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 - 박정우 신부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관리자 | 2009.12.18 10:22 | 조회 3775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

 

박정우 신부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들어가는 말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생성 시초부터 하느님의 창조행위에 연결되며 또한 모든 생명의 목적이기도 한 창조주와 영원히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만이 그 시작부터 끝까지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무죄한 인간을 직접 파괴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이 문헌에서 선언한 것처럼 가톨릭교회는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창조주를 닮은 인격적 존재로서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았기에 인간 생명 역시 하느님의 영역으로 신성하다고 여긴다. 따라서 무죄한 인간 생명을 고의적으로 해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공격이며 중대한 도덕적 죄로 간주한다. 또한 인간 생명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자연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생명의 존엄성과 권리가 철저하게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다만 이웃 사랑과 신앙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고 희생하는 것은 절대적 가치인 영원한 생명을 향하는 숭고한 행위로 인정하고 있다. 가톨릭 신자들은 현세적 생명이 궁극적이고 초자연적인 영원한 생명에로의 완성을 향한 출발점이며 핵심이기에 신성한 것이며 따라서 이 현세의 생명을 잘 보존하고 완성시켜야 할 소명을 지니고 살아간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가톨릭교회는 낙태, 자살, 안락사, 배아 연구와 파괴, 인공생식 같이 인위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해치는 행위들을 단호하게 단죄하고 있다.

한편 가톨릭교회는 죽음 역시 삶의 일부이며 회피할 수 없는 것으로서 “죽음의 시간을 재촉하지 않으면서” “온전한 책임과 존엄성을 지니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한다고 가르친다. 가톨릭교회는 이런 맥락에서 말기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러나 ‘죽음의 문화’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존엄한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실질적으로 인간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안락사’가 무분별하게 행해지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위 ‘존엄사’ 논란과 관련해서 마치 마땅한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사’라는 이름으로 합법화하려는 일부의 주장이 있어왔다.

가톨릭교회의 최고 권위기관인 로마 교황청은 이미 1980년 5월 5일 「안락사에 관한 선언」이라는 문헌을 통해 ‘고의로 죽음을 가져오는 행위’이든 ‘부작위(不作爲)’이든 인위적인 생명단축을 시도하는 안락사는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가능한 경우에 관한 분명한 지침을 발표했다. 그리고 1981년 6월 27일 「중환자와 임종자에 관한 윤리 문제(1981)」, 「의료인 헌장(1995)」, 그리고 요한바오로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1995)」에서도 안락사와 ‘과도한 의학적 치료의 중단‘ 등의 문제를 다루며 전 세계 가톨릭 신자가 따라야 할 윤리적인 가르침을 제시해왔다. 따라서 이번 발표에서 필자는 이런 교황청 문헌들을 중심으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설명하고 우리나라에서 논의되고 있는 ‘존엄사 입법’ 및 의료계의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지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1. 가톨릭교회가 말하는 ‘연명치료 중단’는 무슨 의미인가?

가톨릭교회에서 말하는 연명치료 중단란 ‘죽음이 임박하고 피할 수 없을 때’ 단지 죽음의 시기를 늦추는 정도의 생명연장을 위해 예외적이고, ‘균형을 넘어서는’ 과도한 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런 죽음을 맞아들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연명치료 중단은 인위적인 생명의 단축의 의도가 없어야 하며 생명의 마지막 과정으로서의 죽음이라는 인간 조건을 받아들이며 과도한 치료로 말미암아 환자가 더 큰 고통을 겪거나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게 하기 보다는 환자가 임박한 죽음을 받아들이며 명료한 의식 속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잘 준비하도록 돕는다는 의미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살 또는 소극적 안락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엄밀한 의미의 안락사는 모든 고통을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그 자체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죽음을 야기하는 작위 또는 부작위”이므로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 결정은 그 지향과 방법이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을 의도하는 행위들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가톨릭교회는 지난 5월 이후 논란이 되었던 소위 ‘존엄사’가 고의적인 인간 생명의 단축을 의도하는 ‘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이라는 긍정적인 표현으로 미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의심해 왔고, 최근 ‘존엄사’라는 표현대신 의료계와 언론에서 ‘연명치료의 중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한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가톨릭교회에서는 어떤 경우에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우선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1980년에 발표한「안락사에 관한 선언」은 연명치료의 중단에 관한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가톨릭교회의 공식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헌은 말기 환자에게 조금 위험이 예상되더라도 다른 충분한 치료법이 없다면 환자의 동의 아래 실험 단계에 있는 진보된 의학기술의 사용도 허용하되, 그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의사들은 자의 동의 아래 그런 수단들을 중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그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의사들은 치료에 투입되는 사람들과 설비에 비해 환자에게 예상되는 치료 결과가 ‘균형’ (proportional)이 맞는지, 아니면 그 새로운 기술이 환자에게 ‘균형’을 넘어서는 고통을 강요하는 지를 판단할 수 있다며 의사의 양심과 전문성을 강조한다.

모든 경우에 가능한 모든 의약을 사용할 필요가 있겠는가? 과거에, 윤리학자들은 누구든 결코 ‘예외적인(extraordinary)’ 수단을 사용하도록 강제될 수 없다고 답변하였다. 하나의 원칙으로서는 여전히 유효한 답변이지만, 용어의 모호성과 질병 치료의 급격한 발전으로, 오늘날에 와서는 좀 분명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균형’ 또는 ‘불균형(disproportional)’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다른 충분한 치료법이 없다면, 그러한 수단이 아직 실험 단계에 있고 어떤 위험이 없지 않다 하더라도, 가장 진보된 의학 기술로 제공된 수단들을 환자의 동의 아래 사용하는 것은 허용된다... [필요한] 수단들을 사용하였으나 회피할 수 없는 죽음이 임박할 때,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운 생명의 연장을 보호해 줄 뿐인 치료법을 거부할 수 있는 결정은 양심 안에서 허용된다. 단, 유사한 병증의 환자에게 요구되는 정상적인 간호는 중단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험 가운데 있는 사람을 돕지 못한 일로 의사가 자책할 이유는 없다.

1995년에 발표된「의료인 헌장」과 「생명의 복음」도 환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인공적인 생명 연장만을 위한 지나친 ‘의료집착’을 경계하면서 의료인들이 위에서 말한 ‘합리적 치료’ 원칙을 지키도록 촉구하고 있다.

[인공적인 생명 연장 방법은] 이른바 “의료 집착”으로 “인공적으로 환자의 고통을 연장시켜 환자들을 더 고갈시키고 고통스럽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임종자의 존엄성과 죽음을 받아들여 궁극에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맞이하는 도덕적 의무에도 반하는 것이다. 죽음은 인간 생명의 엄연한 일부”이다. 그러므로 이로부터 달아나고자 무가치하게 생명을 연장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의료인은 자신이 “생명의 주인도, 죽음의 정복자”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치료 수단을 강구할 때 “이른바 환자에 관련시켜 합당한 선택을 해야 하고, 환자의 실제 조건에 맞추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난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인위적인 생명연장을 거부한 것도 자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연명치료의 중단이지 소위 ‘존엄사’를 ‘선택’했다는 일부 언론의 표현은 맞지 않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중단할 수 있는 연명치료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 문헌들은 다루지는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톨릭교회는 죽음이 임박한 말기 환자에 대해 연명 장치로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다고 본다. 교황 비오 12세도 “사실상 이미 죽은 환자에게 부착되어 있는 인공호흡기의 제거는 그를 평화 속에 떠나보내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사실 어떤 것이 중단할 수 있는 연명치료의 범주에 드는 것인지 일반화하여 말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죽음이 임박한 회복 불가능한 환자에게 인공호흡기의 제거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에 해당할 수 있지만 치료가 가능한 환자에게는 통상적인 의료행위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개개의 환자에 대해 의료진의 전문적 지식과 올바른 양심의 판단에 따라 자연적인 죽음의 순간이 임박했는지 여부와 연명치료 중단의 여부를 매우 신중하게 내릴 것을 요구한다. 같은 맥락에서 개개의 환자의 상태와 환자의 원의, 의료진의 판단, 의료기술의 발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연명치료의 중단 여부를 일반화하여 법률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남용될 여지가 있다고 본다.

 

2. ‘사전의료지시서’의 도입과 연명치료 중단 결정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가톨릭교회 문헌들은 연명치료 중단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우선 환자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없음을 명백히 하면서, 의료진이 환자의 죽음을 초래할 연명치료의 중단은 환자의 의도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을 권리’를 말하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의 손으로 또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죽음을 획득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그리고 그리스도교적인 존엄성을 지니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치료 수단의 사용은 가끔 어려운 문제를 제기한다...결국 병증(病症)의 여러 국면과 윤리적 책임에 비추어 결정하는 것은 병자 또는 병자를 대변할 자격이 있는 사람 또는 의사의 양심에 속하는 문제다.”

“자기 자신의 생명을 마음대로 파괴할 수 없다면, 하물며 다른 사람의 생명도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은 더욱더 진실이다. 한 병자를 단순히 결정의 대상으로 삼아, 그 자신이 내리지 않는-또는 그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 자신이라면 실제로 승인하지 않을-그런 결정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의사들이나 가족들이 때로는 환자를 위하여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환자가 자신에게 적용될 치료 수단이나 방법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누구보다도 이런 처지에 있는 의사들과 그 밖의 사람들이 환자의 생명을 빼앗는 시도를 감행하는 것(make an attempt on the life of the patient)은 절대로 금지되어 있다.”

즉 의사는 꺼져가는 생명이라도 최선을 다해 진료에 임해야 하며, 환자의 치료가 의학적으로 더 이상 무용하다는 판단이 서더라도 환자의 의사에 반하여 치료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해서는 “환자의 상태와 예후에 대한 의사의 판단, 환자 또는 환자 가족의 자율적 결정 등에 대한 반복적인 확인이 요구된다. 연명치료 유보를 요구받은 의사는 그 요구가 환자의 존엄성을 침해하지는 않았는지를 판단해야 하며, 최종적인 판단은 성급하게 혼자 내리지 말고 병원윤리위원회 등에서 협의를 거칠 필요가 있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치료중단에 관한 자신의 의사를 미리 표명하는 ‘사전의료지시서’를 도입하는 문제도 신중해야 한다. 만약 환자가 인위적으로 죽음을 초래하는 수단을 ‘사전의료지시서’에 미리 요청한다면 이를 그대로 따라서는 안 된다. 가톨릭교회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지만 그것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무제한적 권리라고 보지 않는다. 자연적인 죽음에 때가 이르지 않았는데도, 소생 가능성이 별로 없거나 의식이 없다고 해서, 혹는 현재 상태가 너무 고통스럽다고 해서, 또는 경제적인 이유로 적절한 치료의 노력을 포기하고 자신의 생명을 중단시키겠다는 선택은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의 뜻에 어긋난다고 보는 것이다.

이동익 신부는 또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도 ‘사전의료지시서’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만을 절대시할 때 사전의료지시서가 안락사 지시서가 될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치료의 내용에서 볼 때,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금의 의료기술로서는 전혀 무의미한 것이 앞으로 1-2년 후 혹은 그 이후에는 매우 일반적인 치료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사전의료지시서’ 때문에 충분히 더 살 수 있는 환자를 합법적으로 죽게 만드는 우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영양공급은 연명치료에 속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더라도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기본적인 간호, 영양공급, 수혈, 주사, 청결유지 등은 연명치료가 아니라 통상적인 치료에 속하며 의료진이 이를 행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임을 강조한다.

환자에게 인공적으로라도 음식물을 투여하는 것은, 이것이 환자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 때에는 언제나 취하여야 할 정상적인 치료 부분에 속하는 것이다. 의료인들이 이러한 수단의 사용을 무분멸하게 중단한다면 이것이 사실상의 안락사가 될 수 있다.

특히 영양공급은 장기간 식물상태에 있는 환자의 경우라도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된다. 환자가 의식이 없더라도 수분과 영양분을 자연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면 계속해서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7년 이 문제에 대해 미국주교회의가 질문했을 때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바티칸 통신을 통해서 “영구 식물 인간 상태’에 있는 환자도 기본적인 인간 존엄성을 지닌 한 인격체이므로, 통상적이고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하며 그러한 치료에는 원칙적으로 인공적으로라도 물과 음식을 공급하는 것이 포함된다.”는 원칙을 확인하였고,

바티칸 통신은 다음과 같은 해설을 덧붙였다.

신앙교리성은 음식과 물의 투여가 ‘원칙적으로’ 도덕적 의무 사항이라고 진술하면서, 매우 외딴 지역이나 극빈의 상황에서 음식과 물의 인위적 공급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어느 누구도 불가능한 것을 강요할 수 없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용 가능한 [최소한의 치료를 제공할 의무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고, 가능하다면 생명 유지에 필요한 알맞은 수단을 확보해야 할 의무 또한 존재한다.

또한 합병증의 발생으로 환자가 음식과 음료를 섭취하지 못하여 그러한 공급이 아무 소용없게 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드문 경우지만 인공적인 영양과 수분 공급이 환자를 지나치게 힘들게 하거나, 그 수단을 사용할 때 합병증이 생기는 경우처럼 환자에게 심각한 신체적 불편을 야기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들에도, 일반적인 윤리 기준은 온전히 유효하게 남아 있다. 이 윤리 기준에 따르면 인공적인 수단을 통해서라도 물과 음식을 공급하는 일은 언제나 생명 보존을 위한 ‘자연적 수단’이지 ‘치료 요법’이 아니다.

따라서 아무리 ‘식물 인간 상태’가 장기간 지속된다 해도 이러한 수단의 사용은 ‘통상적이고 적절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말기 환자는 물론이고 영구적 식물 상태의 인간이라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한 물과 음식의 공급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가톨릭교회의 입장은 그리스도교의 인간관에 바탕을 둔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서의 인간의 존엄성 사상 때문이다. 인간은 그의 어떤 지성적 능력이나 특별한 자질 때문에 존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천부적인 존엄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식물상태의 환자에게 영양공급을 중단한다는 것은 그를 굶겨서 죽음에 이르게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으므로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이며 안락사에 해당한다고 본다.

 

4. 2009년 10월 13일 발표된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지침>의 문제점

1) 일반 연명치료와 특수 연명치료 구분 문제

가톨릭 윤리학계에서는 연명치료를 일반과 특수로 나누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 2009년 10월 13일 의료계가 발표한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지침>은 통상적 치료 행위에 해당하는 “관을 이용한 영양 공급, 수분·산소 공급, 체온 유지, 배변과 배뇨 도움, 진통제 투여, 욕창 예방, 일차 항생제 투여 등”을 일반 연명치료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은 연명치료 행위가 아니라 통상적인 치료라고 해야 한다. 가톨릭교회의 대표적인 생명윤리학자인 이동익 신부는 “연명치료라는 개념 자체가 예외적 혹은 특수한 치료”이므로 통상적인 치료를 일반 연명치료라는 이름으로 붙이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의료계의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지침>에서 말하는 일반 연명치료의 내용들은 통상적인 치료 행위로서 말기 환자의 경우라도 자연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것들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의료계의 지침에서는 ‘제1단계: 임종 환자 또는 뇌사 상태 환자’의 경우 일반 연명치료의 중단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데 “짧은 시간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임종 환자에게 영양공급도 중단할 수 있다는 문항은 소극적 안락사로서 남용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이동익 신부는 “예외적, 통상적의 구분은 의료 기술의 발달에 따라 그 종류와 범위가 바뀌는 개념”이므로 일반화하여 분류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부착은 보통 특수 연명치료의 방법으로 분류되지만 의사의 판단에 따라서는 일반적인 치료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일반적, 예외적 치료에 대한 구분을 짓는 것은 법률로 정할 일이라기보다 우선적으로 그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의 몫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판단”이며 “이러한 판단을 획일적으로 법률로 정한다는 것은 명백히 남용될 위험”이 있고 “결국 법률적으로 안락사를 용인하는 결과를 낳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며 법률 제정보다는 병원윤리위원회 등을 통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하였다.

2) 연명치료의 대상과 종류 문제

의료계는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지침>에서 연명치료의 대상으로 회복가능성이 없고 6개월 이상 지속되는 식물상태의 환자를 포함시키고, 지속적인 식물 상태의 인간과 의식이 없는 말기 환자를 같은 수준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식물 상태의 인간은 개개인마다 상태가 다르고 오진의 가능성과 회복 가능성도 있음을 고려할 때 연명치료의 중단이 환자가 치료될 기회를 박탈 할 수 있다. 오진으로 말미암아 식물 상태 환자에게 마땅히 해야 할 치료를 연명치료의 중단이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달 보도된 벨기에의 롬 하우번씨의 경우처럼 의식이 있어서 의사소통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23년간 식물인간으로 오진 받은 경우가 더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톨릭의 윤리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행하는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을 중단 가능한 연명치료의 종류에 포함시키는 것을 수용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의료행위는 자연적이지 못하고 지극히 인위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자연적인 죽음마저도 방해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동익 신부익 신부는 연명치료 중단 종류에 ‘혈액투석’을 포함시키는 것은 반대한다. 혈액투석은 예외적인 치료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통상적인 수단으로서 회복 불가능한 말기 암 환자에게 행해지는 치료 수단으로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특수 연명치료에 포함시키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한편 특수 연명치료 중단의 고려 사항으로 여전히 ‘가족들의 정신적 고통’과 ‘지출할 비용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든 것은 인간의 생명의 존엄과 가치를 가족의 편의와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하위에 가치로 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물론 가족들의 고통을 가볍게 여길 수 없겠지만 이런 조항은 생명경시풍조와 안락사 허용의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 대신 이 지침서가 지적한 것처럼 ‘완화의료에 대한 지원’ ‘사회보장제도의 강화’라는 사회 경제적 지원을 통해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고 환자의 가족이나 환자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을 제거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나가는 말

가톨릭교회는 자연적인 죽음을 수용한다는 의미에서 일시적인 생명만을 연장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환자와 의료진이 전문적인 판단과 양심 안에서 중단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인위적인 생명 단축인 안락사를 의도하지 않는다면 자연적인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시기에 이르러 환자와 가족에 대한 불필요한 고통을 덜어주고 자신의 죽음을 잘 정리하고 가족들과 친구들 앞에서 평화롭게 죽음을 맞도록 도와준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이라면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의 기준을 정하는 제도적인 장치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2009년 5월 세브란스 병원에서 있었던 김모 할머니의 인공호흡기 제거 사건이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소위 ‘존엄사’ 입법 문제로 불거진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불가침의 영역으로서의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자연적인 죽음의 수용으로서의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관점 보다는 가족들의 고통과 경제적인 어려움 등의 이유로 말기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키려는 ‘안락사’의 경향이 더 앞서지 않았는가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가톨릭교회가 바라보는 ‘존엄한 죽음’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 혹은 치료 가능성과 효율성을 잣대로 선택하는 죽음이 아니라, 고통마저도 수용하면서 신으로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으로서의 생명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거부하지 않고 인생의 한 부분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화해와 용서를 통해 이 세상에서의 삶을 잘 정리하고 평화롭게 맞이하는 죽음이다. 이런 가톨릭교회의 생명과 죽음에 대한 관점이 보편적인 가치로 우리 사회에 받아들여져서 인간 생명의 존엄, 신성성, 그리고 불가침성이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제도화 논의에 있어 중심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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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황청 신앙교리성, 「생명의 선물」, 서문, 5항(1987); 교황청 교리서위원회, 「가톨릭교회 교리서」2258항 (1992년 발간)

2) 요한바오로2세 회칙, 「생명의 복음」2항 참조.

3) 교황청 신앙교리성.「안락사에 관한 선언」. 결론.

4) 2009년 5월 세브란스 병원 김모 할머니 사건 이후 각종 언론 매체에서 이런 내용들이 거론되어 왔다.

5)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의료인 헌장」1995. 119항. 124항. 생명과 가정: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200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362, p367. 참조.

6) 요한바오로2세. 회칙.『생명의 복음』65항. 199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76.

7) 교황청 신앙교리성.「안락사에 관한 선언」1981. 4장 치료제 사용의 적정 균형.

 『생명과 가정: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200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246.

8)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의료인 헌장」1995. 119항. 120항. 제 사용의 적정 균형.

 『생명과 가정: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200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363~4. 이곳의 인용부호는

  요한바오로2세의 여러가지 연설들에 대한 인용을 표시하는 것이다.

9) Pius XII. Discorso ai medici. 1957. 11.24. 이동익. 『생명의 관리자』. 개정판. 서울: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6. p229. 재인용.

10) 이동익, “존엄사법 제정을 위한 입법공청회 토론문” 2009년 3월 4일. 「존엄사법 제정을 위한 입법

     공청회 자료집」. p54.

11) 교황청 신앙교리성.「안락사에 관한 선언」1981. 4장 치료제 사용의 적정 균형.

    『생명과 가정: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200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245.

12)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중환자와 임종자에 관한 윤리 문제」1981. p393. 생명과 가정: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200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한글 번역본은 ‘환자의 생명에 대하여 어떤 시도를 감행하는 것은

      절대로..’라고 오역이 되어있다.

13) 김중호·홍석영. 「말기 환자에 대한 연명 치료 유보의 윤리」p.13.www.bionest.or.kr

14) 이동익. 「신상진 의원의 존엄사 법안에 대한 의견」. http://cafe.naver.com/leedongik/1250.

15)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의료인 헌장」1995. 120항. 제 사용의 적정 균형. 『생명과 가정: 가톨릭 교회

      의 가르침』200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364.

16) “미국주교회의의 몇 가지 제기된 문제들에 관련하여 인공적인 영양 및 수분 공급에 대한 답변”.

      <바티칸 통신> (Vatican Information Service) 2007년 9월 16일자.

17) 상동.

18) 이동익, "종교인이 바라본 인간적 품위를 지닌 죽음: 치료 수단의 중단과 관련하여“ 「국립암센터

      심포지엄 2009 ”품위있는 죽음을 위한 사회적 합의“ 자료집」2009년 7월 30일. p47.

19) 상동.

20) 이동익, “존엄사법 제정을 위한 입법공청회 토론문” 2009년 3월 4일. 「존엄사법 제정을 위한 입법

      공청회 자료집」. p52~53참조.

21) 이동익, "종교인이 바라본 인간적 품위를 지닌 죽음: 치료 수단의 중단과 관련하여“ 「국립암센터

     심포지엄 2009 ”품위있는 죽음을 위한 사회적 합의“ 자료집」2009년 7월 30일. p47.

22) 상동.

23) 상동. p4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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