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 의사 부족과 빈번한 의료 사고는 생명경시 초래

관리자 | 2010.05.10 11:50 | 조회 1429

 [생명의 문화] 의사 부족과 빈번한 의료 사고는 생명경시 초래

 

▲ 진교훈(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의료사고는 매우 빈번하며, 이로 말미암아 의료소송이 자주 발생한다.

 

의료소송은 인술을 베풀려고 애쓰는 선량한 의사들까지도 매우 곤혹스럽게 만든다. 예컨대, 산소과다 투입으로 뇌가 손상돼 장애인이 되었다거나, 위암 환자와 갑상선암 환자의 챠트가 바뀐 것을 모르고 엉뚱한 수술을 한 사건이나, 환자의 처방이 뒤바뀌거나, 더러운 수술도구 사용으로 말미암은 수술 중 치명적 세균감염으로 발생한 의료사고는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의 환자와 그 가족을 통해서, 또는 언론기사를 접하는 것은 이젠 드물지 않다.

 

어떤 언론은 의료소비자시민연대 간부의 말을 인용해 의료사고로 우리나라에서 매년 1만∼2만7000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는 보도까지 한다.

 

또 우리나라 사망원인 가운데 4~6위가 의료사고로 추정된다는 믿기 어려운 소문도 나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의료사고가 어느 정도 발생하는지를 말해주는 정확한 공식 통계조차 없다고 한다.

 

의사 수요에 공급 못미쳐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의료사고 문제가 심각한 것은 해당 의사의 능력 또는 경험 부족이 1차적 원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원인을 의사에게만 책임을 지운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필자는 한국의 의료사고 원인은 근본적으로 의사에 비해 환자가 너무 많다는 데에 기인한다고 본다. 서울의 대형병원, 특히 환자들 신뢰도가 높은 대학 부속병원의 의사는 하루에 무려 300여 명의 외래환자를 진찰하는 것이 흔한 일이다.

 

의사가 진료시간에 쫓기고 극도로 피로한 상태에서 진료를 하게 되는 시스템 문제는 이제 묵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환자진료에 충분한 시간을 투여하지 못해서 의료사고를 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는 환자에 비해 의사가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인구 당 의사 수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는 통계가 그 사실을 말해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 보건통계(OECD Health Data)에 의하면 2007년 현재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가 우리나라는 1.7명으로 터키(1.5명) 다음으로 적으며 OECD 평균 3.1명의 절반수준이고, 의사 부족으로 해마다 해외로부터 많은 의사를 수입하는 미국의 2.4명보다도 약 40%나 적다.

 

또 2005년 현재 우리나라 의사 당 진찰 건수는 7274건으로 미국 1593건에 비해 약 4.6배, 스웨덴 824건에 비해서는 약 8.8배나 높다.

 

인구(환자)에 비해 의사가 부족하면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초래된다.

 

첫째, 의사들이 1인당 과다한 환자를 진료하기에 환자당 진료시간이 지나치게 짧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로 인해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충분히 관찰하고 검토할 수 없게 되고 의사의 피로도가 높아져 환자에게 친절한 설명을 해주기 어렵고, 더군다나 의사 본분인 새로운 지식 및 기술 습득을 위해 투자할 시간도 부족하게 된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이로 인해 의료사고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의사의 건강과 환자의 존엄성이 무시된다는 것이다.

 

둘째, 의사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해 인기 없는 진료과는 전문의(專門醫)) 부족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9년 의대 정원은 3086명으로 2010년 인턴 정원 신청인원 4291명보다 약 1200명이나 적다. 이로 인해 다른 과에 비해 개업이 어렵고 업무강도가 강한 흉부외과 등 비 선호과는 매년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령화도 대비해야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최근 흉부외과 의료수가를 대폭 인상하고 의사 월급을 올리기도 했으나 이는 그 원인을 해결하는 근본 처방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면 특정과 전공의 지원자를 늘리면 다른 과의 전공의 지원자를 줄이는 악순환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셋째, 인구고령화 등으로 인해 의료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앞으로 의사 부족 현상은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인구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에 속한다. 이를 반영해 우리나라의 의료지출 증가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넷째, 성균관대 송윤미 교수 등이 1983년-2004년간 사망원인 통계연보에 의거 사망양상 통계분석 결과를 발표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 연간 질병사망자의 45.5%는 적절한 의료 조치가 있었다면, 생존이 가능한 '피할 수 있는 사망'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망자의 발생은 의사의 부족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의사 수를 늘려 의사를 보호해야 한다.

 

 

평화신문  [1060호][201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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