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

관리자 | 2009.03.24 09:39 | 조회 1626
 

"[생명의 문화]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 "


생명에 숨 불어넣는 '죽음'


▲ 신승환 교수(가톨릭대 철학과,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생명의 문화'란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먼저 소유격을 나타내는 말 '생명'을 주어로 읽으면, 하나의 문화가 생명에 의해 이뤄진다는 뜻이다. 이 말을 목적어로 읽으면 문화가 생명을 향한다는 의미가 된다.
 
 지금 교회가 온 마음을 다해 지향하는 '생명의 문화'는 이 두 가지 의미 모두를 포함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생명이란 무엇이기에 우리 문화가 생명에 의한 것이어야 하며 생명을 지향하는 것이 돼야 하는가. 생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대강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는 생명을 살리거나 생명에 의한 문화를 만들어 가기란 불가능하다. 생명을 위한 결단과 투신 없이 우리 삶과 문화는 생명의 것일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현재는 과연 그러한가.
 
 얼마 전 일어났던 '용산 철거민 참사'에서 보듯이 귀하디 귀한 생명이 여섯이나 죽어갔지만 그러한 억울한 죽음과 반생명의 문화에 대한 진지한 반성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느냐, 용역이 동원됐는지 개발이익을 노리는 철거민 연합이 어쩌니 하는 따위의 말만 들린다. 정권의 향방이 어쩌니, 도시 테러범이니 하는 따위의 한심한 논쟁 어디에 죽어간 생명에 대한 존중이나 생명을 위한 문화의 얼굴을 볼 수 있는가.
 
 살아있는 생명에게 가장 큰 적은 죽음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말해야 할 것은 모든 생명체는 죽어간다는 사실이다. 죽지 않는 것은 생명이 아니다. 생명의 이 역설은 무엇인가. 생명이 생명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역설을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 생명과 죽음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생명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통해 참다운 생명으로 되살아날 수 있을 때 참된 생명일 수 있다. 죽음을 단순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당겨 우리 존재에 현재화시킬 수 있을 때 죽음의 어둠은 극복될 수 있다. 그럴 때 죽음은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조건이 된다. 그 때 죽음보다 더 큰 생명의 의미와 신비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와 함께 잘못된 죽음, 사회의 모순에 의한 폭력적 죽음, 생명을 죽이는 폭력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저항해야 한다. 지금 이 시대, 생명을 죽이는 수많은 폭력들이 우리 가운데 흘러넘치고 있다. 자본에 대한 맹종과 경제라는 허상에 매몰된 삶이 그것이고, 생명의 참된 의미와 원리를 짓밟는 맹목적인 문화와 일면적인 과학기술이, 성공과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심과 탐욕이 그러하다. 나아가 생명의 원리를 해석하고 생명의 의미를 살려가려는 모든 노력을 비웃는 우리 안의 폭력적 마음과 욕망이 생명의 문화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과학기술은 물론이고 경제적 안정, 심지어 한 사회의 문화가 그 자체로 반생명적이거나 죽음의 문화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만들어가고 그것을 추구하는 우리 마음의 어둠과 폭력, 죽음의 망령이며, 그것이 우리 문화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래서 생명의 문화는 이러한 우리 안의 욕망과 허상은 물론, 그것이 드러나는 폭력의 문화를 거부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생각하고 성찰하며, 진지하게 기도하고 생명의 주인에게 끊임없이 간구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생명의 문화는 그 문화가 생명의 특성과 원리에 의해 이뤄질 때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문화를 위한 가장 근본이 되는 조건이다. 그래서 생명의 문화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생명의 원리를 깊이 성찰하며, 우리 문화가 그 원리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행동하고 실천할 때만이 가능하다. 이러한 성찰과 행동이 결여된 문화는 생명의 문화일 수 없다. 이러한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다만 당위적인 선언만 반복하는 것이야 말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위선일 뿐이다.
 
 생명을 위한 문화는 생명을 해치는 온갖 종류의 폭력과 야만, 우리 안의 욕망과 허상을 깨는 작업에서 시작된다. 그 작업은 생명의 원천과 의미를 성찰하고 그 원리에 따라 문화를 이루어가려는 우리들의 존재론적 결단에 의해 토대가 다져질 것이다. 그래서 생명의 문화는 생명의 신비와 원천에 대한 성찰과 초월적 결단, 존재론적 투신을 요구한다.
 
 생명과 생명의 삶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생명의 신비를 성찰하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나아가 그 성찰한 바와 그 소리에 순종하면서 그에 따라 결단하라. 그럴 때 생명은 생명으로 자리할 수 있으며, 생명 문화가 자리잡게될 것이다.
 
[평화신문] 2009. 03. 08발행  10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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