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갑시다] 낙태, 왜 금지되어야 하는가

관리자 | 2009.12.29 14:53 | 조회 1586
 

"[생명의 문화] 낙태, 왜 금지되어야 하는가"


▲ 구인회 교수(가톨릭대 생명대학원)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불행히도 현실적 문제들 때문에 낙태를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타협적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이 가톨릭 신앙 공동체에서도 간혹 눈에 띈다. 낙태 금지를 고수하는 교회 입장은 과연 법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비현실적 독단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면 낙태 찬성론자들이 제시하는 대표적 근거를 검토해보고, 이것이 어떻게 반박될 수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첫째, 태아는 산모의 몸의 일부이기에 자기 몸에 대해 결정권을 가진 여성이 낙태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산모는 자기 자신의 몸에 대해 소유권과 결정권을 갖기에 언제든지 낙태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는 우리 몸에 대해 소유권을 가지며, 몸의 일부인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기증하거나 심지어는 팔기도 한다. 하지만 태아는 산모의 일부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이다. 태아 입장에서 보면 생존을 위해 임산부의 몸이 필요하며, 어쩌면 그것은 임시로 태아의 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한 소유권은 오히려 태아에게 더 절박한 것이며, 적어도 임산부와 태아 쌍방에 유효하다고 봐야 한다.
 
 둘째, 여성은 태아를 생산하기에 태아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한 논리라면 우리 모두 부모의 생산물이므로,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돼야 할 것이다. 태아만이 유독 부모의, 특히 산모의 소유물이어야 한다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

 셋째, 여성은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구상하고 계획할 권리를 갖고 있기에 낙태에 관해서도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율성이 절대적 가치일 수는 없다. 자율성이 보다 중요한 타인의 가치, 즉 생명권과 충돌될 경우 생명권이 보호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넷째,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으로 겪는 사회적 불평등을 제거하기 위해 낙태를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아를 살해함으로써 기회균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무고한 약자인 태아에 대해 보다 큰 불평등, 보다 큰 악을 행하는 것이다.
 
 다섯째, 여성들이 낙태하는 것은 자기방어와 정당방위의 권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태아가 산모를 죽이는 위협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아마 극히 드문 특수한 의학적 상황 외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여섯째, 일정한 시기 이전의 태아는 아직 완전한 인간이 아니므로 낙태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난자와 정자가 서로 만나 수정되는 순간부터 연속선상에 있는 하나의 인간 생명체이다. 특히 가톨릭교회는 수정 시점부터 바로 하나의 온전한 생명체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다. 어느 한 시점을 정해서 그 이전에는 사람을 죽일 수 있고 그 이후에는 죽일 수 없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출생 직전 아이와 출생 이후 아이를 무슨 근거로 구분해서 어느 쪽은 죽여도 되고 어느 쪽은 죽일 수 없다는 논리를 세울 수 있겠는가.
 
 일곱째, 사람들은 태아가 기형이란 검사결과가 나오면 낙태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태아의 처지가 아니라 부모의 상황만 고려한 것이다. 아무리 결함이 있는 태아라 하더라도 타고난 결함 때문에 타인의 결정에 따라 죽임을 당하기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의 삶이 불행할 것이라고 예단하고 생존 기회를 뺏을 권리가 부모에게 없다. 또 결함과 장애를 가진 태아를 제거해야 한다면 현재 그러한 결함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삶의 가치를 부정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여덟째, 아이를 불행한 환경에서 낳아 불행하게 자라게 하는 것보다는 불행의 씨앗을 애초에 없애는 편이 낫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를 수 있다.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처럼 한 인간의 범죄행위로 인해 아이가 생겼다고 해도 무고한 태아를 죽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미성년자의 임신도 마찬가지이다. 아이가 훗날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아이의 행복이 결정될 것이다. 더구나 살해당하는 것과 불행할지도 모르는 삶 중 양자택일해야 하는 가능성밖에 없을 경우 당사자인 아이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는 결코 살해당하는 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낙태에 관한 고려는 아이에게는 생사의 문제이다. 생사와 직결되지 않은 여성의 이익이 결코 태아 생명보다 우선할 수 없다.
 
 우리나라 출생률은 세계 최하위권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머지않아 고령사회가 되고, 인구가 감소해 국가경쟁력에 상당한 장애요소가 될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모든 상황을 고려해볼 때, 당장의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태아에게 생명의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근본적이고 다양한 복지 정책을 펴서 여성으로부터 자녀양육의 부담을 덜어주고, 태어난 아이가 죽음의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09.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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