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의 윤리

관리자 | 2010.05.10 13:24 | 조회 1676

[생명의 문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의 윤리 

 

구인회 교수(가톨릭대 생명대학원)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의학은 인체실험이나 동물실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연과학 진보의 방법적 기초는 실험에 있으며, 일정한 조건하에서 체계적 관찰을 하는 실험으로부터 획득된 자료를 통해 과학적 가설이 입증되거나 부정된다.

 

 의학은 그 기본적 성격상 실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항시 새로운 생물학적 기술과 방법이 시도된다. 그러한 새로운 방법이 인체에 해롭지 않은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세포배양에 의한 실험을 하거나 동물실험을 하지만, 그것으로 효과나 부작용을 모두 알아내기에 충분하지 않으므로, 최종적으로는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하게 된다.

 

 실험대상이 인간이며, 감독된 일정한 조건하에서 이뤄지면 인체실험이라 하며, 그 실험의 목표가 직접 참여하는 환자의 치료를 목표로 이뤄지면 치료실험이다. 그러나 그 경계가 불분명하여 인체실험의 다양한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기준으로서는 충분하지 않다. 임상실험의 영역은 하나의 표준치료의 개혁적 변형 혹은 새로운 치료법을 처음으로 응용하는 것에서부터, 그 효과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실험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임상실험과 순수한 치료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에 의사는 자신이 지금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치료가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득과 실을 비교 검토해 본 후 환자 생명을 구하기 위해 위험한 실험을 감행할 수도 있으며, 그 실험을 통해 질병의 원인과 치유가능성을 찾아보며, 또 약물을 투여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생화학적 진전과정을 살필 수도 있다. 따라서 환자진료와 의학발전에 인체실험은 불가피하게 요청된다.

 

 인체실험은 사람이 대상이 되는 실험을 통틀어 의미한다. 인체실험에는 첫째, 건강한 일반인 혹은 환자를 대상으로 생리적 기능을 연구하는 경우가 있다. 기계적 조작을 통한 인체실험과, 또는 단지 맥박, 호흡, 소변량의 측정 등 관찰을 통한 인체실험이 이 범주에 속한다.

 

 둘째로 약품 투여를 통해 약품 효과를 알아내기 위한 임상실험이 있다. 모든 약품은 개발과정에서 동물실험을 거치며, 최종적으로 인체에도 효과가 있는지 여부를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함으로써 그 효과를 확인하게 되며, 이러한 임상실험은 보통 자원자 참여로 이뤄진다. 끝으로, 이제까지 전혀 시도된 바 없는 새로운 기계를 인체에 직접 사용하여 진단과 치료 효과를 확인하는 유형이 있다.

 

 실험대상자 동의와 자유의사가 전제된 경우 일반적으로 그 실험은 용인받지만, 실험대상자 선정에 있어서는 엄격한 제한이 따라야 한다. 예를 들면 생활이 빈곤한 사람들에게 금전적 대가를 약속해서는 안 되며, 자유의사에 의한 동의를 하기에는 제약이 있거나 타인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어린이, 수감자, 지적장애인은 원칙적으로 실험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왜냐면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이뤄지는 전쟁포로에 대한 실험이나, 본인의 동의하에 이뤄지지만 취약계층의 사람이나 수감자 경우에는, 그들이 실험을 거부할 수 있는 입지가 극소화된 상태에서 이뤄지므로 실험 자체가 도덕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험대상으로 적합한 마지막 대상은 환자가 될 것이다. 환자는 치료 중이며 상태를 관찰받고 있으므로 가장 접하기 쉽다. 그러나 의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환자 입장이므로, 완전한 자유의사에 의한 동의인지 여부를 실험을 주관하는 의료진이 양심에 따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이미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에게 부담과 위험을 과중시키는 일은 용납돼서는 안 될 것이다.

 

 질병의 정복은 바로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검증적 실험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불가피한 환자실험의 요청 때문에 아주 민감하고 복합적인 문제가 제기되며, 의사 및 간호사와 환자의 관계에서 환자에 대한 의료인의 책임이 따르게 된다.

 

 치료 과정에서 의사와 간호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무가 아닌, 바로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닌다. 그들은 사회나 의학 혹은 환자의 가족이나 동반자 혹은 동일한 질병을 앓게 될 미래 환자들의 대리인은 아니며, 의료인은 환자의 쾌유만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환자를 실험대상으로 하려면, 단지 환자 자신의 질병과 관련된 실험만 해야 하며, 그 이상의 불필요한 실험은 결코 시행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질병과 무관한 실험으로부터는 어떠한 치료상의 이로운 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실험이 환자 자신을 도울 것이라 기대되는 경우 외에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 허용돼서는 안 된다.

 

 

평화신문   [1064호][2010.04.18]

 

☞기사원문 바로가기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