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 위령성월에 생각하는 죽음

관리자 | 2010.11.08 14:52 | 조회 1483

[생명의 문화] 위령성월에 생각하는 죽음

평화신문[1091호][2010.11.07]

 

지영현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부국장)

 

11월은 위령성월이다. 우리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기이다. 위령성월을 지내며 삶과 죽음에 대해 사색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존귀한 생명에 감사드릴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옛부터 철학과 종교의 중요한 주제였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을 바라보면서 인간들 스스로가 갖게 된 가장 확실한 사실은 지금 '나'는 존재하고 있으며, 그 '나'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다. 이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물론 살아있는 그 누구도 죽음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살아있던 모든 이가 결국 죽어가는 모습에서 얻게 된 진리인 것이다. 이렇게 죽음은 인간 모두를 관통하는 사건이다.

 

 죽음은 단순히 삶의 종말이나 끝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한 가운데 존재한다. 인간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질병, 실패, 이별, 은퇴, 노화, 기아 등은 부분적이고 간접적인 죽음의 모습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일상에서 죽음을 경험하며 마침내 궁극적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교는 전통적으로 '죄 때문에 인간에게 죽음이 찾아오게 됐다'고 설명한다. 이 명제는 궁극적으로 영원히 살아계시고 생명을 부여하시는 하느님이 악과 생명의 적으로서 죽음의 원조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인간의 죽음은 자기 존재의 끝남도 아니고, 한 존재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옮겨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영원의 시작이다. 죽음은 인간이 자유로이 자신의 현 존재를 전체적으로 완성하는 최고의 행위이다. 인간은 단 한 번이자 마지막으로 종결되는 생물학적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최종적 결정을 성취한다.

 

 죽음은 삶을 마무리하고 완성이냐, 실패냐를 마지막으로 결단하는 교차점이며 유한성에서 영원성으로, 초월로, 시간에서 영원으로 넘어가는 교차점이다. 또한 인간은 신이 아니라 피조물이기에 죽음으로부터 위협을 받는다. 죽음을 통해서 인간의 본질이 피조물임이 드러난다. 즉 죽음은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징표이다.

 

 인간이 자기의 생명을 하느님에게서 선물과 과제로 받아들이고 하느님 안에서 이웃 인간들에게 봉사하며 살아가면 죽음은 희망의 장으로, 하느님의 영광 안으로 이전하는 복된 것으로 느낄 수 있다. 즉 이러한 사람은 이미 '죽음을 벗어나 생명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새로운 죽음의 체험은 신앙과 희망과 사랑의 결실이다. 특히 절대적 어둠이며 절망이며, 삶의 단절로 체험되는 죽음이 최종적인 것이 아니라 희망의 결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므로 죽음의 참된 극복은 우리의 삶으로부터 죽음을 제거함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지양이 불가능한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죽음을 획득할 권리가 아니라 맞이할 권리가 있다.

 한 인간이 자신의 지상 생애를 끝낼 때에 그 자체에 있어서나 그 주위 세계 특히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나 자신의 인격적 품위를 될 수 있는 대로 온전하고 흠없이 갖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오늘날 어떤 치료를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과 이로 말미암아 환자에게 강요되는 전적인 격리라는 현실에서 인격적이고 품위있는 죽음을 맞이하려는 것은 우리의 소망을 넘어선 당위이다.

 

 임종의 순간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과 인간의 존엄성 모두를 지켜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죽을 권리'를 말하며 마치 자기 자신의 손에 의해 혹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서 죽음을 획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인간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존엄성을 지니고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할 권리'만이 있을 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간, 특별히 죽음 앞에 선 인간에게서 생명권이란 '인간적인 그리고 그리스도교적인 존엄성을 지니고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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