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 임종자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

관리자 | 2011.07.19 13:42 | 조회 1245

[생명의 문화] 임종자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

 

지영현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부국장)


죽음을 앞둔 임종자에게 죽음이란 바로 불가피(不可避)하게 자신이 겪어야 하는 가장 두려운 사건이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임종자는 불안하고 두려운 가운데, 그리고 분노하는 가운데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하지만 짧은 시간마저도 낭비해 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사목자는 죽음을 앞둔 당사자가 그동안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던 간에 그에게 지금 주어진 이 시간들을 소중하고 보람있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 이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하느님 나라, 곧 구원에 대한 희망을 꿈꾸며 하느님 사랑을 체험해 갈 수 있도록 배려해 줘야 한다.

 사목자는 임종자들의 고통을 함께 하며 그들의 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사목자는 고통 중에 있는 임종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그들이 외치는 '고통의 소리'를 경청함으로써 그들을 가장 잘 돌보게 된다.

 사목자는 임종자의 투병에 참여하고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문제를 식별하고, 이야기를 듣는다. 인간성의 한계 속에서 사목자는 사람들을 고통의 신비에 참여시킨다.

 또 임종자들은 사목자를 향해 자신의 내면 깊숙이 숨겨둔 이야기를 꺼내 펼쳐놓는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이야기 할 수 없었던, 자신만이 아는 까마득히 깊은 곳에 묻어둔 비밀스런 이야기를 사목자에게 공개한다. 사목자는 그들의 고독 어린 목소리를 성심 성의껏 귀담아 듣고 그 자신을 인정하며 공감해줘야 한다. 이때 임종자들은 얽혔던 매듭이 풀리듯이 "휴"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음이 가벼워짐을 표현한다.

 성심껏 경청하는 사목자들로부터 임종자들은 위로를 받으며 '내가 외치는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음에 감사하고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사회 심리적 소외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그들은 부활의 신비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사목자의 중대한 소명 중 하나는 인간 이야기와 하느님 이야기를 부단히 연결시키는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랑과 연민의 정으로 충만한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기억(ANAMNESIS)하면서 하느님의 위대하신 역사에 참여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회고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억은 참여를 의미한다.

 사목자들은 임종자들의 개별적이고 고유한 삶 속에 개입함으로써 바로 지금 여기에 사랑의 하느님이 당신과 함께 있음을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임종자들과 함께 하느님의 구원여정에 동행할 채비를 해야 한다. 임종자들과 거리를 두지 않고 또 다른 나, 저 자리에 누워있을 가능성을 지닌 나와 동일시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고통스러워할 때 함께 고통 받고 그들이 눈물을 흘릴 때 함께 눈물을 흘리며, 그들에게 말벗이 필요하면 말벗이 돼 줘야 한다. 사목자는 언제나 그들 곁에 서 있는다. 그들 곁에 서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보이는 표지로서 사목자는 존재한다. 임종자들은 사목자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며 그리스도께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베풀어주시는 그 무한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다.

 모든 사목은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심판과 자비를 떠나서는 무(無)라는 확신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따라서 사목적 과제는, 구체적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 즉, 죽음 앞에 서서 고통받고 슬픔에 젖어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끊임없는 구속 사업의 일부로서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과 체험을 통해 임종자들의 고통이 치유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세계와 하느님 간에 부서진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일치를 창조해 내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목자의 역할이 있다. 거기서는 지금까지 다만 파괴적인 것으로만 보이던 기억이 이제는 구속사건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임종자들은 사목자와 만남을 통해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난다. 사목자들은 임종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이 하느님께 나아가게 하는 인도자이다.

 이렇게 하느님께로 나아가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뤄지고 이 만남을 통해 임종자들은 위안을 받으며 이 위안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존재 자체가 하느님 은총을 가득히 받고 있는 존재임을 상기하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치유자이신 하느님과의 내면 깊숙한 만남이 가능해진다. 그들은 이제 고통의 의미를 깨닫고 수용하며 새로운 희망을 얻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정확히 깨닫게 된다.

 이러한 사목적 배려는 유일회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죽음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하고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게 한다. 또한 선물로 얻은 나의 생명에 대한 가치와 그 존엄성을 알게 되고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도록 나를 변화시킨다.

 

평화신문   2010. 11. 14   [10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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