야 생명은 올바르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교회 내에서는 교황 회칙 「생명의 복음」이 구체적으로 이런 문제를 거론하고, 생명을 존중하고 살림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지상 과제를 언급한 데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가려면 무엇보다도 과잉으로 치닫는 현대 문화의 방향을 분석하고 교정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이런 일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현대의 철학적 흐름과 경향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넘어설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와 문화 현상은 유럽적 정신과 철학, 그 문화가 보편적 기준으로 자리잡으면서 생겨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우 중국과 유럽이 맞선 1840년대 이후 동아시아 정세, 일본 근대화와 그를 통한 구한말의 역사적 경험이 빚은 결과다. 그 이후 지난 150여 년은 우리에게는 제국주의 횡포와 착취, 야만적 행태를 극복하고 대응해온 시기였다. 1970년대 이래 이뤄진 우리 문화와 사회적 업적은 그런 모습을 너무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를 통해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룩한 것도 사실이며, 일정부분 세계의 주목과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아니 바로 그렇기에 생명을 살리고 존중하며,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과제와 의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고 생명의 터전인 생태계와 삶의 터전인 문화를 최소한으로 지키는 데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지닌 생명에 대한 의무와 과제는 적극적으로 창조 의미를 되돌아보면서 생명을 살리고 생명이 그 목적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투신하고 헌신하는데 있을 것이다.

 동물의 생명과 달리 인간 생명은 다층적이며, 의미론적일 뿐 아니라 실존적이며 존재론적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인간 생명과 삶은 영성적이며 초월적인 영역까지도 지니고 있음을 누가 부정할 것인가. 아니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 생명은 생리적 층위를 넘어 존재론적이며 초월적 영역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생명의 문화를 위한 우리 과제는 여기에 있다. 성경의 모든 가르침이 결국 창조된 생명의 신비를 달성하고, 생명의 의미와 목적을 구현하는 데 있기에 끊임없이 생명을 살리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함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하느님 뜻을 저버리는 불의를 넘어 정의를 말하고 있으며, 신약성경은 정의를 넘어 적극적으로 자신을 비워가는 가운데 이뤄지는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 복음의 근본 가르침은 자기비움(kenosis)을 통한 이웃 사랑과 그를 통해 이뤄가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만남에 있다. 그것은 결국 생명을 살리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문화는 위기에 빠져있다. 현대 문화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데에는 물론, 생명을 살리는 길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그것은 많은 철학자들 지적처럼 근대 이래 철학이 과잉으로 작동하기에 비롯되는 현상이다. 그 문화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삶을 다만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서만 규정하고 있다. 진리를 이해하고, 참된 지식을 얻는 길을 다만 사물적 존재자에서 객체적 지식을 구하는 현대 학문의 흐름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이로써 개별적 생명 현상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생명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의 국가제도와 민주주의란 정치체제는 최소한의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마치 최고의 체제인 양 치부함으로써 순차적으로 되풀이 되는 권력 과잉과 거기에서 소외된 이들의 요구는 무시되고 있다. 그래서 시민과 시민사회, 공공성이 사라진 사회로 치닫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풍토가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몰가치화하는 사회를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복음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실현하는 것은 이런 반생명적인 문화적 흐름, 인간과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객체주의적 경향을 벗어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참된 생명의 문화는 이러한 반생명적 흐름, 몰생명적 철학을 넘어서는 데서 시작되며, 이로써 생명의 의미를 존재론적이며 초월론적으로 정초하는 방향에서 다듬어질 것이다.

[평화신문]    [1120호][2011.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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