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갑시다] 생명문화운동의 다각화

관리자 | 2008.12.15 23:34 | 조회 1550

"생명 문화-생명문화운동의 다각화 "

생명윤리의 많은 문제들은 개인적 차원의 윤리적 고민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문제를 담고 있고, 때론 한 사회의 정책적 결정을 요구한다. 낙태, 안락사, 보조생식술, 인간배아연구 등의 문제는 단순히 '나라면 어떻게 할까?'를 넘어서서 '우리 사회는 이 문제들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할 것을 요구한다.
 생명윤리의 많은 문제들은 개인과 사회뿐만 아니라 개별 학문들에도 아주 근본적이고 심각한 질문을 제기해왔다. 이런 질문들은 근대 철학이 그동안 도외시해왔던 인간의 삶과 가치에 대한 거시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문들이다. 그래서 '도대체 생명이 무엇이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이고, 삶과 죽음의 문제에 있어 인간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답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 사회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하나의 확고한 대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다원주의 사회는 다양한 이견들이 난립하고 이런 이견들은 많은 경우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 입장으로 존중받게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결국 우리 사회는 인간 삶과 생명 문제에 대한 상이한 가치관들의 대립 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당위는 바로 이와 같은 혼란을 타개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운동이 생각만큼 단순하거나 쉽지 않다는 점이다.
 생명의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생명 운동은 '생명의 문화'란 나무가 뿌리를 내려 꽃을 피워야 하는 토양의 성질을 명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토양의 성질이 복잡한 만큼 생명 운동도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 우선, 생명 운동은 교회 안에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활동은 개인적 차원의 변화를 유도하고 이를 사회로 확산시키는 데 필요한 운동일 것이다.
 그러나 생명 운동은 신자들의 변화만으로 이 척박한 토양에 생명의 문화를 꽃피울 수 없다. 꽃을 피워야 하는 토양은 이질적 세계관들이 기승을 부리며 난립하고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신념과 언어로만 이 토양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낙관적 태도이며, 다원주의 사회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다. 이런 태도는 꽃을 피워야 할 나무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기에 생명 운동은 세속적 차원의 논쟁에 참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세속적 언어로 엄정한 논리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학문적 논쟁이란 게임에 참여해야 한다. 이견들을 분석하고, 그것들을 논박하고 넘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논박해야 한다. 이것은 신념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납득하고 승복할 수 있는 근거에 입각해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일이다. 따라서 생명 운동은 이와 같은 일을 수행할 사람들을 육성하는 일과 함께 수행돼야 한다.
 그러나 생명 운동은 학문적 범주에만 국한될 수 없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생명윤리의 문제들은 단순한 윤리학적 논쟁에 그치지 않는다. 윤리적 논란에 대한 사회적 의사결정은 서로 다른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 사이의 정치적 문제로 변화될 때가 많다. 정치적 문제의 해결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느냐에 있다.
 물론 진리는 다수결의 문제가 아니고, 말씨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문제로 변질된 윤리적 논쟁은 현실적으로는 다수결의 문제로, 그런 점에서 정책결정을 위한 설득의 문제로 변화된다.
 따라서 교회 밖의 사람들로부터의 지지와 호응은 생명 문화의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할 또 하나의 도전 과제이다.
 생명의 문제는 합리적 논의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생명의 신비는 그야말로 초합리적 영역의 문제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성적 접근방법뿐만 아니라 초이성적 접근방법 또한 필요하다. 생명 문화의 정착은 '생명에 대한 외경심'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생명 현상에 대한 우리의 지배력 확장은 주어진 것으로서의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상실하게 했다. 생명 운동은 생명에 대한 지배력의 증대와 확대가 우리에게서 무엇을 앗아가고 있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희망하는 생명 문화의 정착은 큰 소리로 외친다고 이뤄질 일만은 아니다. 이 일은 교회의 안보다는 밖에서 학문적 논쟁과 실천적 운동을 병행할 때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최경석 교수 - 이화여대 법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평화신문 2008년 07월 13일 9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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