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 생명존중의 문화를 위하여

관리자 | 2010.11.08 14:46 | 조회 1532

[생명의 문화] 생명존중의 문화를 위하여

평화신문[1089호][2010.10.24]

 

신승환 교수(가톨릭대 철학과,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행복전도사로 유명했던 부부가 동반 자살한 사건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어떤 경우라도 삶의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그렇게 크게 외치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자살률에서 있어서 만큼은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 문화 전반에 걸쳐 생명의 고귀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조금만 돌아봐도 분명하게 느껴질 것이다. 죽음의 문화란 말이 결코 낯설지가 않다.

 

 2005년 이른바 '황우석 사태'는 학문 연구 뿐 아니라 생명과학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커다란 계기가 됐다. 이제는 논문과 연구 결과 조작, 연구비와 정부 지원을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비윤리적 행태가 저질러졌는지 명확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열광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국내 최초로 2007년 11월 가톨릭대학교에 생명대학원을 개설하기로 결정하고 이듬해 첫 대학원생을 받게 됐다.

 

 또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와 생명을 살리는 연구를 위한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대교구는 생명위원회를 결성했다. 이후 생명학교를 개설하고 생명의 신비상을 제정하는 등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생명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고, 죽음의 문화를 넘어 생명을 살리고 존중하는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이 넓혀진 것이 사실이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생명존중 정신과 생명의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생명존중 기금'을 발족했다. 이 기금은 자선, 교육, 연구, 진료의 4개 분야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생명문화를 위해 이런 움직임의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생명위원회는 생명문화를 위한 '인재 양성 기금'을 발족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은 사실 복음 정신에 비춰볼 때 특별한 활동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왜냐면 복음 정신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결국 생명의 복음이며, 교회 역시 생명의 기쁜 소식을 선언하고 증거하는 모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생명을 살리며 존중하는 문화를 위한 노력, 특히 생명을 위한 학문적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학문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노력과 학문적 연구는 이를 뒷받침하고 이를 전파하는 이들이 함께할 때 한국 사회 전체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교 가르침이 주목받지 못하는 현대 문화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이런 노력과 지원을 강조하는 것은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존중 문화와 생명을 살리는 학문적 연구는 다만 교회 고유한 과제이거나 또는 여기에 종사하는 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유전자에 대한 연구 결과와 그를 활용한 기술공학의 발전은 실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진화생물학에 근거한 여러 학문들은 신앙을 비롯한 우리의 정신적 전통과 문화 전부를 물질적 영역으로 환원시킬 수도 있는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유전자를 변형하고 조작한 식품(GMO)은 옥수수, 두부 등에서 보듯이 우리 식탁을 차지하고 있다. 육류 중심의 식단이 보편화돼 소, 돼지, 닭 등의 살아있는 생명체를 마치 기계처럼 사육하는 가축농장, 자연과 생태계를 다만 일순간의 이익을 위해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토목 건설 중심 사고의 피해를 우리는 너무도 잘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창조된 자연, 창조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행동은 실로 엄청난 역기능을 초래할 것이다. 생명에 대한 조그마한 의식만 있어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4대 강 사업이 경제와 성장이란 미명에 의해 오늘도 거침없이 속도를 더하고 있다.

 

 생명존중 문화와 생명을 위한 학문적 노력들, 생명을 연구하는 과학과 이에 따른 기술이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선언은 결코 일면적인 것이 아니다. 이런 노력과 이런 문화는 개별 생명체와 생명체를 위한 세계 뿐 아니라, 우리 각자의 생명을 위한 것이다. 생명을 가볍게 보고, 생명을 무시하는 일은 아무리 작아도 결국 우리 각자의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문화적 현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 움직임들은 학문과 문화, 예술과 사회 뿐 아니라 일상의 작은 영역들과 개별 생명체의 존재 자체에까지 직접 영향을 미친다.

 

 현상적으로는 짧은 시간에 이뤄졌지만, 생명존중 문화와 이를 위한 학문적 연구 및 교육은 물론 그 외 여러 활동과 이를 위한 인재를 양성하고 교육시키기 위한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이를 위한 지원이 확산돼야 함은 물론이다. 생명은 다른 어떤 생명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것이며, 형제와 부모, 이웃은 물론 우리의 후손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창조의 의미와 신비를 밝히 드러내고 실현해가는 노력이기도 하다. 복음 정신을 생각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노력에 연대하고, 그런 뜻과 힘을 나누고 모으는 일에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생명의 의미는 더 더욱 무시되고, 죽음의 문화는 더 크게 번져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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