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 교황청 생명학술원 국제회의

관리자 | 2009.04.02 17:06 | 조회 1493
 

"[생명의 문화] 교황청 생명학술원 국제회의 "


과학발전 이면의 심각한 윤리문제


▲ 이동익 신부(가톨릭대 생명대학원장)

 2월 21일부터 이틀간 로마에서 열린 교황청 생명학술원 국제회의에 다녀왔다. 1994년 생명학술원이 설립된 이후 매년 개최된 국제회의는 올해 열다섯 번째로, '유전학의 도전과 우생학의 위험들'에 대해 다뤘다.
 
 이번 회의에는 약 45개국에서 온 120여명의 생명학술원 회원 외에도 현재 로마에 거주하고 있는 300여 명의 학자들이 함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필자와 함께 생명학술원 회원으로 있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종양내과 홍영선 교수가 참석했다. 회의장에는 로마에서 생명윤리를 공부하고 있는 몇몇 한국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유전학의 도전과 우생학의 위험
 

 이틀간 회의에서는 우생학이라는 용어와 의미가 이미 플라톤 시대부터 인류의 역사 전반에 큰 관심거리로 등장해 왔다는 '우생학의 역사와 개념'에 관한 발표를 비롯해 모두 12개 주제가 숨가쁘게 발표됐고 토론시간을 가졌다. '인간게놈 프로젝트'라는 현대유전학의 거대한 연구 흐름에서 보듯이 유전학의 과학적 진보가 가져다줄 장밋빛 미래에 대한 과학적 비전이 있는가 하면 그 이면에 감춰진 숱한 윤리적, 법적 문제에까지 다양한 내용에 대한 진지한 숙고가 이뤄진 자리였다.
 
 유전학 발전으로 이제 인간 생명의 신비라든가 신체의 모든 신비를 환하게 밝힐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났고, 그 가능성은 곧바로 인간의 질병퇴치 연구에 큰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것이 과학적 탐구의 한 결과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질병 유발 원인을 알아내게 하고, 나아가 인류가 지금까지 극복하지 못했던 불치병들이 속속 정복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난 것이다. 치매라든가 당뇨병, 고혈압, 파킨스씨 병과도 같은 불치병의 극복도 이제는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고질병을 유발시켰던 유전자가 어떤 것이고, 각 개인별로 유전자의 어떤 차이로 말미암아 건강의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내고 그것을 적절하게 조작함으로써 질병 완치와 건강 회복이 가능하게 된다니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최근 미국의 한 통계에 따르면 유전자의 이상 배열이 출생 후 4살까지의 유아가 사망하는 원인들 중에 두 번째 원인이 되고, 14살에서 17살 사이 청소년 사망 원인들 중에서는 세 번째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급성 질환으로 입원한 18살 미만의 환자들과 정신지체로 의료시설에 수용된 환자들 중 25~30%는 그들이 지닌 유전적 조건이 그 질환의 원인으로 집계됐다.
 
 이렇게 인간의 유전자 문제가 인간 병고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 것도 실상 과거에 비해 매우 큰 발전을 이룬 유전자 의학의 공로라고도 말할 수 있다.
 
 유전학의 관심은 자연스레 그러한 유전적 질병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에 맞춰지고 이에 따라 유전자 진단이라는 진단 방법이 일반화되기 시작한다. 문제는 바로 이 유전자 진단이다.
 
유전자 진단 결과는 부정적
 

 최근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 분석되면서 유전성 질환에 대한 진단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특수 질환의 발견 가능성까지도 예견할 수 있게 됐다고 하니 매우 놀라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위한 유전자 진단이 가져온 결과는 오히려 부정적이다. 과학적 발전 이면에 엄청난 윤리적 문제점들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 진단 방법이 태아 진단에 적용됨으로써 나타난 결과는 놀랍게도 낙태의 현저한 증가였고, 결국 이 방법은 태아의 질병치료에 사용되는 방법이라기보다는 낙태를 유발시키는 방법으로 전락했다.
 
 유전자 진단은 또한 유전적 질병을 알아보려는 방법으로 사용되면서 특별히 치료 방법이 없는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에게 큰 불안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몇 년 후에 나타날 유전적 질환에 대해 정신적 불안감을 갖게 되면서 생활이 의기소침해지고, 우울증에 빠지거나 정신 강박증과도 같은 장애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인간 없는 의학, 결국은 재앙

 나아가 이러한 진단 방법이 어쩌면 인간 차별과도 같은 인권 문제로 발전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유전자 진단이 상업화되면서 유전적 질병은 고용 기회를 박탈하게 될 것이고, 정당한 보험 가입의 기회까지도 제한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리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회의 마지막 섹션은 베네딕도 16세 교황과의 만남이었다. 교황은 참석자들에게 "조작된 인간 삶으로 인해 다시 인간에 대한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우생학에 바탕을 둔 유전학이, 인간 삶의 윤리적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 커다란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냈다. 의학과 기술이 참된 의미에서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면 그것이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평화신문] 2009. 03. 29   10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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