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 환자의 알권리와 알지 않아도 될 권리

관리자 | 2008.12.15 23:35 | 조회 1445

특별진단 - 구인회 교수(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환자의 알권리와 알지 않아도 될 권리 "

예전과 달리 요즘 젊은 의료계 종사자들은 생명윤리강좌를 접할 기회가 있어 환자들의 알권리를 존중하고 지켜주려 노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우리는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약 이름이 무엇이며 어떤 효능과 부작용이 있는지, 왜 이 약을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복용하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여러 가지 알약이 한 봉지 안에 들어 있고 의사도 약사도 따로 각각의 약에 대해 정확히 설명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유학 시절을 보낸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약을 낱개로 파는 일이 없다. 늘 포장되어 있는 곽 채로 받기에 의사와 약사에게 설명을 들은 후에도 약포장 안에 들어 있는 설명서를 읽어보면 무슨 병에 먹는 약인지, 효능과 부작용, 유의할 점 등을 상세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약들을 함께 처방하는 일이 없이 거의 한 가지 약만 처방한다. 여러 약을 동시에 복용했을 때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항생제 같은 약은 보통 작은 포장으로 되어 있으며, 쉽게 처방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감기는 물론 독감이 걸렸을 때도 주사를 놓는 일이 거의 없다. 감기쯤이면 약을 처방하지 않고 그냥 휴식을 취하라고 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감기에도 알 수 없는 많은 약을 섞어 처방해줄 뿐만 아니라 주사까지 놓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약의 오남용 문제가 무척 심각해 보인다.
 한번은 지인 중 한사람이 모 대학병원 안과에서 처방 받은 약이 보험처리도 안 되는 20여만 원이나 되는 값비싼 약이었다. 그 약의 처방 이유에 대해 의사는 전혀 설명을 해주지 않았으며 보험처리가 안 된다는 말도 없었는데, 너무 비싸 약사에게 요청해서 얻은 설명서를 보니 그 약은 장기이식 후에 먹는 면역억제제였다. 너무나 심각한 여러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읽고 도대체 그 약을 먹어도 되는지, 이식환자가 아닌데 왜 먹어야 하는지 난감해했다.
 대학병원에서 특진을 신청해서 어렵사리 예약시간을 잡아야 하는 의사여서 임의로 찾아가 문의하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그러한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약을 처방할 때는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것이 의사의 도리가 아닌가. 환자는 자신의 질환과 복용하는 약품의 성질에 대해 정확히 알 권리가 있음을 의사는 인지했어야 한다.
 한편 환자의 알권리만큼 존중돼야 할 것이 원하지 않는 경우 알지 않아도 될 권리이다. 의사는 환자의 병세에 대해 설명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특히 불치의 병에 걸린 환자에게 사실을 알릴 때 그 시기를 잘 선택하고 환자의 성격과 주변 환경을 고려해 되도록 환자에게 충격을 적게 주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불치병 말기 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병동의 한 환자는 자신이 나은 다음 오랫 동안 계획했던 어떤 일을 할 것이라는 등 여러 가지 계획과 희망을 피력하고 죽음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레지던트가 그 환자에게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 준 후, 그 환자는 갑자기 기력을 잃고 식물 상태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진실을 알리는 것은 중요하고 의사의 의무인 것이 사실이나 이러한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는 환자를 식별할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이 있어야 할 것이며, 사실을 알려줄 적절한 시기를 선택하는 각별한 조심성이 의사에게 요청된다.
 또 하나 알권리와 무관하지 않은 문제로서 환자에 관한 의료정보의 취급 문제를 들 수 있다. 의료정보는 일반적으로 공개를 목적으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고, 환자의 정신과 신체에 관련된 극히 개인적인 사항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개인 정보와는 다른 특별한 보안 관리를 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요즈음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친자확인이나 심지어 범죄자 추적을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개인 유전정보의 유출 위험은 단지 한 개인의 인권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라, 그 직계 존비속 등 가족의 사생활 보호 문제와도 관련된다.
 또한 우리나라의 건강검진 목록에 빠지지 않고 포함되어 있는 것이 HIV와 간염에 대한 검사다. 간염과 HIV, 특히 HIV 감염 사실이 건강 검진에서 밝혀지는 경우, 그 환자가 차별이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환자와 무관한 제3자에 대해 감염사실의 비밀이 지켜지도록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제 우리도 환자의 알권리뿐 아니라, 개인 의료정보의 보호를 통한 사생활 보호 문제에도 신경을 써야할 때가 됐다.

[평화신문] 2008. 08. 03발행 [9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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