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존엄사’ 논란 관전법"

관리자 | 2009.09.10 11:20 | 조회 1885
 

 

"[생명의 문화]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존엄사’ 논란 관전법"


 
▲ 구영모 교수(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존엄사, 죽음이 미화됐을 뿐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 이미 이뤄지는 현실

 2월 15일자 이 칼럼에서 필자는 만약 우리 사회에 '존엄사' 법이 있어야 한다면 그 입법의 첫걸음은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수용하는 선에서 멈추는 게 옳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 후 가톨릭교회가 존엄사 법 제정 반대 입장을 공식 천명했기에 이제 신자된 입장에서 존엄사 입법을 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존엄사 입법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는 현행 제도만으로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3월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이 주최한 '존엄사법 제정을 위한 입법 공청회'에 지정토론자로 나선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장 겸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이동익 신부는 "죽음의 시간만을 연장하는 시기가 될 때 이런 기계적 장치를 쓰지 않겠다는 것은 이미 우리나라 종합병원들 안에서 다 이뤄지고 있는 현실"임을 지적했다.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6월 2일 발표한 '강론 자료 : 존엄사 및 존엄사법 제정 논란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 '존엄사'라는 용어는 환자가 고통 없이 존엄과 품위를 지니고 맞이하는 죽음이라는 미화된 이미지를 풍기지만 실제로는 '안락사'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교회는 이 용어 사용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교회는 죽음에 임박한 환자에게 균형을 넘어서는 과도한 치료, 죽음의 시간만을 연장시키는 의료집착적 행위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로서 양심상 거부되거나 중단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톨릭교회는 지난 5월 21일 세브란스병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윤리적으로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던 것이다.
 
 대법원 판결 이튿날 언론 매체들은 대법원이 그동안 관용적으로 써온 '존엄사'라는 용어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보도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필자가 검토한 대법원 판결문 어디에도 '존엄사'라는 표현은 없었다. 대신 판결문이 반복해서 사용한 용어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였다.
 
 말기 환자의 죽음을 고의적으로 의도하는 행위라면 존엄사가 아니라 안락사로 봄이 마땅하다. 말기 환자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적 간호 행위들(수분 공급, 영양 공급, 마사지, 일상적 투약)은 멈추지 말고 계속돼야 한다. 이러한 행위들이 중단된다면 그때는 소극적 안락사로 부르는 것이 옳다. 연명치료 중단 조건들을 밝힌 대법원이 소극적 안락사마저 허용한 것은 아니다.
 
 대법원 판결에 맞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환자의 상태에 따라 3단계로 나뉜 연명치료 중단 기준을 내놓은 점이나 지난 6월 18일 서울대병원이 '사전 의료 지시서'를 공식화한 점은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사들 중에는 입법을 원하는 의견이 여전히 다수를 차지한다. 올해 전국 의사 84명을 대상으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의견을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78%가 판례보다는 법률 제정을 원한다는 답을 했다(주간 청년의사 5월 11일 8면).
 
 대법관 출신인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불만을 표시하며, 판결은 구체적 사안에서 구체적 여러 가지 조건들을 판단해 정할 수 있으나, 법률이 이러한 구체적 사안에서 나올 구체적 조건들을 미리 일반화해서 법률에 정해 놓는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므로 존엄사에 관한 한 입법 문제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공개했다.
 
 6월 23일 오전 세브란스 병원에선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였던 김 모 할머니의 인공호흡기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거됐다. 이로써 1년 넘게 끌어온 김 할머니의 법정 사례는 마침표를 찍는 듯 보였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호흡기 없이도 수분과 영양분 공급만으로 일주일 넘게 생존을 지속하고 있는 김 할머니를 보며 우리 사회는 존엄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애당초 재판부에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의 제거뿐만 아니라 수분과 영양 공급, 정상적 간호, 일상적 투약 등의 치료 행위를 일절 중단할 것을 요청했던 환자 가족과 원고측 변호인들은 당황한 기색이다. 김 할머니가 사망 선고를 받고나면 곧이어 사체 부검을 시행하려던 그들의 계획에도 제동이 걸렸다.
 
 존엄사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간헐적으로 수면 위로 오르내리기를 반복할 것이다. 바야흐로 제2라운드로 접어든 존엄사 논란. 가톨릭 신자인 우리들은 정확한 개념 이해와 가치 판단을 겸비하고 이 논란의 전개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09. 07. 05        10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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