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 배아 혹은 태아 대상 유전자진단과 인공 임신중절

관리자 | 2009.09.25 10:35 | 조회 1759

"[생명의 문화] 배아 혹은 태아 대상 유전자진단과 인공 임신중절"


유전자 진단보다 치료 개발 먼저


▲ 우재명 신부(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배아 혹은 태아 대상 유전자 진단과 인공 임신중절.'
 
 제목만 들어도 섬뜩하다. 그리고 왠지 어울리지 않는 제목 같다. 하지만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기에 문제제기 차원에서 필자의 생각을 나누고 싶다.
 
 유전자 진단이란 인간 DNA 내에 암호화되어 있는 유전자에 대한 비밀을 알아내는 의료기술로, 이를 통해 특정 인간의 DNA 염기서열에 있는 변이를 분석해 질병을 예측하거나 진단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게놈프로젝트 완성 이후, 유전자 진단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해 신생아 대상 유전자 진단, 성인대상 유전자 진단 등 다양하게 행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착상 전 혹은 착상 후 유전자 진단을 통해 배아 혹은 태아에 대한 유전자결함 여부를 미리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유전자 진단을 통해 유전자 결함 여부를 알게 됐더라도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서도 유전자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현재 치료가 성공적으로 이뤄진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유전자 진단을 통해 배아 혹은 태아의 유전자 결함 사실을 알게 된 산모나 그의 가족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많은 경우 인공 임신 중절 수술을 선택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현행 모자보건법 14조 1항에서는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유전학적 신체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 임신한 날로부터 24주까지 인공 임신 중절 수술을 허용하고 있지 않는가.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 7월 30일 보도 자료를 통해 시투룰린혈증(Citrullinemia) 등 76종의 유전질환을 새로이 배아 또는 태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진단(검사)을 할 수 있는 유전질환으로 지정, 고시했다.
 
 하지만 이미 기존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 및 같은 법 시행령 '별표 1의2'규정에서는 근이영양증 등 63종의 유전질환에 대한 유전자 진단(검사)을 허용하고 있기에 이를 합하면 모두 139종의 유전질환에 대한 진단을 허용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전자 진단은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 배아 혹은 태아의 유전자 결함 여부를 미리 예측해 유전자 결함이 있는 경우 배아 혹은 태아 상태에서 치료함으로써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치료를 위한 배아 혹은 태아 대상 유전자 진단은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문제는 현대 유전학의 발전으로 많은 종류의 유전자 진단이 가능하게 된 반면, 유전자치료가 가능한 것은 한 건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보건복지가족부의 배아 혹은 태아 대상 유전자 진단 항목의 확대 허용은 인공 임신 중절의 기회만을 증대시킬 수 있는 섣부른 조치라고 생각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생명의 복음」(1995년)에서 최근 우리사회의 태아 진단이 낙태를 권장하고 시술해 주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음을 직시하면서 이러한 시도가 여론에 의해 정당화되어 우생학적 낙태의 형태를 띠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여론은 "일정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생명만을 받아들이고, 어떤 제한이나, 장애나 질병으로 손상을 입은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는 사고에 근거하고 있다.
 
 이번에 새로 허용한 유전자 진단 항목을 살펴보면, 어떤 것은 산모의 임신 기간 중에 사망할 수 있는 위급한 유전질환도 있지만 유전성 청각장애 등 유전적 소인/장애정도가 약하거나 액틴-네말린근육병증 등과 같이 성인기 이후에 사망할 수 있는 질환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한 가지 고려해야 하는 사항은, 유전질환은 다른 일반질병과 달라서 유전자 결함이 있다고 해서 모두 유전병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감기 바이러스가 인체를 감염시키면 대개의 경우 빠른 시간 내에 감기 증세를 일으킨다.
 
 하지만 유전자 결함의 경우, 어떤 사람이 유전자 진단 결과 유전자 결함이 발견됐다고 해서 모두 유전질환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일생동안 유전질환이 발병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유전자 진단 결과에 따른 섣부른 인공 임신중절은 살아야만 되는 생명을 고의로 해치는 경우가 될 수 있다.
 
 배아 혹은 태아 대상의 유전자 진단은 "아기와 어머니에게 부적절한 위험을 가하지 않을 때, 그리고 그것이 초기 치료를 가능하게 하려는 것일 때, 그리고 나아가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 대한 사실을 알고 평온하게 받아들이는데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일 때, 윤리적으로 정당한 것이 된다"(「생명의 복음」 63항).
 
 유전자 진단 허용에 앞서 유전자 치료 개발부터 나서야 한다.
 
[평화신문] 2009. 9. 6    10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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