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 문화] 정의와 생명존중

관리자 | 2011.07.26 11:17 | 조회 1461

[생명 문화] 정의와 생명존중

신승환 교수(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가톨릭대 철학과)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70만부 가깝게 판매됐다고 해서 화제다. 철학 저서가 1000여권 정도 팔리면 성공했다고 말할 정도로 열악한 독서 환경에서 가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숫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런 현상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성 판단이 난무하고 있다. 어느 판단이 옳은지 모르지만, 어떤 경우라도 우리 사회에서 공공성이나 정의에 대한 바람이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사실 며칠만이라도 신문을 훑어보면 우리 사회의 불의와 인간에 대한 무시, 생명을 너무도 우습게 여기는 풍조에 개탄을 금하지 못할 것이다. 용산 철거민에 대한 강압적 퇴거로 일어난 퇴행적 모습은 물론이고, 수시로 일어나는 인권침해,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과 급격히 늘어날 뿐 아니라 더욱 열악해지는 비정규직, 개발 위주의 정책 때문에 파괴되는 생태계 등 어느 한 순간이라도 정의가 실현되고 인간의 생명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법을 지키고 공정사회와 정의로운 공동체를 위해 권한을 위임받은 곳에서 더 심하게 불의한 현상이 발견되고 있지 않은가. 민간인 불법 사찰과 양천경찰서 사건, 법을 지킨다는 검찰이 저지르는 탈법과 스폰서 검사 스캔들, 인권위원회 사건 등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생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퇴행적 사건들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더욱이 무자비한 대북정책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전쟁에 대한 위기감이 극대화되고 있다.

 지난 5일 인권주일을 맞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이런 현실을 개탄하면서,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 자연환경 보존과 공동선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역설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사람의 구원과 생명의 가치 수호에 있기에, 또한 이 세계에 하느님 나라를 재현하기 위해 일해야 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너무도 당연한 담화다. 그런 관점에서 샌델의 저서가 불러일으킨 현상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재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사실 이런 지적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만연한 이 세계, 과학기술문명이 흘러넘치지만 물신주의가 과잉으로 치닫는 문화를 강력히 비판하지 않았던가. 생명과 평화, 정의와 사랑을 징표로 드러내야 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죽음의 문화에 대해 비판하고 이를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이 끊임없이 투쟁한 것도 정의였지 않은가. 정의와 사랑은 성경이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원리이다.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을 살리려는 노력은 다만 생물학적 목숨에 대한 것일 수 없다. 생명은 생물학적이기도 하지만, 인간 생명은 그 이상의 영역을 필요로 한다. 우리 생명은 삶의 지평에서 이뤄지며, 정의로움과 사랑, 평화가 사라지고 그 의미의 세계가 훼손될 때 결코 올바르게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은 목숨이며 삶이면서, 의미이며 정의며 평화와 사랑이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의 가치를 지킨다고 말한다면 불의한 세계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스스로 모순을 범하는 것이며,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해야 할 일을 아름다운 말로 치장하는 거짓된 행동일 뿐이다.

 정의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 문화가 과잉으로 작동하며 과학기술과 정치적 맥락이 복잡하게 얽혀진 사회에서 정의란 단순히 분배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동체주의를 대표하는 샌델 역시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의 입장에 반대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의무와 연대, 공동선을 지키고 키워나갈 덕목의 실천에서 정의의 의미를 찾고 있다.

 어떤 경우라도 경제와 성장, 더 많은 풍요로움과 외적 성공을 위해 생명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인간의 삶이 부서지거나 희생돼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가 지닌 지나친 성공위주의 삶과 물질적 풍요로움에 치우쳐진 문화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누가 할 것인가. 그대와 나, 우리가 하는 것이다. 언제 하는가. 지금 당장, 바로 우리가 발 딛고 선 지금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다.

 하느님 얼굴을 타고난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만큼의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그냥 말이 아니다. 아니 그냥 말일 수 없는 것이다. 어떤 가치, 어떤 신념과 이념도 사람의 존재를 무너뜨리거나, 그 존재 근거를 부정한다면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며, 부정돼야하는 것이다.

 생명은 목숨이며 삶이다. 생명은 의미이며 가치이고, 평화이며 정의이다. 정의 없이 생명은 생명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생명을 존중한다면, 삶을 파괴하지 말라. 생명을 지키겠다면 삶과 존재를 지켜야 한다. "평화를 원한다면, 네 삶과 네 자신을 바꾸어라." 존경하는 요한 23세 교황님 말씀이다.

평화신문 2010. 12. 19   [10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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