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 ] 생명의 신비상

관리자 | 2010.05.10 11:54 | 조회 1373

[생명의 문화 ] 생명의 신비상

 

김찬진(변호사,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운영위원)

 

지난 2월 18일 제4회 생명의 신비상 시상식이 있었다. '생명의 신비상'은 난치병 치료 등에 필요한 생명과학 분야에 연구업적을 내거나 생명존중 문화 확산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포상하기 위해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제정한 상이다. 이 상의 명칭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4년 2월 11일 세계 병자의 날에 발표한 자의교서 「생명의 신비」에서 따왔다.

 

 정진석 추기경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생명경시 현상을 타파하지 않고서는 우리 민족이 하느님 보시기에 크게 부끄러운 단계에 이르렀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생명의 신비상을 제정해 매년 생명의 가치를 지키는 일에 크게 기여한 공로자를 찾아 표창하고 있다.

 

 이 상은 기념상패와 함께 생명과학분야와 인문과학분야의 대상과 장려상, 활동상으로 나눠 상금을 준다. 학술상은 탁월한 연구업적, 논문이나 저술을 남긴 사람에게, 활동상은 생명존중운동을 통해 인간생명의 존엄성 수호에 기여한 사람에게 각각 수여된다. 상금 액수도 만만치 않다.

 이 상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주관한다. 필자는 활동분야 수상 후보자 선정 작업을 맡아왔다. 그러나 학문적 업적을 평가하는 일이나 봉사활동의 성과를 다루는 일에 비해 활동분야 성과를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다. 더욱이 생명수호 활동은 국제적 연대와 교류가 절실하기에 활동분야 수상 후보자도 국제적 차원으로 넓혀졌지만, 정보 결핍과 다른 나라들과 접촉 부족 등으로 대상자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필자와 인연이 있는 사람 중에 미국에서 생명수호 분야에 권위있는 교수가 떠올랐다. 교황청 주요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고, 미국에서 생명수호에 관한 강연과 논술로 상당한 업적을 쌓은 하버드대 법대 메리 앤 글렌던 교수다. 그런 국제적 인물을 제 1회 생명의 신비상 활동분야 후보자로 선정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본다. 그는 2007년 2월 제1회 생명의 신비상 중 활동상을 받은 후 그해 11월 초 교황청에서 미국 정부를 대표하는 바티칸 대사로 임명받았다.

 

 사실 생명의 신비상 시상식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해 수상 후보자 선정을 고심해야 했다. 그러나 어려운 때일수록 지혜를 빌리는 길도 있음을 알게 됐다. 가톨릭교회 주요 정책 결정에 관여해온 글렌던 교수에게 다음 해 수상자 추천을 의뢰했다. 생명수호 분야에서 일해온 이런 사람만큼 국제적으로 좋은 대상자를 알고 있는 경우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글렌던 교수는 주저없이 호주 시드니대교구 교구장인 죠지 펠 추기경을 추천했다. 펠 추기경은 멜버른교구 교구장 시절 '요한 바오로 2세' 대학원을 설립했고, 현재는 우리 사제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해 연구를 계속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펠 추기경은 2008년 제2회 생명의 신비상 수상을 위해 서울을 방문한 뒤 서울대교구와 다각적 협력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염수정 주교를 비롯해 사제 5명과 가톨릭대 의과대학 교수 4명이 2008년 가을 시드니를 방문했을 때는 교구 현황과 사업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특히 의과대학 사이에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런 인연으로 서울대교구 사제 3명이 호주에서 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2009년 2월에는 펼 추기경의 추천을 받은 영국 상원의원 데이비드 알톤 경이 이 상을 수상했다. 알톤 경은 배아연구와 낙태반대운동, 북한을 비롯한 인권이 열악한 국가의 인권과 생명수호를 위한 활동을 활발히 펼쳐왔다. 특히 북한의 인권상황에 깊은 관심을 보여 영국의회에서 북한인권청문회를 열고 탈북자들이 북한의 인권현황을 자유세계에 고발할 수 있도록 했으며, 북한을 탈출한 난민들의 지원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여왔다. 북한에도 직접 다녀왔으며 이 상 수상을 위해 서울에 오는 길에도 북한 정부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올해는 30년간 미국 하원의원으로 활동해온 크리스토퍼 스미스 의원이 수상했다. 스미스 의원은 인신매매, 알츠하이머 질환, 자폐증, 생명옹호 등 중요 코커스의 공동의장이며, 그 외 인권, 낙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스미스 의원은 노동착취를 당하는 어린이, 납치되어 매춘생활을 하는 여성들,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갈 기회를 위협받는 태아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권익옹호에 힘써왔다.

 

 활동상 수상을 위해 한국에 온 스미스 의원은 서울에 머무는 동안 낙태반대운동을 펼치는 프로라이프 의사회 관계자들과 북한의 결핵퇴치를 위해 일해온 메리놀회 함제도 신부, 북한에 풍선으로 자유세계의 소식을 알리는 박상학씨 등과도 시간을 보냈다.

 

 이와 같이 생명의 신비상은 제정된 지 얼마되지 않았으나 생명수호에 큰 몫을 하는 한국 가톨릭교회 위상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는 내국인도 그 대상이 되지만 외국인을 우선적으로 선정해 시상한 활동상 덕분이다. 외국 사람까지 불러 상금과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소리도 일부 들리지만, 지구촌 시대에 국제화된 사회 환경에 걸맞은 시상제도가 더 늦기 전에 생겨 운영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까.

 

평화신문 2010. 03. 28발행 [10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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