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갑시다] 자살이 권리가 된다면

관리자 | 2010.01.06 16:11 | 조회 1611

 

"[생명의 문화]자살이 권리가 된다면"


▲ 김명수 신부(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지난 3월 미국 워싱턴 주에서는 '존엄사법', 즉 안락사법이 통과했다. 그 법안은 조력 자살이라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데, 그로 인해 벌써부터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자비와 선택'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비정부 단체가 조력 자살을 하려는 이들에게 관련 정보와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이 단체가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이들에게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원하지 않는 다른 많은 병자들에게도 임의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환자 57명이 이 단체를 찾아왔지만 이 단체는 벌써 2000명이 넘는 환자, 가족, 의사와 호스피스 기관에 원하지도 않은 정보를 제공했다. 즉, 환자들이 단지 병만 걸리면 쉽게 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메시지를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결과는 안락사법들이 먼저 통과된 네덜란드나 미국 오레곤 주에서처럼 이제는 병증이 심하지 않은 이들마저도 병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환자들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호스피스에서 일하는 간호사나 봉사자들도 영적, 감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법의 냉정하고도 잔인한 허락을 받은 환자들이 이들이 보는 앞에서 눈을 감는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보며 이들은 죄책감과 슬픔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죽음이 권리와 선택으로


 '자비와 선택' 외에도 안락사를 합법화하려고 하는 그룹들이 또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그룹이 바로 호주에서 활동하는 '엑시트 인터네셔널(Exit International)'이라는 단체이다.
 
 이 단체는 필립 니시케라는 의사가 설립했다. 그는 노령화 사회에서 환자 개개인이 자신의 상황이 더 이상 좋아지지 않을 때 자유롭게 생명을 마무리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단체는 미국 워싱턴 주에 사무실을 열고 미국 뿐 아니라 캐나다에서도 자신들의 운동을 확산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와 관련, 캐나다의 안락사 반대 운동 책임자인 알렉스 샤던버그는 니시케가 말기 환자뿐만 아니라 단지 삶에 대한 의욕이 없는 사람이나 작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원하기만 한다면 안락사에 대한 권리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또 그 주장이 사회적으로 차츰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사실 이 단체는 누구에게나, 심지어는 청소년에게도, 조력 자살을 위한 약과 기구들을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많은 나라들에서 안락사에 대한 법들이 논의되고 있다. 이혼이나 낙태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많은 반대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나라씩 안락사가 허용돼가고 있다. 한 번 허용되면 그것은 권리가 되고 만다. 우리나라 또한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이것이 옳은 길이며 인간적인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끔 삶에 대한 염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 주위에 있는 누군가가 삶에 대해 고통을 느낄 때 "그래, 삶이 싫으면 그만두라"는 식의 종용보다는 그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 사랑과 배려로 함께 해주는 것이 인간적이고 올바른 행동이라고 본다.
 

개인주의 벗어나야

 이는 어떠한 종교적 이념을 떠나서라도 가장 기본적이며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죽음을 선택한 이들 중 이웃의 도움과 사랑을 받고 삶을 새롭게 시작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죽게 해달라'는 호소는 실은 사랑과 관심을 가져 달라는 절규다.
 
 이혼과 낙태, 안락사라는 거대한 죽음의 문화의 파도 앞에 놓인 우리 입장은 어떠한가. 또 다시 가장 소외받고 약한 사람들이 고독하고 쓸쓸하게 죽어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나. 현대의 가장 악성 암인 개인주의에 빠져 나 몰라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고통받는 이들 안에서 주님을 알아보고 그들을 도우려고 노력해야 할 것인가.
 
 죽음의 문화가 확장되는 것은 니시케와 같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생명의 문화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용히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다.
[평화신문] 2009. 11. 22발행     10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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