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 다른 생명체도 존중하자

관리자 | 2010.06.08 16:55 | 조회 1462

[생명의 문화] 다른 생명체도 존중하자

 

진교훈 교수(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인간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인간 아닌 다른 생명체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배려를 하지 않고 있다.

 

 이 세상에 홀로 있는 생명체는 없다.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와 연관되어 있다. 어떤 생명체도 또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것은 먹이사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서로 서로 주고받게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상호관계가 헝클어지거나 깨지면 모든 생물체는 함께 망가진다. 사람도 물론이다.

 

 인간은 인간 생명의 터전인 자연을 온전하게 보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역경(易經)은 "만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천성을 그대로 실현시켜 그 생명 발전을 끊임없이 존속하게 하는 것이 도의(道義)가 할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의 희생으로 살 수밖에 없다면, 인간도 다른 생명체를 위해 자기 불이익과 희생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절제할 줄 아는 살림살이에서 우리를 살리고 자연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실천할 수 있다.

 

 인간은 그가 도울 수 있는 모든 생명체를 도와주고 또 어떤 생명체에도 해가 되는 일을 삼가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를 실천하도록 간청할 때에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윤리적일 수 있다. 윤리적 인간은 이 생명 또는 저 생명이 얼마만큼이나 값이 나가는가를 묻지 않으며, 또 그것을 얼마만큼이나 지각할 수 있는가를 묻지도 않는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명체는 그 자체로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생명 그 자체는 거룩한 것이다.

 그래서 슈바이처(A. Schwe itzer)는 "윤리학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지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고 말했고, 중국의 팡(方東美; Thome Fang)은 "도덕의 기초는 가치가 흠뻑 배어 있는 생명 속에 있으며, 도덕은 생명 가치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말했다. 팡은 더 나가서 "우리는 단지 생명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야성적 동물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부단하게 생명의 의의를 드높이고 생명 가치를 증진시켜 머무르게 해야 한다. 우리는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그의 깊은 뜻을 우리는 성찰해 봐야 할 것이다.

 

 생명의 아름다움을 누릴 줄 알면, 누구나 생명을 존중하게 되고 생명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다. 우리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感賞; 마음에 깊이 느껴 찬미한다는 뜻, 작품을 단지 알고 평가하는 감상(鑑賞)과는 다른 한 차원 높은 경지)하면서 생명의 신비를 느끼며, 생명의 존귀함을 배우고, 우리의 생존을 더욱 감사해야 할 것이다.

 

 생명의 고귀함을 우러러 볼 줄 아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을 감히 훼손시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에 대한 미학적 감상(感賞) 능력의 교육이야말로 생명 보전의 지름길이라고 믿을 수 있다.

 

 우리는 생명의 신비를 논리적 정확성에 맞도록 합리적으로 정초시킬 수 없다. 그러나 생명이 자기에게로 향해 부르는 소리에 대해 둔감할 수 없는 사람에게 생명 존중은 자명한 것이다.

 

 우리는 동방의 전통산수화에서 생명에 대한 기쁨을 들여다볼 수 있고, 숲속에서 생동기운(生動氣韻)하는 기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동방의 고대예술가는 그 자신이 느낀 생명정신을 자연에 이입시켜 자연을 숭고한 생명의 기틀로 감화시켜 왔다.

 

 우리 겨레가 중시해 온 인정은 측은지심의 발로이다. 우리 조상은 그렇게도 가난하게 살면서도, 추운 겨울이 되면 소가 추워할까봐 소에게 따뜻한 거적을 입혀주고, 쇠죽을 끓여 주고, 까치밥도 남겨 주고, 미물에게도 먹을 것을 나눠 주기 위해 고수레를 했다. 우리 조상은 동물보호와 식물보호에 대한 아름다운 금기어(禁忌語)들을 많이 남겨주었다.

 

 우리가 생명의 아름다움을 체득할 수 있을 때, 창조적 생명정신을 예술적 표현으로 널리 알릴 수 있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뭇 생명을 존중하도록 감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찬탄해 마지않았던 박지홍 화백의 '비리(飛鯉)'(비약하는 잉어,1968년 작) 그림을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은 이 말의 뜻을 감득(感得)할 것이다. 다른 생명체도 존중하자.

 

 

평화신문 [1066호][2010.05.02]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