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갑시다] 생명 문화 건설을 위한 가톨릭의 사명

관리자 | 2009.10.13 10:27 | 조회 1578

"[생명의 문화] 생명 문화 건설을 위한 가톨릭의 사명"


교회 가르침 전할 효과적 방법 모색해야


▲ 박정우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필자는 '생명문화 건설'을 주제로 지난 8월 27~30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남동아시아 가톨릭대학연합(ASEAC CU) 17차 연례 회의에 참석했다. 남동아시아라는 범주에는 한국, 일본, 대만,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호주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필리핀을 제외하고는 가톨릭이 소수종교에 해당하는 국가들이기에 이 회의는 가톨릭계 대학이 겪는 어려움이나 전교지역에서 수행해야 할 사명에 있어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보와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국제행사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올해 회의 주제를 '생명문화 건설'로 정한 이유는 아마도 주최국 호주의 생명 운동이 다른 어느 곳보다 활발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결혼과 가정', 그리고 생명윤리에 대해 학문적 연구와 교육을 위해 1982년에 로마에 세우신 '요한 바오로 2세 대학원'은 각 대륙에 확산됐는데, 호주에는 2001년 멜버른에 설립됐다.
 
 당시 이 대학원을 추진한 멜버른대교구장은 현재 시드니대교구장이신 조지 펠 추기경님이었다. 펠 추기경님은 오랫동안 각종 연설과 글을 통해 생명,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을 뿐 아니라 배아연구를 허용하는 법을 제정하려는 의회에 강력히 항의하는 등 활발한 생명수호 활동의 공로로 2008년 1월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수여하는 '생명의 신비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펠 추기경님이 멜버른대교구와 시드니대교구에 세우신 '생명, 결혼, 가정 담당부서'는 각종 교육 자료와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호주 회의에서 던져진 질문은 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생명과학의 발달로 생명의 존엄성이 도전받고 있는 현대에서 가톨릭교회가, 특히 가톨릭 고등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가톨릭계 대학의 사명은 무엇이며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생명존중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가? 생명윤리를 다루는 기본 원리는 일반 윤리 원칙과 무엇이 다른가? 동남아시아와 같이 다양한 종교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보편적 생명의 문화를 함께 건설할 것인가?
 
 이런 주제를 중심으로 전문가들 발표를 듣고 교수들과 학생들이 그룹 별로 토론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문제점은 가톨릭 생명윤리가 이 지역에서 소수의 목소리이며 학교와 사회에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의 한 여학생은 "가톨릭이 소수인 일본 사회에서는 젊은이들 낙태가 만연하지만 생명윤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은 가톨릭 밖에 없다"며 더 적극적으로 일본사회에 가톨릭교회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태국에서 온 한 여학생은 학부 4년 동안 총 16번에 걸친 인성교육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가톨릭교회의 생명윤리와 영적이고 윤리적인 가치관을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면 학생들이 한 해 한 해 지적 성숙과 함께 영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 남학생은 강의 중에 인용된 교황회칙 등 윤리적 문제에 관한 교회 문헌들이 너무 어려워서 학생들이 그 내용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며 더 쉽게 풀어쓴 교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의 가톨릭대 성심교정의 마상윤 교수는 생명윤리를 비롯한 교회 가르침에 대해 교수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학생들에게 전달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교수들부터 교회 가르침을 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해 참가자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마지막 강의에서 생명윤리학자이자 시드니 보좌주교인 안토니 피셔 주교는 미국 죠지타운 대학이 주창한 생명윤리 4대 원칙들-자율성존중(autonomy), 선행(beneficence), 악행금지(non-maleficence), 정의(justice)-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이들 중 자율성존중과 선행의 원칙은 개인주의와 공리주의를 강조하는 서구적 문화적 편견의 반영으로 보편적 생명윤리의 원칙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원칙이 남용된다면 자율성을 행사할 수 없는 태아, 말기 환자 등을 제외시킬 위험이 있고, 환자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자율성)하거나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안락사(선행)도 인정하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생명윤리의 원칙은 이보다 더 근본적 가치와 진리를 바탕으로 이성적 반성을 수반해야 함을 강조했다.
 
 우리 한국사회는 다문화사회로 변모하고 있지만 아직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에 비해 문화적으로 이질적이지 않다. 그러나 낙태, 배아연구와 관련된 논쟁에서 드러난 것처럼 생명윤리를 비롯한 윤리적 가치관은 사회 계층, 종교 등에 따라 상당한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가톨릭교회가 어떻게 교회 가르침을 더 보편적이고 설득력 있게 전파해 이 땅에 생명의 문화를 건설해야 할지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이다.

 

[평화신문]   2009. 10. 4    10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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