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갑시다] 생명지킴이를 기리자

관리자 | 2009.12.29 14:56 | 조회 1389
 
"[생명의 문화] 생명지킴이를 기리자"

▲ 진교훈 교수(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생명이 존중돼야 하며 일상생활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의 해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신자들까지도 잘못된 선입견과 그릇된 정보와 타성과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생명을 훼손시키는 죄악을 범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와 교회에서 올바르게 생명의 존엄성을 배우고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윤리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누구나 공부에 흥미를 갖는 것도 아니고, 당장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닌 생명윤리학을 공부하라고 권한다 해서 당장 큰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수고와 노력을 하지 않고도 생명존중사상을 옹호할 수 있는 길이 우리에게 열려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명을 지켜 주는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분들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그분들에게 경의를 표함으로써 그들을 격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한 범위에서 갸륵한 생명지킴이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그분들을 도와드리는 것이다.
 
 오늘날 중요한 생명지킴이는 의사뿐만 아니라, 실제로 동생을 보살피는 누님과 언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환자들을 보살피는 간호사들, 그리고 병원에서 사용되는 각종 기기(器機)의 치밀한 조작과 철저한 관리를 책임지고, 고도의 전문지식과 숙련된 기술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기사들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대체로 돈벌이가 잘 된다는 이유만으로도 인기 있는 직종이지만, 간호사와 기사는 의사와는 도무지 비교가 될 수 없는 낮은 처우를 받으며, 이상하게도 세상 사람들에게 그들의 노고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간호사 역할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간호사는 건강관리를 전적으로 맡아서 봉사하며, 장기치료를 요하는 만성병환자를 보살피고 부분치료에도 관여한다. 또한 수술실, 중환자실, 병실, 각종 요양원에서는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의사의 동반자이다.
 
 실제로 간호사가 의사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환자를 보살피고 있기에, 간호사의 열성과 친절과 슬기, 그리고 사랑이 담긴 태도는 환자 마음의 평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간호사를 가리키는 영어 'nurse'는 동사로는 '젖을 먹이다'는 뜻을 지니고 있고, 명사로는 '유모'를 의미한다. 서양에서는 간호사를 '언니'(sister, Schwester) 또는 '누님'이라고 부른다. 요컨대 핵가족시대에 간호사는 우리가 아플 때, 엄마를 대신하며, 언니나 누나 역할을 하는 분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자란 사람은 엄마와 누나와 언니의 양육에 보은(報恩)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우리도 간호사의 보살핌에 보은하는 것이 옳고 마땅한 일일 것이다.
 
 처우에 불만을 품고 있거나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한 미숙한 기사에 의해 만일 병원검사실의 각종기기가 제대로 정확하게 작동하지 못한다거나, 소독이 제대로 안돼 오염되거나, 병리검사가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유능한 의사도 오진을 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환자는 의원병(병원에서 발생하는 병)으로 고생하게 돼 결국 환자 생명까지 위협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병원당국은 간호사와 병원기사에게 적정한 처우를 해야 할 것이고, 이것이 병원 경영상 불가능하다면, 정부가 이를 보조해야 함은 마땅한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산부인과병원이 없는 곳이 많으며, 촌각을 다투는 교통사고 환자를 치료하는 전문병원도 없다. 그러므로 산부인과병원과 교통병원을 짓고 지원하는 일은 시급하다.
 
 그리고 인간 존엄성을 짓밟는 대형병원의 응급실의 모순을 근원적으로 시정해야 할 것이고, 인기 없는 외과와 산부인과 등을 지망하는 전문의를 육성하고, 우수한 사람들이 병원기사와 간호사가 되는 것을 기피하지 않도록, 각종 혜택을 주는 방안을 정부와 우리 교회는 강구해야 할 것이다. 특히 야근을 하거나, 오지(奧地)에서 근무하는 생명지킴이는 물질적으로도 우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은 자기 생명을 건져주신 생명지킴이를 보는 순간 천사를 연상하고 먼저 사은(謝恩)부터 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생명을 지키는 선생님(醫師, 看護師, 技師)들을 기리고 지원하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09. 10. 25발행    10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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