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 죽음의 문화의 그 마지막 물결

관리자 | 2009.09.25 10:30 | 조회 1605
 

"[생명의 문화] 죽음의 문화의 그 마지막 물결"


김명수 신부(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1995년 「생명의 복음」 회칙을 통해 인류가 처해있는 죽음의 문화 상황을 보여 주며 우리 모두가 어떻게 그에 맞서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다. 지난 50년간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죽음의 문화에 내어주고 말았다.

 죽음의 문화의 첫 걸음은 이혼의 합법화였다. 생명의 보금자리가 돼야 하는 가정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현재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칠레가 2년 전까지 버티다 이혼을 합법화했다.

 죽음의 문화의 행진은 낙태의 합법화로 이어졌다. 현재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는 칠레와 아일랜드뿐이다. 생명이 가장 사랑 받아야 할 엄마의 뱃속에서 수 없이 죽어간 것이다.

 다음은 생명이 꽃으로 피어나야 하는 부부의 사랑이 인공피임법들을 통해 왜곡되는 물결로 이어졌다. 뱃속의 아기를 죽이는 반면에 불임 부부가 아기를 갖기 위해 인간 생명을 조작하는 풍조도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큰 물결들 앞에 우리나라도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분명 역사는 이 시대를 이런 죄악들 때문에 단죄할 것이다.

 최근에 와서는 또 하나의 거대한 죽음의 물결이 이 세상을 위협하고 있다. 바로 안락사 문제다. 한국에서는 존엄사라 칭하는데, 그 명칭은 적합하지 못하다. 인간 생명이 존엄하듯이 모든 인간의 죽음은 존엄한 것이다.
 몇몇 나라에서 안락사법이 벌써 통과됐고 또 많은 나라들에서 우리나라처럼 인간죽음의 법에 대한 논의가 시끄럽게 진행되고 있다.

 가장 먼저 그 길은 간 나라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에서는 전체 사망자들 중 3%가 병원에서 의사의 도움을 받아 인위적으로 인생을 마무리한다. 법률상으로는 환자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15% 이상의 경우 의사가 환자의 동의없이 환자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면 안락사를 실행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그 나라의 노인들은 겁이 나서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미국의 오레곤주에서도 의사들이 환자들의 자살을 도울 수 있게 허용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끊는 이들 6명 중 1명은 치료가 가능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사람들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인간 죽음에 대한 법이 나오면 물론 최대한 생명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법안에 담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 의지에 따라 죽음을 합법적으로 초래할 수 있는 문을 열면 앞에서 본 것과 같은 남용이 나오기 마련이다.

 지금 이 문제를 활발하게 다루고 있는 나라는 영국, 이탈리아, 우루과이 등이다. 우리나라 문제만은 결코 아니다. 물론 이혼이나 낙태 등도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문제들은 아니다. 우리의 고유한 문화는 항상 생명을 존중했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과 경제적 측면에서 오는 여러 요소들이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죽음에 대해 깊이 고려하게 만들고 있다.

 영국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인간죽음법을 제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골든 브라운 수상은 그런 법이 시행되면 피해자가 생기기 때문에 법으로 다룰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네덜란드와는 달리 대다수의 의사들이 그런 법에 반대하고 있다. 사람이 죽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의사가 할 일이 못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주시해야 할 것은 이혼, 낙태, 인공피임, 인공수정에 이어 안락사라는 거대한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 문화를 점령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십 년 전만 해도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이혼과 낙태는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것이 고정관념이었다. 법이 이들을 허용함에 따라 이제는 많은 이들의 마음에서 그 행위들이 비윤리적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3쌍이 결혼할 때 1쌍이 이혼하는 실정이며, 아기 한 명이 태어날 때 엄마 뱃속에서 두 명이 죽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 누구도 이 상황이 정상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 상황을 고쳐야 하는 일이며, 잘못된 인간죽음법이 제정돼 죽음의 문화가 더욱 확산되는 것을 막는 일이다.
[평화신문]   2009. 08. 23발행      10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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