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 진화론

관리자 | 2009.05.08 09:53 | 조회 1566
 

"[생명의 문화] 진화론 "


인간을 왜 생물학에 가두나


▲ 신 승 환 교수(가톨릭대 철학과,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현대 생명과학의 발전은 1859년 다윈이 발표한 '생명종의 기원'에 관한 학설과 1866년 발표된 수사 신부 멘델의 '유전자 법칙'에 관한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생명체의 발전과 종의 분화에 대한 과학이론과 발견은 그 자체로 타당한 지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생물과학의 이론 자체를 거부하거나 그들의 진리 주장에 대해 거리를 둘 이유는 없다.
 
 1809년 영국에서 태어난 찰스 R. 다윈은 갈라파고스 섬에서 관찰한 핀치새의 다양한 부리가 지니는 의미에 대한 해석으로 1859년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혹은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종족의 보존에 대하여」라는 긴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출간부터 교회와 과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초래했다.
 
 진화론을 둘러싼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진화론과 생명 현상에 과학적 지식을 오해하거나 잘못 이용하는 데서 생겨난다. 사실 다윈의 진화론 만큼 오해되고 악용됐으며 오랫동안 논란에 휩싸였던 과학 이론도 드물 것이다.
 
 한 쪽에서는 진화론을 마치 창조주에 대한 부정이거나 인간을 원숭이와 같은 존재로 환원시켜버린다는 우려와 비난이 자리하고 있다.
 
 다른 한 편에서는 진화론을 교회나 신의 존재에 대한 공격과 거부에 이용하기도 한다. 그 만큼 공격적이지는 않더라도 진화론을 자신이 원하는 사회적 맥락에 이용하거나 정치적 이념에 따라 해석하고 그런 주장을 과학의 옷으로 포장해 과도하게 악용한 사례는 무척 많았다.
 
 예를 들어 우생학의 폐해는 전적으로 진화론에 대한 오해와 정치적으로 악용한 대표적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이 지닌 조잡한 인종적 편견과 차별을 과학의 옷을 빌려 정당화하려는 노력을 어떤 경우라도 거부돼야 한다.
 
 선천적으로 흑인은 어떻고 백인은 어떻다거나, 한국인의 지능지수가 타민족에 비해 뛰어나다는 주장 등은 한줌의 가치도 없는,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잘못된 주장일 뿐이다.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진화론은 결코 같은 지평에서 자리할 수 있는 진리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지적 게으름과 독단적 신념에서 비롯된다.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이런 오해에 대해 여러 번 경고했다. 진화론의 올바른 과학적 주장에 대해 거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와 같은 무게로 인간은 단순히 생물학적 존재로 환원되지 않고, 그런 차원을 넘어서는 생명, 영(靈)적이며 초월적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이 분명히 유지돼야 한다.
 
 문제는 과학 지식에 대한 정확하지 못한 이해와 이를 자신의 일면인 이념이나 이데올로기, 심지어 성숙하지 못한 신앙을 포장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일부 반달보기들이다.
 
 과학이 밝혀낸 지식은 올바르게 이해돼야 한다. 그럴 때만이 과학을 자신의 이념과 정치적 목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악용하는 잘못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진리를 반대하는 분파조직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러한 생명과학의 발전에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DNA 이중나선구조'에 대한 발견은 지식으로 받아들여야하지만, 이후 생명을 DNA와 그 결과물인 단백질 차원으로 한정하여 이해하는 '중심이론'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해야한다.
 
 진화론이 발표된 지 150년, 그동안 생물과학은 엄청나게 발전했으며, 오늘날 진화생물학에서 보듯이 거의 모든 학문 영역에 결코 제외할 수 없는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10년 이래 인간 본성에 대해 엄청난 지식을 주장하는 진화심리학, 진화생물학의 이름으로 모든 학문을 통합하려는 '통섭'이론 등은 학문과 문화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여전히 지나간 좁은 이론에 매여 동어반복적 주장을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 사이도 이들의 지식과 주장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펴져 가고 있는 것이다.
 
 다윈 이후, 마치 다윈의 이론이 없는 듯이 학문하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진화론은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는 모두 역사의 결과물이며 역사의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하고 발전해왔다고 말한다.
 
 이것을 하느님의 역사 안에 역사하심과 연결지어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신학과 철학이 해야할 일이다. 그와 함께 생명과학을 자신의 이념에 따라 악용하거나 인간을 생물학적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오류는 끊임없이 경계해야한다.
 
 어렵고 괴로운 일이지만, 그들과 당당히 대결하면서 생명 존엄성과 신비, 생명의 존재론적 의미를 밝히는 작업이 절실하다.
 
 우리가 가진 신앙과 지식은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앙을 위해서 지성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성숙과 함께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도 더욱 깊어갈 것이다.
 
[평화신문] 2009. 04. 26     10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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