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갑시다] 생명과학 시대와 생명학의 과제

관리자 | 2008.12.15 23:34 | 조회 1397

▲신승환 교수 (가톨릭대 철학,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생명문화를 만들어갑시다] 생명과학 시대와 생명학의 과제"
죽임의 문화가 생명 사물화 불러 복음 핵심인 생명문화 정립 절실

오늘날 생명과학을 둘러싼 상황은 매우 심각한 상태다. 근래에 들려오는 몇 가지 소식이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먼저 지난 4월 2일 영국 언론은 소 난자와 인간 유전자를 결합한 사이브리드(세포질 교합배아) 복제에 대해 보도했다. 뉴캐슬대 연구팀은 인간과 동물의 성질을 모두 갖고 있는 배아 배양에 성공했으며, 3일 동안 생존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5월 20일 영국 의회는 '인간수정 및 배아발생 법률'을 개정했다고 BBC 방송이 보도했다.
 이로써 동물 난자에 인간 DNA를 교잡한 배아 복제와 불치병을 앓는 손위 형제를 치료하기 위해 조직이 일치하는 배아를 선별해 아이를 출생시킬 수 있는 길이 가능해졌다. 일명 '구세주 형제' 금지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이 개정됨으로써 치료용 맞춤아기 출산이 합법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지난 5월 미국 하원이 통과시킨'유전정보 차별 금지법(GINA)', 애완용 개 복제를 이용한 상업화 계획의 성공 보도('뉴욕타임즈' 5월 21일자) 등은 이미 생명과학과 생명산업의 문제가 얼마나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알려준다.
 생명을 둘러싼 급격한 환경변화로 우리 시대는 생명을 사물화(reification)하는 문화적 환경이 되고 있다. 전통적 생명의료 윤리나 당위적 생명존중 선언만으로 대처하기엔 너무 미흡한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이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말씀하셨듯이 이러한 문화 상황을 만든 것은 죽임의 문화로 통칭될 수 있는 현대 문화의 맹목성에 기인한다.
 생명과학과 자본주의가 과잉으로 치닫는 후기 근대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지켜가야 할 생명존중의 길을 근거 짓고 이를 해명하는 작업을 생명학으로 규정해본다면, 오늘날 생명학은 적어도 다음 세 가지 과제를 지닌다.
 첫째, 생명이란 존재 자체가 문제되는 시대이기에 죽임의 문화에 대한 생명의 문화, 살림의 문화를 정립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생명과 삶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모든 반생명적 문화, 폭력과 야만, 존재의 영역을 사물화하는 문화 일반에 대한 반성과 이를 극복하는 문화를 위한 작업을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도교 복음의 핵심인 생명의 문화를 이뤄가는 길일 것이다.
 둘째, 생명윤리 문제는 이제 이러한 생명의 문화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지 올바르게 해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 생의(生醫) 윤리 영역, 즉 안락사, 낙태, 장기이식, 연명 치료, 배아줄기세포 등의 문제는 생명의 문화에 의해 올바로 정립될 수 있다. 생명의학 분야의 윤리적 문제는 이런 측면에서는 문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생명학은 이런 영역을 넘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생명과학 시대의 문화ㆍ윤리적 변화에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학문으로 넓혀나가야 한다.
 셋째, 근대 이후 문화적 상황과 그리스도교인으로서의 우리의 현재를 성찰하고 나아갈 길을 해명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왜곡된 근대의 정신, 과잉으로 치닫는 후기 근대의 문화를 반성하고 이를 극복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초를 놓는 작업이다. 여기에는 후기 근대의 문화를 잉태한 철학적 원리인 근대성에 대한 초월적 극복과 그 기반에 놓인 일면적 이성(로고스) 이해를 극복하고 새로운 이성의 패러다임을 정립하는 과제를 포함한다. 그것을 우리는 생명의 원리에 대한 성찰에서 이해하는 생명성으로 초석을 놓고자 한다.
 이러한 생명성은 현대문화에 필요한 영성의 터전을 위해서도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오늘날 영성에 대한 무분별한 남용, 자의적이고 피상적으로 영성을 이해함으로써 영성이란 이름이 오히려 인간의 생명성을 거스리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영성은 인간의 근본적 특성인 의미와 초월성에 기반할 때만이 올바르게 정립될 수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로고스(logos)와 하느님의 모상에 따른 인간의 이성을 다만 인식론적이며, 물화(物化)하는 형식으로 제한시킨 근대성을 넘어, 본래의 이성을 다시 근거짓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를 철학적으로 근대에 대한 초월적 극복의 해석학적 작업으로 이해한다면, 생명성은 이러한 시대적 과제에 대한 해석학적 토대로 작동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자리에서 생명을 위한 소명을 이뤄가야 한다. 생명의 원리를 성찰할 때 우리는 생명과 살림의 문화는 물론, 우리의 생명과 삶을 위한 의미의 터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신문 2008. 07. 06 [9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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