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가정,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

관리자 | 2008.12.15 23:37 | 조회 1382


이동익 신부/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장

" 가정,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 "



가정을 일컬어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라고 한다. 남편과 아내 사이 일치를 가장 충만하게 드러내는 가정은 단순히 우연적 공간 안에서 그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곳이라기보다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통해 사랑과 생명을 더 확고히 하고 나아가 또 다른 다양한 관계를 창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종의 제도로서의 가정은 사적인 것에서부터 공적인 것, 사회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숱하게 많은 일들이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이 보다 완전한 개인적 성장을 위해서나,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가장 작은 기초 단위의 공동체이며, 이 작은 공동체의 기초가 곧 사랑과 생명인 것이다.
 그런데 가정에 대한 이러한 기본 인식이 변화되고 있다.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경험하게 되는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우리의 가정이 그 변화의 태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한 가운데 있는 오늘날의 가정은 이제 더 이상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실상 가정이라고 하면 가족 구성원 상호간의 사랑에 의해 지지되는 일종의 내적, 외적 제도라고 말해왔지만 사회가 다양해지고 산업이 발달하면서 이제 가정은 제도보다는 능률과 효용의 관점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과거의 가부장적 가정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던 결속과 책임, 도움과 보호는 차츰 사라지면서 일과 물질, 소비와 쾌락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만 것이 현대 사회의 모습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통적 가정 모습의 붕괴는 특히 산업화 시대 이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분할화된 가정의 모습은 가족 구성원들을 일의 노예로 몰고 가면서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케 만드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남자로서, 여자로서, 혹은 아버지, 어머니, 자녀로서의 정체성은 서서히 상실되어 갔고, 사회와의 관계에서 볼 때 결국 가정은 사회의 요구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소비가 가정의 본질을 무너뜨리기 시작했고, 유용성은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기본가치는 사라지고 하느님은 단순히 흥미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대인의 급변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등장하는 오늘날 가정 모습은 현대인의 외적 모습의 중시 현상과 매우 흡사하게 전개되고 있다. 전통과 관습, 사회 질서, 정신적 가치 등은 이미 고루한 것으로 배격되고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려는 소위 '자율성의 문화'는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가정 안에서 유용성과 쾌락만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것은 가정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생명과 사랑을 외면하는 것이며, 이러한 현실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정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기이다.
 우리 사회의 출산율 급감, 이혼율 증가, 얼마나 많은지 그 숫자조차도 짐작할 수 없는, 수많은 낙태가 위기의 구체적인 증거가 아닐까.
 이는 곧 우리 사회의 위기라는 일종의 경종이다. 물질과 쾌락, 유용성과 편리함이 우리 가정과 사회의 큰 가치로 등장하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두려움의 늪으로 빠져가고 있는 듯하다.
 생명의 존중은 우선 우리 가정의 변화를 요구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가르치듯 부부와 부모들이, 지치지 않는 너그러운 사랑의 모범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며, 사랑의 형제적 유대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해 당신 자신을 희생하신 그 사랑의 표지가 되어, 그 사랑에 참여하도록 불림을 받았다는 (「교회헌장」 41항 참조) 가장 기본적 소명을 사는 데서부터 변화는 시작되지 않을까.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기도하는 것, 서로의 관심에 대해 대화하는 일, 그럼으로써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 등과 같은 가정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을 되찾는 것이 시급하다.
 각 가정의 이러한 노력이 구체적으로 결실을 맺으려면 본당이 '가정들의 가정' (바오로 6세 회칙 「인간 생명」, 9항; 「가정 공동체」, 50항 참조)이 되기를 제안하고 싶다. 그리고 전례와 교리교육 그리고 애덕의 실천에도 가정이 적극 참여하도록 권하고 싶다.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가 더 크게 확장되고 발전될 수 있기 위해서다.


[평화신문] 2008. 11. 09 9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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