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그리스도인의 죽음이해와 수용

관리자 | 2010.05.10 11:37 | 조회 1482

 [생명의 문화]그리스도인의 죽음이해와 수용

 

▲ 우재명 신부(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김수환 추기경님 선종 이후 우리 사회에서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어떻게 하면 삶의 마무리를 잘 수행해 품위 있고 자연스런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하는 것이 화두이다.

품위있는 죽음이란

 
 필자는 얼마 전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어느 신자를 방문했다. 그 환자는 다른 중환자들과는 달리 의식은 또렷한 상태였다. 그 환자가 필자에게 가장 먼저 하소연한 것은 자신을 어서 빨리 중환자실에서 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많은 환자들을 매일같이 목격하면서 죽음이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자신도 곧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죽음은 실로 위협적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해지기 일쑤여서 죽음의 순간에는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버려졌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존엄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죽음을 품위있게 맞이할 수 있을까. 필자는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죽음을 품위있게 맞이 할 수 있는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죽음을 올바로 이해하고 수용하는데 커다란 동력이 된다.

 죽음에 대한 연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엘리사벳 퀴블러 로스는 처음부터 자신의 죽음을 수용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으며, 대부분 사람들은 부정->분노->타협->우울->순응 다섯 단계를 거쳐 자신의 죽음을 수용하게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가 죽음을 수용하는 동일한 과정을 밟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이 다섯 단계 중 어떤 단계를 생략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죽음을 수용하지 못하고 죽는 이도 있다.

 퀴블러 로스 자신은 임종하면서 "나는 은하수로 춤추러 간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평화로이 잠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신앙심을 바탕으로 죽음을 생의 마지막으로 여기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보았다.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 하늘에서 소풍 온 것처럼 여기면서, 죽음은 본래의 자리인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이러한 죽음 이해는 임종 순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데 커다란 동력이 됐다.

 신학자 칼 라너는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한편으로 인간 삶의 종결이며 생물학적 임종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이기에 죽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는 것이라는 역설이 성립한다. 왜냐면 "우리가 그 분(예수 그리스도)과 함께 죽었으니 우리가 그 분과 함께 살 것"(2디모 2,11)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생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살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죽음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칼 라너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리스도인의 죽음이 갖는 성사적 일치를 강조한다. 특히 병자성사는 죽음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커다란 힘이 된다. 질병은 인간이 겪는 극한 한계이다. 인간은 질병 중에 번뇌하기도 하고 도피하기도 하며 때로는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문제는, 질병의 고통으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진 어려운 상황을 충분히 심사숙고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의 순간이야말로 하느님 은총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순간이며 병자성사는 이를 도와준다.

 필자의 부친은 2년 전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부친께서는 죽음의 병상에서 일반적으로 겪는 육체적, 심리적 고통으로 괴로워하셨다. 필자는 아버지에게 마음을 준비하시도록 청하고 병자성사를 드렸다.

 병자성사 후에 아버지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보고 필자는 너무 놀라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조금 전까지 육체적, 심리적 고통으로 괴로워하시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에 평화만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그 뒤 3주 후에 하느님 품으로 가셨다.

죽음, 종말인 동시에 완성

 조병화 시인의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사망의 사이/한걸음을 두고/인생에 잠시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단순히 영혼과 육체의 분리를 경험하는 외로운 죽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종말인 동시에 완성이다.

평화신문  2010. 02. 14발행 [1056호]

 

 

☞기사원문 바로가기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