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 태아 성감별 허용 과연 옳은가?

관리자 | 2008.12.15 23:36 | 조회 1525

"[생명의 문화] 태아 성감별 허용 과연 옳은가? "


여아의 낙태를 막아 남녀의 성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1987년 도입했던 태아의 성감별 고지 금지 규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그 이유는 "임신기간에 관계없이 낙태가 불가능한 임신 후반기까지 태아의 성감별 고지를 일괄적으로 금지한 것은 의료인과 태아 부모의 기본권 제한이며 위헌"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입법 당시와 비교해 남아선호경향이 현저히 완화됐고 남녀 성비가 여아 100명당 남아 107.4명으로 자연 성비인 106명에 근접하는 점 등을 감안하면 임신기간에 관계없이 성별고지를 금지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판시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청구인측은 "낙태의 위험성이 현저히 줄어드는 임신 말기에도 무조건 성별을 알려주지 않는 것은 행복추구권 위반"이고 무엇보다 21년 전 성감별 금지법 제정 때와는 달리, 요즘은 남아선호사상이 퇴색하고 남녀 성비가 자연성비에 근접한 상황으로 이 조항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의사들은 성감별 금지로 낙태가 억제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의사들의 부담만 가중시킨다고 한다. 의협은 의료기술 시행과정에서 알게 된 태아의 성별을 고지하거나 태아의 성을 감별하는 행위도 의료행위의 일종으로, 헌법상 직업의 자유에 의해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임산부측의 알권리 실현 측면에서도 태아의 성별에 대한 정보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펴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첫째, 둘째 아이의 남녀 출생성비는 106.1명으로 25년 만에 자연성비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아 100명당 남아 수가 통상 103~107명이면 정상수준으로 본다고 한다. 그러나 셋째, 넷째의 성비는 지역에 따라 121~132명으로 크게 늘어나 극히 불균형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1심 법원에서 처리한 낙태죄 관련 판결은 2004년 5건, 2005년 0건, 2006년 11건, 2007년 9건에 불과할 정도이다. 임신 8~9개월에도 원치 않은 성별이라든가 그외 어떤 이유에서든 낙태시술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다시 말해 임신 중 그 어느 시기에도 하려고 맘만 먹으면 실제로 낙태가 가능한 것이다.
 환자의 알권리 보호에 대해 주장한다면, 먼저 태아의 성별을 알고자 하는 임산부를 비롯한 그밖의 가족이 이 권리 보호 대상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환자(임산부)의 생명과 연관된 중요한 정보라면 알려주는 것이 옳지만,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질병이 아니라, 하나의 자연스런 생식과정으로 봐야 한다. 태아의 성감별 고지는 환자의 알권리와는 관련 없으며, 단지 호기심 충족에 지나지 않다.
 산부인과 의사가 할 일은 건강한 출산을 돕는 일이다. 의사의 직업 수행 목적은 환자의 건강 도모와 질병 치료에 있으며, 무엇보다도 생명의 보호에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태아의 생명을 위험에 몰아넣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아의 성별을 고지하는 것이 의사의 직업 수행의 자유라고 주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생명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가치다. 그 어떤 경우에도 부모의 알권리나 행복추구권이 어린 생명보다 더 소중하진 않다. 성감별의 목적이 단순히 호기심과 태아를 맞이 할 준비에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아이의 옷과 유아용품을 미리 구입하는 등 출산 준비를 위해 태아 성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큰 설득력이 없다. 신생아에게 필요한 용품의 준비는 성별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태아 성감별이 실제로 선택적 출산을 하는 것과 반드시 연결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신혼부부라면 보통 아이를 몇이나 갖고 싶으며, 이를테면 아들 하나 딸 하나 등 자식의 성비에 대한 구체적 희망사항까지 생각해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미뤄 볼 때 성감별과 낙태를 통해 적극적으로 선택적 출산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
 시대변화와 함께 우리사회에서도 딸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으며, 남아선호도 예전에 비해서는 덜하다고 하나 여전히 잔존해 있으며, 하루아침에 근절되지 않는 전통의식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여아를 원하는 경우에는 남아도 희생될 것이다.
 법적으로 낙태가 금지되는 시기를 기준으로 성감별을 허용하는 방안을 택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그것은 서구처럼 국가와 국민이 법을 지키는 환경에서나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낙태금지법이 있을지라도 유명무실한 법으로 불법낙태가 성행하고 있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생명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부모가 원치 않는 성별이라서 태아가 낙태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면 그런 가능성을 제공하는 근본원인인 성감별 고지를 금지해야 할 것이다.

구인회 교수(가톨릭대 생명대학원)

[평화신문] 2008. 10. 12 9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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