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 아름다운 선종

관리자 | 2009.03.20 10:02 | 조회 1385
 
 

"[생명의 문화] 아름다운 선종 "


김수환 추기경처럼 떠나려면


▲ 우재명 신부(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죽음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보편적 현상이자 엄연한 현실이다.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시간 안에서 제한된 삶만을 살고 갈 뿐이다. 어쩌면 인간은 탄생의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자신의 죽음을 초연하게 수용할 수 있는가?
 
 죽음은 인간에게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 죽음을 스스로 원하는 인간은 없다. 여기에 인간적 갈등이 있다. 인간은 대부분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며, 죽음은 타인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처럼 여긴다.
 
 죽음에 대한 태도에 대해 연구한 엘리사벳 퀴블러로스는 자신의 죽음을 처음부터 수용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정→분노→타협→우울→순응의 다섯 단계를 거쳐 자신의 죽음을 수용하게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이가 동일한 과정을 밟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이 다섯 단계 중 어떤 단계를 생략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죽음을 수용하지 못하고 죽는 이도 있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선종 이후 우리 사회 안에서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하면 삶의 마무리를 잘 수행하여 품위있고 자연스런 죽음을 맞이 할 것인가 하는 것이 화두이다.
 
 필자는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죽음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의 올바른 이해는 인간을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시키고 인간으로 하여금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초연히 자신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한다. 엘리사벳 퀴블러로스도 사람들 사이에서 죽음을 엄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서로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죽음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죽음은 실로 위협적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해지기 일쑤여서 죽음의 순간에는 그들이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버려졌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사람은 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는 역설이 성립한다. "우리가 그 분과 함께 죽었으니 우리가 그 분과 함께 살 것"(2디모 2,11)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서 새 생명을 얻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새 생명에 대한 참여는 단순히 미래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새 생명은 죽음 후에 비로소 만나게 되는 어떤 것이라기 보다는 현재 순간에도 만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현세 삶을 충실하게 살아감으로 생명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주어진 현세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처럼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죽음이란 무엇인가? '아름답다'는 말은 머리의 언어가 아니라 마음의 언어이다.
 
 다시 말하면, 논리적 사고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라기보다는 마음으로 느끼고 받아들임으로써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이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삶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사람들의 마음 한가운데서 "그 분의 선종은 정말 아름다웠다"는 말이 저절로 올라왔다. 김수환 추기경이 아름다운 선종을 맞이했다는 것은 그 분이 주어진 삶 안에 사랑의 실천을 통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분은 70, 80년대 정치적으로 어려운 혼란의 시기에 사회 안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약한 이들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하셨고, 교회 안에서는 유머 풍부한 영적 지도자셨으며, 어린이들에게는 친근한 할아버지 추기경이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하느님 나라로 그 분을 부르셨을 때 편안하게 하느님의 뜻을 따르셨을 뿐만 아니라, 각막기증을 통해 남아 있는 이웃에게 빛을 주고 가셨다. 가진 것이 거의 없으셨으니 떠나는 것도 쉬우셨을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 안에서 김수환 추기경님의 아름다운 선종을 기억하고 그 분을 위해 기도하는 한, 추기경님은 떠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영원히 살아 계실 것이다. 아름다운 선종은 남아 있는 이의 마음에 남는다.

 
[평화신문] 2009. 03. 15   10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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