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 연예인 자살, 더 이상은 안 된다

관리자 | 2008.12.15 23:36 | 조회 1534

▲ 우 재 명 신부(서강대 신학대학원장ㆍ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생명의 문화] 연예인 자살, 더 이상은 안 된다 "


애틋한 사연 미화하는 언론도 문제


잇단 연예인들 자살 소식은 마치 가족의 한 사람을 잃은 듯 허망하고 믿어지지가 않는다.
 사람들은 연예인들을 TV매체를 통해 거의 매일같이 만나면서 정서적으로 가족보다 더 가까이 느끼고 있기에, 연예인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가까운 이의 죽음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그들의 자살은 사회에 더 많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연예인 모방 자살로 추정되는 몇 건의 자살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방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살의 해악성과 문제점을 보도하기 보다는 당사자의 애틋한 사정만을 들어 자살을 미화하려는 듯 한 언론의 태도는 문제라고 본다.
 2005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사회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당 26.1명으로 OECD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 수치는 10년 전인 1995년 인구 10만 명 당 자살률 11.8명에 비해 거의 2.2배 상승한 수치로, 한국 10대 사망원인 중 4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20-30대의 경우에는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우리사회의 생명에 관한 의식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생명의 복음」(1995)에서 생명에 대한 결정을 개인의 정당한 자유 표현으로 보는 현대인들의 왜곡된 자유개념을 지적하고 있다. 생명을 '살아내어야 하는' 최우선의 체험이 아니라 단순히 '소유' 혹은 '거부'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은 결코 선택 대상이 아니다. 공자의 효경(孝經)을 보면,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불감훼상 효지시야(不敢毁傷 孝之始也)'라 해서 자신의 몸을 훼손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불효라고 하고 있다.
 더욱이 가톨릭 신앙 안에서 생명은 '선물'로서, 내 공로로 인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느님 사랑으로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생명에 대한 결정은 오로지 하느님에게 주어져 있는 신성불가침 영역이며, 인간에게는 선물로 주어진 생명을 잘 돌봐야 할 의무가 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아름다운 꽃으로도 때릴 수 없는 귀한 존재이다. 옹기장이는 옹기를 만들 때 옹기 기능을 생각해 가장 적합한 흙을 찾는다. 마찬가지로, 옹기장이이신 하느님은 인간을 지을 때 가장 적합하고 좋은 흙으로 정성껏 빚어 만드셨다(이사 45,7-13참조).

 그렇기에 "너는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아사 43,3)이라고 하신다. 우리 각자는 진실로 하느님의 귀한 존재이다.

 자살을 시도하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너무 억울해서 못살겠다는 것이다. 구약성경 시대의 욥도 너무 억울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왜 이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자신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하느님은 욥에게 폭풍 중에 말씀하신다. "너는 평생에 아침에게 명령을 해 본 적이 있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지시해 본 적이 있느냐?"(욥 38,13)

 결국, 모든 것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존재하며, 인간이 가장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고통 안에 하느님이 함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욥은 알게 된다. 이제 고통은 지나가고 하느님께서는 욥에게 더 큰 상을 내려 보상하신다.

 C. S. 루이스의 말처럼, "모든 악 중에 고통만이 살균 소독된 악이다. 고통은 다른 악들처럼 첫 번째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병 혹은 원수)이 여전히 작용해 재발할 수 있다. 그러나 고통은 증식하는 성향이 없다. 고통이 끝나면 그것은 말 그대로 끝나는 것으로서,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기쁨이 뒤따라오게 되어 있다"(「고통의 문제」 중에서).

 고통은 인간의 자아실현 과정에서 장애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장애를 피하지 않고 넘을 수 있다면 장애는 인격 성장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죽어야 할 이유만을 찾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만일 죽어야 할 이유만을 찾는다면 세상은 죽어야 할 이유로 넘치는 고해 바다일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보라. 세상은 아름다운 가치로 넘치는 기쁨의 원천이다."

 필자는 이 글에 동의한다. 자살은 문제의 종결이 아니라 영혼에 남겨진 숙제의 시작이다.
 자살한 엄마를 찾는 아이가 '우리 엄마 살려 주세요'하고 외치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있지 않은가.

[평화신문] 2008. 10. 26발행 9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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