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운동 실무자 연수] 응급피임약의 사용 실태와 천주교 생명운동의 과제

관리자 | 2009.12.11 14:17 | 조회 1970

[박영대]응급피임약의 사용 실태와 천주교 생명운동의 과제

 

제목 : 응급피임약의 사용 실태와 천주교 생명운동의 과제
발표 : 박영대(우리신학연구소 소장)

 

(2009년 11월 28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주최 '생명운동 실무자 연수'에서 발표)   출처 : 우리신학연구소


1. 들어가며


나에게 요청된 연구 과제는 (1)현재 응급피임약이 얼마나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2)응급피임약 유통에 적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3)응급피임약 사용 확산이 낙태 감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등이었다. 과제(1)은 관련 조사와 제조업체 판매 실적 등에 관한 언론 보도를 통해 어느 정도 확인 가능하였다. 과제(2)는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불법 처방과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과연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과제(3)은 낙태 통계 자체가 정확하지 않고 정기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존 통계와 자료만으로 그 상관성을 파악하기 어렵고 증명하기 어려웠다.


응급피임약(emergency contraception, EC)은 사후피임약(postcoital contraception)으로도 불린다. 전문가는 사후피임약이라는 표현은 응급피임약에 대해 잘못 인식시킴으로써 오남용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응급피임약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 응급 피임약의 한국 도입 역사


인공피임 반대운동은 낙태반대운동과 더불어 생명운동의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최근 한국이 저출산국가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산아제한이나 가족계획 차원에서 정부가 나서서 반영구적인 인공피임을 장려하는 일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인공피임 반대운동은 응급피임약 도입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피임과 낙태의 경계가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1998년 10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응급피임약을 승인한 직후인 그해 11월 보건복지부가 응급피임 시범사업으로 독일로부터 ‘테트라가이논’을 수입해 청소년들에게 보급하기로 발표하자, 국제생명운동 한국지부와 대구대교구 사목국 사회사목담당부가 이에 항의하는 긴급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모닝 필’ 또는 ‘모닝 애프터 필’이라고도 불리는 테트라가이논은 72시간 안에 복용할 경우 임신을 방지하는 효과를 내는 것으로, 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생명의 시점으로 보는 천주교회는 이 피임약이 수정란의 자궁 내 착상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피임약이라기보다는 낙태약이라는 입장을 취하였다. 더욱이 1998년 6월 인구문제를 위한 유엔 특별총회에서 응급피임 개념이 도입되면서 교회의 위기의식은 더욱 커졌다.


식품의약안전청이 천주교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반대에도 2001년 5월 국내 제약회사가 국내 판매를 신청했던 응급피임약 노레보를 의사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 의약품으로 분류한 뒤 같은 해 11월 중순부터 시판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교회와 국가 간의 갈등이 커졌다. 주교회의 산하 정의평화위원회, 가정사목위원회, 신앙교리위원회, 생명윤리연구회 등은 2001년 10월말 “사후피임약 시판허가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이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여, “이 약품을 사후피임약 혹은 응급피임약으로 칭하는 것은 잘못이며, ‘조기 낙태약’ 혹은 ‘화학적 낙태약’이라고 부르는 것이 올바르다”라고 주장하였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2006년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였다(17세 이하는 처방전 필요). 유럽국가에서는 프랑스가 2000년, 영국이 2002년, 독일이 2004년부터 연령 구분 없이 응급 피임약의 자유로운 판매가 허용되었다. 한국에서도 유럽이나 미국처럼 응급피임약이 처방전이 필요 없고 제품에 대한 홍보도 가능한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됨으로써 응급피임약이 빠르게 확산될 경우, 이를 둘러싼 교회와 국가, 교회와 제약회사 간의 갈등이 다시 커질 것이다.



3. 과제(1) : 응급피임약의 사용 실태


현재 국내에 시판되는 응급피임약은 노레보(현대약품), 포스티노-1(쉐링), 레보니아(명문제약), 레보노민(신풍제약), 퍼스트렐(삼일제약), 엠에스필(태극약품), 쎄스콘 원앤원(크라운제약) 등이다. 현대약품의 노레보는 처음 국내에 시판된 2002년 판매량이 10만 팩에 불과했던 것이 2006년에는 35만 팩이 팔렸다. 국내 응급피임약 시장 전체를 보면, 2002년 13억 원에서 2006년 33억 원, 2007년 36억 원, 2008년 40억 원으로 최근에는 해마다 약 10% 매출이 늘고 있다. 2008년 현재, 노레보가 약 30억 원 매출로 응급피임약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만일 더 정확한 판매 실적이 필요하다면, 해당 제약사에 자료를 요청해서 파악할 수 있지만, 현재 수준의 연구에서는 그처럼 정확한 정보가 필요 없다고 판단해서 자료를 수집하지 않았다.


응급피임약 시장이 증가하는 반면, 전체 피임약 시장은 감소하고 있다. 2005년 피임약 시장규모는 총 187억여 원으로, 220억여 원이었던 2002년에 비해 16.2% 감소했다. 2004년까지 200억 원을 간신히 넘었던 피임약 시장은 2005년 들어 100억 원대로 떨어지며 감소추세를 보였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가임기 여성들이 계획적으로 피임약 복용을 통해 피임을 하기보다는 성관계 후 임시방편격인 응급피임약을 통해 피임을 시도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음을 반영한다. 200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유럽의 40%가 먹는 피임약 등을 통해 피임을 일상적으로 하는 데 반해, 한국은 불과 1%만이 피임약을 통한 피임을 하고 있어 응급피임약을 활용해 피임효과를 얻으려는 경향이 높다.


2008년 12월 15일, 서울시내 30개 산부인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응급피임약 처방실태를 조사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바캉스 철인 7월(25%)과 8월(23.5%)에 이어 연말시즌인 12월(22.2%)에 응급피임약을 가장 많이 처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주일 중 응급피임약 처방률이 가장 높은 요일은 월요일로 나타났다. 월요일은 93.9%로 다른 요일에 비하여 월등히 높았다. 처방 시간대는 오전(60%)에 가장 많았다. 연령대별로는 20대가 66.7% 로 가장 많았으며, 미혼여성(80%)이 기혼여성(6.7%)에 비해 훨씬 많았다. 응급피임약 처방을 받은 여성들 중 기존 응급피임약을 사용해본 여성들이 10명 중 몇 명이나 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10명중 3명(23.3%)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고 5명(20%)이 그 뒤를 이었다. 곧 40% 이상이 응급피임약을 두 번 이상 사용하였다. 응급피임약을 처방 받은 여성 중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들은 10명 중 4명(30%)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처럼 응급피임약을 다시 처방 받은 여성들의 비중이 다소 높음에도 불구하고 응급피임약에 대한 지식수준은 매우 낮았다. 반복된 응급피임약의 복용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전혀 모르거나(36.7%) 잘 모르는(30%) 여성이 전체의 반수를 넘었다. 53.3%가 응급피임약을 반복해 사용할 경우 피임효과가 감소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어, 응급피임약에 대한 정확한 지식 제공과 사전 피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향상이 시급하다고 산부인과 의사들은 지적하였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응급피임약 처방 시 피임 상담(76.7%)과 더불어 앞으로 효과적인 피임을 위해 먹는 피임약을 함께 처방(66.7%)하는 등의 대처를 하고 있었다. 또 대다수(76.7%)의 전문의들이 응급피임약을 한번에 1팩씩만 처방하였다.



4. 과제(2) : 응급피임약의 불법 처방과 판매 사례


현행법으로 응급피임약은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 판매되는 전문 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응급피임약이 일부 병원의 가짜 처방전 장사에 약용되거나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비싼 값이 응급피임약을 판매하는 일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산진구 부전동에 있는 A 산부인과.

입구 접수대에 있는 간호사에게 '응급피임약'을 사러왔다고 말하자 이름도 묻지 않고 처방전을 바로 쓰기 시작한다. 의사 선생님과 약 복용에 대한 상담을 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부작용 사례를 본 적이 없다며 다짜고짜 처방전을 내밀고, 복용법까지 상세히 알려준다. 의사가 아닌 자가 처방전을 쓰는 것은 의료법상 명백한 불법이지만 만 오천 원이면 전문의약품을 간호사가 써준 처방전으로 살 수 있는 것.


중구 약국거리 귀퉁이에 있는 B 약국.


처방전 없이 응급피임약을 사고 싶다고 살짝 말을 건네자, 약사가 본래 약값이 2배 가격인 2만 원을 받고 약을 주며, 다음에 처방전을 가져오라고 말한다. 약국 관계자는 “젊은 여성들이 산부인과에서 처방전 받기를 꺼려하고, 약국으로 바로 응급피임약을 찾는 여성들이 증가해서 어쩔 수 없이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할 당국은 일부 병원에서 처방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파악하고 있지만, 수천 개에 이르는 병원을 일일이 감독하기 어려워 고발이 들어올 경우에만 처벌하고 있어서 응급피임약 오․남용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설명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실정을 고려한다면, 보도된 사례가 부산지역 사례이지만 이 같은 일이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나고 있을 개연성이 많다.



5. 과제(3) : 응급피임약 사용 확산과 낙태 감소 사이의 상관성


낙태 관련 통계는 정확하지 않다. 2005년 보건복지부가 고려대와 공동 조사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가 정부의 낙태 관련 전수 조사로는 처음이며 유일하다(아래 그림 참조). 그러니 정확한 통계에 따라 낙태가 감소하고 있는지 증가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 응급피임약이 낙태 증감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이 조사에 따르면 그림에서 보듯이 20대 미혼 여성이 상대적으로 낙태를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고, 앞서 제시한 2008년 응급피임약 처방 실태 조사에서 미혼 여성이 응급피임약을 가장 많이 처방 받은 것으로 나타난 것을 연관시켜 생각해보면, 응급피임약 사용 증가로 말미암아 20대 미혼 여성의 낙태가 줄어들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응급피임약과 낙태 사이의 상관성을 정확하게 조사하기 위해서는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2005년 조사 때처럼 전수조사로써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할 것이다. 오는 2010년 조사를 실시해서 5년 단위로 실시되는 인구센서스와 조사 시기를 맞추는 것도 좋겠다. 아울러 응급피임약 등 피임약 처방 실태도 조사한다면, 피임과 낙태 사이, 응급피임약과 낙태 사이의 상관성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 같은 전국 단위 전수조사가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어렵다면, 2008년 30개 산부인과 병원을 대상으로 응급피임약 처방 실태를 조사했던 것처럼 일부 산부인과 병원을 대상으로 표본 조사를 실시함으로써 상관성을 추정해볼 수 있겠다.



6. 나가며


회원 680명의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은 지난 10월 19일 성명서를 통해 그동안의 불법적 낙태를 반성하면서 2009년 11월 1일부터 불법적인 낙태 시술을 전면 중단할 것을 선언하며, 낙태 근절을 위한 사회 전반의 노력과 동참을 호소하였다. 한편, 낙태가 근절되지 않으면 내년 1월부터 낙태시술 병원과 의사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이로 인해 정부뿐만 아니라 모임에 참가하지 않는 3천여 명의 산부인과 의사도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위원장 장봉훈 주교) 생명운동본부는 10월 29일에 이를 환영하고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 성명서의 요구 사항 가운데 하나는 “정부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태아와 임신부, 신생아와 산모의 생명을 충실히 돌볼 수 있도록 산부인과 의료수가를 현실에 맞게 개선하는 등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였다. 필요한 일이고 더 일찍 관심을 가지고 개선해야 할 문제였다.


최근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을 다룬 영화 <집행자>가 상영되었다. 교도관도 사형제도의 피해자임을 잘 드러내준 영화이다. 천주교 생명운동이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얻으려면, 모든 생명 의제에 대해 ‘일관성 있는 생명의 윤리’를 적용해야 한다. 한신대 강인철 교수는 그럴 때에만 천주교 생명운동이 ‘축소되고 탈맥락화된 생명운동’에서 벗어나 ‘확장되고 맥락화된 생명운동’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종교권력과 한국천주교회》 “제10장 보수적 사회참여로의 전환: 생명운동” 참조).

[베리따스]  2009-12-08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