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갑시다] 생명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결단

관리자 | 2009.12.29 14:58 | 조회 1347

"[생명의 문화] 생명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결단"


소유하고 누리는 것에 매몰된 시대


▲ 신승환 교수(가톨릭대 철학과,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인간은 생명체이면서 동시에 문화적 존재다. 그래서 인간은 이 두 영역에서 주어지는 조건과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그에 대한 수용과 이해에 따라 자신이 결정되는 존재다. 우리는 이러한 존재에 근거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며, 문화와 사회를 만들어간다. 그것은 생명체로서의 조건과 한계를 수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를 넘어서는 이해와 규범을 설정한다는 의미다.
 
 이 두 가지 원리는 인간의 모든 문화적 행위들, 즉 학문과 예술의 추구, 사회적 제도와 규칙, 도덕 의식과 윤리 규범을 설정하는 작업에 빠짐없이 적용돼야 한다. 주어진 한계와 실존적 상황을 수용하는 것과, 그럼에도 이를 넘어서려는 존재적이며 초월적 의지를 동시에 볼 수 있고, 동시에 매개할 수 있을 때 우리 인간은 올바르게 존재하게 된다.
 
 경제와 과학ㆍ기술이 최고조에 이른 후기 산업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는 무엇일까? 이 시대는 형이상학의 몰락과 존재론적 진리의 부재를 경험하는 시대이다. 그것은 초월적 지평을 잊어버리고, 존재론적 진리 파악이 가능하고 소유 가능한 대상으로 환원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 문화가 다만 물질적이며 형이하학적 차원으로 환원되고 그런 자리에 머물러 있게 된다면, 생명과 진리, 존재와 삶은 결코 올바르게 드높여질 수 없게 된다.
 
 그러한 문화는 인간의 생명체적 조건과 한계에 매몰되어 우리가 지닌 초월적이며 존재론적인 지평을 보지 못하게 할 것이다. 경제와 과학ㆍ기술의 문화는 우리가 결단하는 진리와 의미에 근거할 때야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초월적 지평과 존재론적 진리를 다시금 드러내고, 죽음의 문화를 극복해야하는 과제를 이뤄가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생명체로서의 한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그를 넘어서는 그 이상의 자리로, 형이상학적 지평으로 향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경제가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고, 과학ㆍ기술이 존재론적 지평까지도 장악하면서, 오직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가치에만 매몰된 문화의 시대이다. 자명하게 보이던 진리들이 후기산업사회의 현란함에 감추어져 버린 시대, 교회조차 이러한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대에 지상 예수에 의해 선포된 복음을 구현하고 현실화하는 작업이 결코 쉬울 리가 없지 않은가.
 
 어느 시대인들 이런 일이 쉬웠을리 없지만, 객체화된 근대의 문화가 최고조에 이른 이 시대는 이것을 더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리의 문화가 죽음의 문화로 치닫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존재론적 진리가 가려지고, 초월적 지평이 매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생명을 존중하고 살려가는 문화는 이런 한계 상황에서 어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작업은 언제나 과정 중에 있으며, 이를 위해 끊임없이 걸어가는 나그네인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들이 아닐까. 우리가 자리한 현재는 이러한 과제를 실행하는 지평이며, 지나간 역사는 우리 존재가 이러한 끝없는 과정 중에 있음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인간 편에서 하느님을 이해한다면, 그 분은 이러한 인간의 실존적 노고와 역사에서 인간과 함께 일하시는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전통적인 철학적 신론을 넘어 하느님을 우리와 함께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참된 삶으로 이끌어가는 내재하면서 초월하시는 분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렇게 역사에서 함께 '일하시는 하느님'과 더불어,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존재로 자리해야 할 것이다. 매 순간 우리는 이러한 과제를 이뤄가야 하며, 매 순간 이를 위한 결단에 마주하고 있다. 그에 대한 응답이 이 시대의 소명이며, 우리 존재의 실존적 지평일 것이다.
 
 경제가 모든 것이 된 사회, 사회적 약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문화, 그 죽음에 침묵하는 사회는 결코 생명을 살리는 문화일 수가 없다. 생명을 살리는 문화는 우리가 지닌 생명체로서의 조건과 한계를 수용하면서도 이를 넘어서는 층위를 회복할 때만이 가능하다.
 
 경제와 과학ㆍ기술의 문화가 지니는 생물학적 차원에서의 정당함은 수용해야 하지만, 그것이 문화적이며 존재론적 차원에서까지 절대적인 규범인 것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러한 문화의 한계를 드러내고 이를 넘어서려는 끊임없는 노력이야말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해야할 과제일 것이다.
 
 생명체인 인간이 생명체의 조건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그 이상의 존재이기에, 이러한 조건과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결코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를 위한 존재론적 결단과 성찰이야 말로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시대적 결단일 것이다.
[평화신문]  2009.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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