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회복

관리자 | 2011.10.06 11:32 | 조회 1149

[생명의 문화]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회복

 

 

진교훈(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환자들은 의사에게 높은 수준의 진료를 받기 원한다. 오늘날 의사들은 풍부한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다. 병원들은 더욱더 확실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고가의 최첨단 의료기기를 경쟁적으로 설치하고 있다. 각종 의료기기의 부단한 개발은 놀랍기 그지없다. 나날이 성능이 우수한 의약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의사들은 현대 의료기술 발달에 의거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환자들의 간절한 소망을 잘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의료현장에서 보면, 의사는 의사대로, 환자는 환자대로 현재의 의료환경이나 진료상황에 대해 만족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환자와 그 보호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의료보험, 병가(病暇) 등 많은 혜택을 받고 있음에도 병원과 의사들을 신뢰하지 않고 불만을 많이 갖고 있다. 그 불만 중 어떤 것은 환자의 오해와 선입견, 성급한 과욕에 기인하는 것도 분명히 있어 보이지만, 의사에게도 상당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우리나라 의료현장에서 의사도 환자도 의료 환경이나 진료상황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의료분쟁과 의료 소송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고, 그래서 환자가 치료에 협력하지 않는다면, 의사는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기 어렵다.

 의사도 의사 나름대로 불만이 있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과도한 요구에 대한 부담, 단시간 내에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많은 환자를 진료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돼 있는 병원사정 등으로 의사들은 심신이 피로하고 도무지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없다는 불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의료 환경이 좋아지면 환자도 의사도 불만이 사라지고, 환자들은 의사를 신뢰할 것인가? 인간관계는 어느 한 쪽만의 노력으로 신뢰가 이뤄지기는 어렵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처럼, 서로가 상대방 처지를 바꿔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복음서에서 "남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마태 7,12)는 말씀은 인간관계에서 누구나 지켜야 할 황금률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의사는 환자의 처지에서, 또 환자는 의사의 처지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상대방을 배려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의사와 환자 사이 갈등은 해소되고 의사와 환자는 서로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현장에서는 의사가 환자보다 더 우월한 처지에 있기에, 우리는 고통과 두려움으로 의사를 찾아가는 환자에게 의사가 먼저 신뢰감을 주려고 노력할 것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의사는 어떻게 환자로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

 의료윤리교과서들은 이와 관련해 공통적으로 의사의 의무에 대해 △의사는 환자에게 정직해야 하며 △환자에게 늘 신중함과 예의 바른 태도를 보여야 하며 △환자와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술을 연마해야 하며 △환자의 인격을 존중해야 하며 △진료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환자의 질병상태나 사생활에 관해 비밀을 지켜야 한다 등을 강조한다.

 이러한 의사의 도덕적 의무는 바로 환자의 권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환자의 권리란 환자가 의사에게서 인격체로 존중받으며, 진단과 치료의 전 과정에 참여해 의사와 동반자적 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의사는 전 진료과정에 대해 환자에게 그 내용을 가능한 자세히 설명해줘야 하며, 이를 근거로 특히 환자에게 정신적ㆍ물질적 부담을 줄 수 있는 진단이나 치료를 결정할 때, 충분한 설명을 한 후 치료에 대한 환자의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의사는 진료방향이 결정되면, 그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 환자나 보호자에게 진료 내용과 방법의 이로운 점뿐만 아니라 위험한 점과 부작용과 예상되는 결과, 비용 등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줘야하고 이를 근거로 환자에게서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환자의 권리인 '사전 고지 동의'(informed consent)는 의사의 의무이며 의사에 대한 신뢰의 시발점이다. 더 나아가 의사가 불쌍한 환자에게 측은지심을 발휘한다면 의사는 신뢰를 넘어 존경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환자도 의사의 지시에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평화신문]    1114호    2011.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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