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 실용주의사회와 생명윤리법

관리자 | 2010.06.08 16:58 | 조회 1318

[생명의 문화] 실용주의사회와 생명윤리법

 

우재명 신부(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부쩍 '실용' '실리'라는 용어들이 자주 사용된다. 인터넷 찾기 기능에서 '실용'이라는 단어를 치면, '실용외교', '실용영어', '실용화기술', '실용음악', 심지어는 '실용인재'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용어들이 등장한다. 그만큼 우리 의식에는 실용이라는 이념이 깊이 새겨져 있다는 의미이다.

 

 몇 년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자국 농민들의 경제적 희생을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자동차, 전자제품 등의 수출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것이 더 실용적이라는 주장들이 있었는가 하면, 무리하게 진행되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미국과의 쇠고기 통상협정도 '실리'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실용, 실리라는 것이 장기적 차원에서 볼 때 인간 행복을 늘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용주의는 특히 미국 철학정신을 반영하는 사조로서 실제적 결과에 우선성을 둔다. 실용성을 의미있는 판단기준으로 행사하는 실용주의는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자칫 생명, 사랑 등과 같은 기본선(ba sic goods)들을 뒷전으로 물러나게 하는 모순을 범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난 2004년 황우석 박사 연구가 사회문제로 부상했을 때, 옹호자들은 배아연구가 생명권을 침해하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하더라도 국익이라는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리는 중요하나 실리를 위해서는 포기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생명의 복음」(1995)에서 강력한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경향성에 힘입은 '죽음의 문화'로부터 인류의 생명가치가 심하게 위협받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높은 효용성을 발휘하는 사회를 이상사회로 부추기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생명가치는 약화되면서 생명이 효용성의 수단으로 대체되는 모순이 빚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일반화된 여론은 배아연구, 낙태, 안락사 등과 같은 반생명적 행위를 범죄로 여기기보다는 오히려 '권리'의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호도하기도 한다. 더욱이 사회의 양심이 돼야 하는 대중매체조차 여기에 편승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현대 실용주의 사고방식이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이하 생명윤리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사실 생명윤리법은 법의 명칭 자체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생명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법이 돼야만 한다. 하지만 법이 생명가치를 보호하기 보다는 오히려 '실용' 혹은 '효용성'이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수단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생명이 이미 시작되어 성장의 과정을 가고 있는 배아(잔여배아)를 연구 수단으로 허용하는가 하면, 난자제공자에게 실비를 제공하도록 허용하는 항목도 마찬가지이다. 생명윤리법에 의하면, 배아연구를 위한 난자제공은 불법이다. 반면, 임신을 목적으로 한 난자제공은 허용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 황우석 박사의 체세포배아연구에서 난자제공에 따른 많은 생명문제들을 보았다. 당시 미즈메디병원의 유상거래에 의한 난자 매매 공여자가 63명이었으며, 75건으로 채취된 난자는 1336개였고, 매매 공여자의 평균 나이는 24.4살이었다. 과학연구의 효용성 이름으로 우리 사회는 아직 이러한 가능성을 허용해야 하는가.

 

 유전자검사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배아 혹은 태아에 대한 유전자치료는 세계적으로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배아 혹은 태아에 대한 유전자치료가 가능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명윤리법은 지난 2009년부터 139종의 유전자진단을 허용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배아 혹은 태아에 대한 유전자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유전자진단의 허용은 결국 낙태 가능성만을 확장시켜주는 결과가 된다. 어떤 이는 유전자치료가 불가능한 배아나 태아를 미리 선별해 제거하는 것이 사회 효용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회 효용성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돼야 하는가.

 

 현재 정부는 생명윤리법 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존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 못한 인간대상 연구 및 인체유래물에 관한 연구에 대한 법적 지침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법이 어떻게 사회 효용성을 증대시킬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생명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할 것인지가 돼야 할 것이다.

 

 생명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기본적 가치이며 상위 가치이다. 생명이 실용의 이름으로 양보됐을 때 그에 따르는 해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 과학과 기술은 생명에 봉사하는 것이 돼야 한다. 생명윤리법은 과학과 기술이 생명에 봉사할 수 있도록 방향키 역할을 해야 한다.

 

 

평화신문 [1068호][201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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