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 생명 문화

관리자 | 2010.05.10 13:10 | 조회 1327

"[생명의 문화] 생명 문화"

 

▲ 신승환 교수(가톨릭대 철학과,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운영위원

 

후기 산업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국가 경쟁력과 선진화 등일 것이다. 산업화가 시작되던 초기 우수한 능력을 갖춘 인재와 노동력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무개념과 반인각적 태도

 

이런 경제 성장이 현대에 이르러 저출산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그래서 저출산 현상을 되돌리기 위해 전 국가적 노력을 쏟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들에 어떠한 인간에 대한 존중이나 생명에 대한 고려가 담겨있지 않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낙태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논리가 철저히 국가 경쟁력이란 이름으로 이뤄지고 있어 그 무개념과 반인간적 태도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국가위원회에서 조차 출산과 태어날 생명에 대해 다만 경제와 성장이란 논리에 따라서만 접근하고 있다. 이는 우려할만한 반생명적 문화라고 밖에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여성 인권을 위해 노력한 여러 진보적 단체에 대해서는 마음 깊이 갈채를 보내며 그 뜻에 동의한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여성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들이 지닌 생명과 인간에 대한 단순한 이해와 무개념에 실망을 금할 수가 없다.

 

 여성의 몸 안에 자라는 생명은 분명 여성의 생명이지만, 그럼에도 여성이 마음대로 처리해도 좋은 것은 아니다. 여성의 인권을 말하면서 그들은 여성의 신체 권리와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에 담긴 일말의 진실에도 불구하고, 태아의 생명은 개인의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 말대로라면 내 자신의 생명과 신체에 대해서 나는 제약받지 않는 자유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결코 윤리적으로 정당화되지 못한다. 태아의 생명은 국가 경쟁력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또 태아의 생명이 여성이 마음대로 처리할 수있는 재산권과 같은 차원에서 다뤄질 수 없다는 사실도 그만큼 분명하다.

 

 생명은 일차적으로 나의 생명이지만, 그럼에도 생명은 그런 차원을 넘어서는 우리의 생명이며, 나아가 초월적 층위를 지닌다. 나의 생명이기에 자신의 의지에 따라 처리해도 좋다는 생각은 인간을 독립된 개체로 이해하는 전형적 근대철학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위험한 생각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경제 제일주의와 성장 신화다. 그런 사고는 반생명적이며 반인간적 행태에 불과하다.

 

 경제제일주의와 생명의 가치를 동시에 유지할 수있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는 사람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적 성장에 치중할 때 사람에 대한 가치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사람다운 삶을 위해 경제적 풍족함이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경제는 인간의 존재론적 지평을 떠나서는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경제적 가치는 인간의 존재론적 가치에 종속될 뿐이다.

 

 오늘날 생명을 경제 제일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태도는 반생명적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생명을 말하면서 경쟁과 성장 신화에 젖어있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문화 전체는 근대성의 관점에 젖어 너무도 생명과 인간의 권리에 대해 무지하다. 생명의 존엄성을 말하기 위해 교회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문화 전반에 만연한 이러한 풍조를 바꾸는 작업이다. 왜 생명이 중요한지 밝히고, 인간의 권리가 지켜져야 하는 신학적, 철학적 근거를 명확히 드러내는 작업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노력은 개별 생명윤리에 대한 강조만큼 중요하며, 어쩌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개별 생명윤리에 대한 강조와 함께 문화와 정신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이러한 반생명적 풍조에 맞서는 작업이 시급하다.

 

 얼마 전 4대 강 사업에 대해 교회가 명확히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은 늦은 감이 있지만, 생명을 말하는 교회로서는 분명히 해야 할 중요한 선언임에는 틀림이 없다.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생태계가 파괴되며 생명체의 지평 자체가 무너지는 상황에 침묵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침묵하면서 외치는 개별 생명윤리는 우리 사회에서 설득력을 지니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 위한 문화 만들어야

 

 이러한 선언이 교회 전체에서 개별 윤리규칙을 넘어 인간과 생명을 위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실천적 영역과 개별 생명윤리의 차원에서는 물론 문화와 학문, 사회 체계 전체에 대한 교정과 성숙의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최근의 우리 사회에서 보듯이 잘못된 문화와 무지한 경제 만능의 사고는 결국 생명과 삶이 자리한 터전 자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10. 04. 04발행 [10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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