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갑시다] 새롭게 인식되는 가정과 출산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관리자 | 2009.12.29 17:12 | 조회 1427

"[생명의 문화] 새롭게 인식되는 가정과 출산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정부는 '변덕' 교회는 '한결'


▲ 맹광호 교수(가톨릭대 의대 명예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최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투어 출산을 장려하는 새로운 인구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아이를 낳은 엄마들에게 출산 축하금이나 장려금을 주기도 하고 다자녀 가정에 주택 우선입주권이나 주택구입자금을 대출해 줄 뿐 아니라 전기세나 수도세 같은 공과금도 감면해 주는 등 그 혜택도 매우 다양하다.
 
 이 같은 정책들은 그 동안 우리나라 부부들의 출산율이 크게 떨어져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급격한 인구노령화로 경제활동 인구가 점차 감소되어 결국 머지않아 국가경제마저 어려워질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낮은 출산율

 얼마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출산력 및 가족보건실태의 변화양상과 대응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출산하는 아이 수, 즉 합계출산율이 1960년에는 6.0명이었으나 최근에는 무려 1.2명 수준으로 까지 떨어져 지금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낮은 수준이 됐다.
 
 이 같은 출산율 저하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1960년 이후 정부가 추진해 온 강력한 출산억제 정책 때문이다.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자'는 구호 아래 세 번째 출산하는 아이에 대해서는 아예 의료보험혜택도 주지 않았고, 80년대 초에는 '하나도 많다'는 구호를 내세워 피임과 출산억제를 강조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남녀 출생성비의 균형이 깨지고 인공임신 중절이 만연했으며 이혼의 증가와 청소년 성 문제 같은 반생명적인 일들이 봇물 터지듯 발생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급속한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노동력 수급의 불균형과 노인인구 급증에 따른 복지비용 부담 등 우리 사회가 긴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할 문제들이 줄을 이어 발생했다.
 
 지금 인구문제 전문가들이 특히 걱정하는 것은 정부가 1980년대 말에 출산억제 인구정책을 포기했는데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금 젊은 부부들 사이에 자녀는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아주 넓게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자녀가 없어도 좋다는 젊은 부부들의 비율이 무려 41.5%나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급격한 출산율 저하에 대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보고서는 심각한 문제제기와 함께 몇 가지 중요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이제 더 이상 출산율이 떨어지지 않도록 출산수당이나 육아를 위한 아동수당을 지급해서라도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 부부들의 피임방법을 부인 위주의 영구피임에서 남편이 함께 협조하는 일시 피임방법으로 바꾸도록 한다는 것, 그리고 셋째, 결혼과 가정의 가치를 올바르게 교육함으로써 개인주의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출산기피와 여성 독신주의를 가족주의적 가치관으로 바꾸어 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내용의 인구정책은 정부가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인구 억제 정책을 시작한 1960년대 이래 계속해서 가톨릭교회가 강한 우려와 함께 대안으로 제기했던 것들이다. 예컨대, 1968년 바오로 6세 교황의 「인간생명」회칙과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가정공동체」같은 문헌 내용을 바탕으로 교회는 자녀수를 결정하는 일에 있어서나 피임방법을 정하는데 있어서 교회가 일관되게 생명의 존엄성과 부부의 자율적 책임을 강조해 온 일이 그것이다.

교회 가르침 새롭게 인식 

 부부 출산을 억제하기 위한 갖가지 가족계획방법을 보급하고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부부들에게 정부가 여러 가지 혜택을 주기까지 했던 1970년대 초부터 교회가 부부간의 사랑과 협조를 바탕으로 임신과 피임을 조절하도록 한 자연가족계획 방법을 보급한 일이나 국내 가톨릭계 병원들이 정부의 곱지 않은 눈총을 받아가며 셋째 이상 아이 출산에 대해 보험수가를 적용해 주었던 일 등이 바로 그 좋은 예다.
 
 뒤늦게나마 가정과 출산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이 새롭게 인식되는 것 같아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평화신문] 2009. 1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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