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생명」

관리자 | 2008.12.15 23:36 | 조회 1597

▲ 맹 광 호 교수(가톨릭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생명의 문화] 다시 보는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생명」 "


인공피임 반대한 교황의 고민

금년은 교황 바오로 6세께서 회칙 「인간생명」(Humane Vitae)을 반포(1968년 7월 25일)하신 지 꼭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교회관련 국제뉴스를 보면 이 회칙 반포 40돌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금년 내내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성대히 개최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4월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주최한 기념 생명학술대회가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일이 있다.
 교황님의 특정 회칙 반포를 기념하는 행사가 이처럼 주기적으로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개최되고 있는 일은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회칙 「인간생명」은 현대세계 문제를 예언적으로 다룬 귀한 문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회칙은 1968년 반포 당시 교회 안팎으로부터 엄청난 저항에 부딪쳤다. 그것은 한마디로 이 회칙이 모든 인공적 피임방법을 반대하는 교회의 전통적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진출 기회가 늘어나면서 피임이 증가한 서구 선진국들은 물론, 대부분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들이 급격히 증가하는 인구문제로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기에 당시에는 출산조절을 위한 피임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이 회칙을 준비했던 교황청 특별연구위원회 또한 이런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고 실제로 이 위원회의 첫 번째 보고서에는 일부 인공적 피임을 교회가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공적 피임을 반대하는 교회의 전통적 입장을 표명할 수밖에 없었던 교황 바오로 6세의 고민이 얼마나 컸는지는 회칙 반포 1주일 뒤 그를 알현하기 위해 모인 신자들 앞에서 하신 다음과 같은 훈화에 잘 반영돼 있다.

 "…이 회칙을 마련하는 데 필요했던 지난 4년 동안 내게는 무거운 책임감이 계속 됐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런 책임감이 내게는 적지 않은 정신적 고통을 줬습니다. (중략) 많은 반대 논증에 나는 몇 번이나 당황했으며, 인간적으로 이런 문제를 결정하고 선포해야 하는 사도적 사명의 부당함을 몇 번이고 느꼈습니다. 시대적 여론에 동의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현대 사회가 어렵게 받아들일 나의 의견을 고수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런 내 결정이 부부 생활을 지나치게 괴롭히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딜레마에 빠져 몇 번이나 주저하였습니다."

 이런 엄청난 심적 고통 속에서도 교황께서 회칙 「인간생명」을 반포하신 이유는 한마디로 모든 인공적 피임방법이 그 작용원리상 반생명적일 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의 건전성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교황께서는 만일 교회가 인공적 피임을 허용한다면 이것은 결국 부부 간 신뢰와 도덕적 민감성을 크게 떨어뜨리고(lowering of morality), 여성을 남성들의 성적 만족을 위한 '단순한 도구'(mere instrument)로 전락시키며, 국가권력에 의해 피임이 '위험한 무기'(dangerous weapon)로 사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축복 받아야 할 여성의 임신이 마치 '치료받아야 할 질병'(infection to be treated)인 것처럼 인식되어 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놀라운 일은, 이런 교황의 예측과 걱정이 이후 인공적 피임이 만연한 세계에서 하나도 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성병 만연과 혼외출산, 인공유산 증가는 물론, 가정파탄과 실질적 이혼 증가 등이 모두 부부 간 사랑과 성적 책임의식이 결여된 인공 피임의 성행, 그리고 이런 피임을 국가정책으로 강제해 온 데서 파생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신기한 일은, 그동안 적극적으로 피임을 장려해 온 각국 정부들이 요즘은 오히려 출산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또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임을 외치던 정부가 이제는 출산 장려를 위한 임산부 지원 정책까지 펴고 있으며, 그동안 전국적 피임사업에 앞장섰던 대한가족계획협회를 2006년부터는 인구보건복지협회로 이름을 바꿔 피임 대신 출산장려에 앞장서게 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토록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40년 전에 회칙 「인간생명」을 내신 교황 바오로 6세의 예언자적 용기와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평화신문] 2008. 09. 28 제9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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